장비가 호방하지만 무식해야 하는 이유
보스톤코리아  2010-10-04, 15:06:04 
편/집/국/에/서 :

삼국지의 장비는 껄껄대는 대소와 호방한 성격으로 유명하다. 아득한 역사 속의 인물 장비는 그러나 수많은 후손들이 삼국지를 읽는 것에 대해 결코 껄껄대지만은 않을 것 같다.

장비는 불 같은 성격에 술을 좋아하며 무예만 뛰어난 인물. 즉 학식은 좀 부족한 인물이라는 것. 그의 캐릭터는 이렇게 정형화되어 있다. 그러나 한 중국의 역사가가 정사의 기록을 바탕으로 본 장비는 우리의 편견을 확 뒤틀어 놓는다. 실제의 장비는 부유한 집안의 자제로 글씨를 잘 썼고 문인화 그리기가 평생의 취미였던 교양 있었던 인물이다.

지하에서 우는 장비를 건져낸 책은 <삼국지 교양강의>다. 1930년대부터 베이징대 등지에서 역사와 철학을 강의했고 은퇴한 뒤 미국에서 중국사 집필에 힘썼던 중국 역사가 리둥팡(1907~1998)의 책이다.

한국일보의 <삼국지 교양강의> 서평에 따르면 리둥팡 씨는 소설이나 TV드라마를 통한 역사왜곡을 경계했다. “옛 사람은 이미 죽어 항의할 방법이 없고, 지금 사람은 사기를 당해 뭘 모르니 후환이 무궁합니다"라고 지적한다.

왜곡된 역사를 바로 잡는 것은 결코 쉬운 작업이 아니다. 사람들은 이미 ‘장비’하면 떠오르는 게 있기 때문이다. 우리들의 역사관에 따르면 6.25 전쟁 때 학살된 양민은 모두 북한군이거나 빨치산들의 소행이었다. 그러나 최근 활동을 종료한 한국의 ‘진실 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이하 진실화해위)’에 따르면 신고된 내용의 90%가 전쟁 당시 양민학살이었고, 그중에 국군과 미군에 의한 양민 학살이 훨씬 많았다.

6.25 전쟁 당시 자행된 양민학살은 북한군, 빨치산, 한국군경, 미군 할 것 없이 모두에 의해 비슷하게 자행됐다는 것이다. 전쟁의 잔인함을 놓고 보면 총을 든 군인들이 저지를 수 있는 쉬운 범죄이기에 피아를 가릴 것 없이 균등하게 일어났을 것이라는 간단한 추론이자 상식이다. 그럼에도 과거 권위주의 정부들은 이를 감추려고만 했다. 거짓말은 더 큰 거짓말을 낳는 법. 결국은 역사를 왜곡해 버린 것이다.

진실화해위 이영조 위원장이 보스톤을 방문했다. 지역 언론과의 인터뷰, 하버드 대학 강연 등 일정으로 방문한 이 위원장은 뉴올리언즈를 들렀으며 보스톤 이후에도 뉴욕을 방문할 예정이란다.

한나라당 추천으로 진실화해위에 가입했고, 이명박 정부들어 위원장으로 임명된 이 위원장의 방문 이유는 상큼했다. 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한국이 진실화해위 활동을 통해 아픈 과거사를 새롭게 정리하고 있는지 잘 모른다고. 따라서 OECD에도 가입했고, 경제적으로 선진국의 면모를 갖춘 한국이 역사적으로도 왜곡된 아픈 상처를 끄집어 내어 다시 정리하고 화해하는 문화 선진국의 모양새를 갖추고 있음을 인식시키려 한다는 것이다.

진실화해위는 세계에 그 역할을 알릴 뿐만 아니라 그동안 발견한 사실을 토대로 역사 교과서에 반영토록 권고할 것이라는 게 이 위원장의 말이다. 곧 영문판도 번역 오류 개정을 거쳐서 ‘Truth and Reconcilation’이란 제목으로 재발간 된다고.

하지만 진실화해위는 출범 당시 좌파정부의 정치적 목적으로 만들어졌다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아직도 일부 보수언론과 보수 층은 진실화해위의 발표 사실을 잘 받아 들이려 하지 않는다. 물론 인간으로 구성된 진실화해위의 판결이 100%진실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상당부분이 맞는 것으로 본다면 우리의 역사왜곡은 분명하다. 우리의 손으로 왜곡한 역사를 스스로 바로 잡고 이를 세계에 알리는 성숙한 한국을 보는 게 멀리 떨어져 있는 한인으로서는 가슴 뿌듯하다.

이처럼 역사왜곡이 인정되는 상황에서도 지금까지 단 한 명의 가해자도 양심선언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여전히 불편하다. 이 점은 아직도 한국 사회가 양심적이지 않다는 것을 증명한다. 이들은 역사는 물론 자신마저도 속였을지도 모르겠다.

누구든지 감추고 싶은 치부가 있다. 살다 보면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잘못을 저지를 수 있다. 양민학살이 결코 용인될 수 없는 범죄이지만 극악한 전쟁의 상황에서 일어난 일이다. 뒤늦게 나마 솔직하게 인정한다면 충분히 이해할 수는 있을 것 같다. 우리사회의 양심마저 성숙해 지는 계기도 되었을 것이다. 그 기회를 놓친 한국 사회의 갈 길은 멀다.

총리를 비롯한 고위 공직자 청문회에 나선 후보자들을 보자. 도대체 어떻게 위법을 저지르는 사람들만 뽑아 놨는지 궁금하다. 청와대의 인사 검증 질문지는 정말 가혹할 정도로 세세한 것까지 묻는다고 한다. 그럼에도 청문회에 나선 사람들은 한결같이 비리와 논란의 대상이다.

이들은 결국 자신도 속일 만큼 감추는 법을 과거를 통해 배웠을 것이다. 감출 자신감은 있지만 솔직하게 털어놓는 자신감은 없다. 그러니 말 바꾸기도 서슴없다. 우리 사회에 그렇게 인물이 없나 하는 생각을 감출 수 없다.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자신마저도 속이는 사람들. 그들에게 장비는 켤코 학문적으로도 뛰어난 인물이어선 안된다. 울면서도 껄껄껄 웃기만 하면 된다.

늘 좋은 칼럼을 전달해 주시던 신영각 칼럼니스트께서는 현재 재활 병원으로 옮겨 건강을 회복하고 계십니다. 곧 칼럼으로 여러분과 만나뵙게 되길 기원합니다.

장명술 l 보스톤코리아 편집장 editor@boston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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