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정아 사랑방식에 흥분한 한국
보스톤코리아  2011-03-28, 16:5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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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감번호 ‘4001’ 이 한국을 떠들썩하게 만들고 있다. 지난 2007년 학력위조 의혹과 고위 관계자 로비 사건으로 한국을 흔들어 놓았던 여인 신정아. 교도소에서 출감하면서 그녀는 그냥 물러나지 않았다. 그녀가 만난 세상에 대해 철저하게 대가를 치르게 하고 있다.

신정아의 ‘한’풀이라고 해야 할 책 ‘4001’을 아직 직접 읽어볼 기회는 없었지만 내용을 적나라하게 올려준 일부 신문사의 친절 때문에 책 내용이 어떤지는 쉽게 가늠해 볼 수 있었다. 시쳇말로 19금 수준의 글이 버젓하게 적혀있다. 자신이 정말 사랑했다는 남자의 이야기에서부터 시작해 정운찬 총리, 그리고 기자출신에 현직 국회의원인 C 씨의 성추행 내용까지 시시콜콜한 내용이다.

자신이 한국사회의 상류층으로 오르려고 했을 때 기댔거나 사다리역할을 해주며 대가를 요구한 남자들에 대한 이야기가 오롯이 담겨있다.

◆기자 출신 현직 국회의원 C="C기자는 택시가 출발하자마자 달려들어 나를 껴안으면서 운전기사가 있건 없건 윗옷 단추를 풀려고 난리를 피웠다. 그날 내가 입은 재킷은 감색 정장으로 단추가 다섯 개나 달려 있었고 안에 입은 와이셔츠도 단추가 목 위까지 잠겨 있어 풀기가 아주 어려운 복장이었다. (…) C 기자는 그 와중에도 왜 그렇게 답답하게 단추를 꼭꼭 잠그고 있느냐는 소리를 했다. 결국 나는 크게 화를 내면서 C 기자의 손을 밀치고는 택시 기사에게 차를 세우라고 했다. 기사도 눈치를 챘는지 호텔을 벗어나자마자 길거리에 차를 세워주었다. 택시에서 내린 나는 앞만 보고 죽어라고 뛰었다" (93~94쪽)

◆변양균 전 대통령정책실장="한번은 '연인'이라는 프랑스 영화를 함께 본 적이 있었는데, 거기서 주인공 여배우가 쓴 모자가 예쁘다고 하더니 학교 연구실로 자기 것과 내 것을 사가지고 와서는 '서프라이징!'하며 놀래주는 것이었다. 우리는 새로 산 모자를 쓰고 동대문 벼룩시장을 구경하며 다녔고, 뒷골목에 있는 파키스탄 식당에서 노린내 나는 양고기를 먹기도 했다"(138쪽) "(검찰 대질 신문 중) 똥아저씨는 나만 믿겠다고 하면서, 내년 기념일에는 이탈리아라도 갈 수 있을까 하고 푼수를 떨었다. 나는 이런 와중에 '이탈리아'같은 소리나 한다면서 정강이를 걷어찼다. (…) 똥아저씨는 우리 둘은 절대 떨어질 수 없는 동지라고 했다. 내가 이 마당까지 와서 무슨 얼어 죽을 동지냐고 하자, 똥아저씨는 입을 작게 오므리면서 '사랑해'라고 했다"(367쪽)

◆정운찬 전 국무총리="언론을 통해 보던 정 총장의 인상과 실제로 내가 접한 정 총장의 모습은 너무나 달랐다. '달랐다'는 의미는 혼란스러웠다는 뜻이다. 정 총장은 처음부터 나를 단순히 일 때문에 만나는 것 같지 않았다. 오히려 나를 만나려고 일을 핑계로 대는 것 같았다. 서울대 총장이란 이 나라 최고의 지성으로 존경받는 자리다. 정 총장이 ‘존경’을 받고 있다면 존경받는 이유가 뭔지는 모르지만 내가 보기에는 겉으로만 고상할 뿐 (정 총장의)도덕관념은 제로였다. (…) 정 총장은 안주 겸 식사를 시켜놓고서, 필요한 자문을 하는 동안 처음에는 슬쩍슬쩍 내 어깨를 치거나 팔을 건드렸다. 훤히 오픈되어 있는 바에서 시중드는 사람들이 수시로 오가는 마당에 그 정도를 성희롱이라고 할 수도 없었고 불쾌한 표정을 짓기도 애매한 상황이었다" (100~101쪽) <아시아 경제>

‘4001’은 신정아와 출판사에게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 판매 하루 만에 무려 2만권이 팔려 나갔다. 일반적으로 초판은 3천부를 찍는 것이 관례이지만 출판사는 5만부를 찍었다. 출판사의 자신감이 그냥 나온 것은 아닐 것이다. 그만큼 한국의 독자들에 대한 ‘신뢰’를 갖고 있었나 보다.

그러나 신정아의 남자들, 즉 신정아가 거론한 남자들 그리고 대부분 대한민국 남자들에 대한 신뢰는 이 책을 통해 으스러지는 것 같다. 자살한 연예인 장자연 리스트에 이어 신정아의 남자들 이야기까지 대한민국 사회 지도층 남자들의 수난시대다. 윗물이 그렇다면 어찌 아랫물은 깨끗할까.

독자들의 반응도 개운치 않다. 사람들 뒷이야기에 집중한다. 삶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하는 책에는 3천부도 많다며 돌아보지도 않는 것이 대부분. 이런 책에는 관심을 쏟는다. 왜곡된 사회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개탄보다는 흥미 위주로 이야기하는 가십거리가 승리하는 단면을 볼 수 있다.

신정아의 책 내용이 사랑이었다면 이해할 수 있다. 두 연인이 사랑에 빠진 것이 소설이나 수필의 모티브가 된 책은 너무도 많다. 괴테는 샬로테 부프와 사랑의 경험을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으로 승화시켜 많은 젊은이들의 가슴을 울렸다. 장 폴 사르트르의 연인 프랑수와즈 사강은 그가 눈먼 74세 때 언론을 통해 그에게 공개 구혼한 것으로 유명하다. 44세의 사강과 사르트르는 여행자들처럼 대화하며 사랑을 나누었다. 진정한 사랑의 모습은 감동을 준다.

신정아의 사랑방식은 자신을 사랑해온 사람에 대한 배려가 없다. 상대방의 가족에 대한 예의를 지키지 않고 자신의 관점에서만 다룬 배려 없는 사랑은 실망을 줄 뿐이다. 단순한 호기심이든 사회 고위층의 비리에 대한 궁금증이든 실망이 상품화 되어 날개 돋친듯 팔리는 것이 한국의 현주소다.

장명술 l 보스톤코리아 편집장 editor@boston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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