왠 호들갑… 왜 호들갑인가?
보스톤코리아  2012-04-30, 14:17:55 
편 / 집 / 국 / 에 / 서 :

평소와 다르게 26일자 보스톤글로브를 세심하게 훑었다. 전날 신문을 무심코 읽었다가 ‘광우병’ 보도를 놓치고 한국의 언론을 통해서 먼저 정보를 얻었기 때문이었다. 한국의 대대적인 광우병 보도를 보고 깜짝 놀라 다시 미국 언론을 확인하게 됐다. 글로브 8면 최 하단에 작게 실린 기사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리고 다음날 후속 보도가 궁금했다.

26일자 헤드라인 사진은 스포츠의 고장 보스톤답게 보스톤 브루인스의 플레이오프 패배 소식이었다. 전년도 프로 하키 챔피언 팀이었던 브루인스는 워싱톤 캐피탈과 7차전까지 벌이고 연장 접전 끝에 1대2로 아쉽게 패했다. 선수들이 서로를 아쉬워하는 모습을 담은 사진과 서든데쓰로 시즌이 끝난 것을 한눈에 파악케 하는 “Season’s Sudden End”라는 헤드라인이 위에 붙었다.

1면에 실린 기사 중 하단에 제법 눈길을 잡아 끄는 게 있었다. 매사추세츠 주내에서 2번째로 큰 시티즌스 뱅크(Citizens Bank)가 체이스 뱅크에 이어 초과인출 수수료(overdraft fee) 소송에서 1억3천7백50만 달러의 부당 수수료를 토해내기로 합의했다는 것. 2불짜리 커피가 37불로 둔갑하는 경험을 했던 독자라면 앓던 이가 빠진 것처럼 속시원한 기사다. 그동안 시티즌스 뱅크에 수수료를 뺏기고 억울해 하던 소비자들은 이를 되받을 수 있게 된다.

소비자 단체가 소송을 제기한 은행의 사기성 관행은 이렇다. 은행들은 매일 가장 큰 사용 금액을 잔액으로부터 차감하고 나머지 소액의 카드 사용, 체크 사용 등으로 인해 초과인출 되는 경우 수수료를 부과해왔다. 이를 가리켜 ‘차감순서변경(Reordering)’이라 한다. 이 같은 꼼수로 거액의 수수료를 챙겨왔다. 주요 피해자들은 돈이 충분하지 않은 저소득층. 은행은 가난한 사람의 등을 쳐 이미 부른 배를 더욱 불려왔던 것이다.

예를 들어 은행 잔액이 100불이 있다 하자. 소비자 A 씨는 당일 100불의 체크를 입금했다. 당일 사용 내역은 문구 구입 18불, 친구와 점심 30불, 주차료 2불, 커피 3불이었다. 마지막으로 집으로 가는 길에 95불짜리 스웨터를 하나 구입했다. 그러나 100 불의 체크는 당일 추심이 안되기 때문에 사용할 수 없어 초과사용수수료를 물게 된다. 일반적으로 생각하면 스웨터 구입전 사용액이 53불에 불과했기 때문에 95불을 초과 사용한 대가, 즉 수수료(Unavailable Fund Fee) 35불을 물면 그만이다.

은행들은 차감 순서를 바꾼다. 작은 사용액을 건너뛰어 95불을 잔액에서 가장 먼저 차감한다. 그러면 그 다음 30불을 차감하는 것부터는 수수료를 적용할 수 있다. 30불 점심, 18불 문구, 2불 주차, 3불 커피 사용에 각각 35불의 수수료를 더해 총 140불의 수수료를 부과 한다. 이쯤 되면 피가 솟구치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시티즌스 뱅크는 결코 불법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천문학적 소송비가 부담스러운 나머지 합의를 선택한 것이다. 이에 따라 이번 소송에 포함된 다른 30여개 은행도 체이스와 시티즌스의 행보에 따를 것인지 귀추가 주목된다.

기사를 읽고 나서 다음으로 눈길이 가는 기사는 애플이었다. 스티브 잡스의 뒤를 이은 팀 쿡이 점차적으로 애플의 CEO로서 자리를 굳혀가고 있다는 보도다.

스티브 잡스의 장막 뒤에서 역할을 수행하는 건조한 사람이란 인상에서 애플사에 가장 필요한 카리스마를 드러내 보이고 있다고. 잡스가 떠나고 나서 애플이 소니의 뒤를 이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깜짝 판매실적으로 극복한 후 팀 쿡을 재조명한 기사다.

이 기사의 배경에는 25일 애플의 ‘깜짝 실적’ 발표가 있었다. 올 1분기 매출이 줄어들 것이란 예측과 달리 391억9000만 불을 기록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59% 늘어난 수치. 나스닥도 사상 최고치를 갱신했다. 애플주가는 지난 9일 주당 636.23 불로 최고치를 기록한 후 ‘애플 버블’이란 우려를 낳으며 곤두박질 치기 시작했다. 최근 미국내 AT&T와 버라이존의 아이폰 신규가입 자수가 지지부진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주요 뉴스를 읽는 것 외에도 모든 뉴스 하나 하나를 점검했다. 그런데 광우병에 관련된 후속 보도는 전혀 없었다. 미국 농림부가 (광우병 소가) 식용으로 시중에 유통되지 않았다는 발표를 하자 잠잠해진 것이다. 다른 주요 매체도 조용하다. 전혀 광우병의 경보를 찾아볼 수 없다. 미국 언론 뿐만 아니다. 남미, 다른 아시안 계열의 언론들도 특별한 관심을 두지 않았다. 일단 정부 발표를 신뢰한다는 증거다.

한국으로 시선을 돌리면 ‘왠 호들갑인가’라는 단어가 먼저 나온다. 주요 신문 인터넷의 헤드라인이 온통 광우병 관련 소식으로 도배됐다. 대형마트와 백화점은 발빠르게 미국산 쇠고기 판매를 중단했다. 소비자 불안감도 급속히 확산됐다. 그럼에도 과거 광우병 발생시 즉각 수입중단을 공언했던 정부는 말을 뒤집었다. 대부분의 미국산 쇠고기 수입국과 마찬 가지로 수입 중단은 없었다.

반면 인도네시아는 수입전면 중단을 선언했다. 현재 수입 완화를 검토하던 대만은 검토를 무기 연기했다. 러시아도 추가 자료를 수입한 후 조치를 취할 예정이다. 국민에게 별다른 약속이 없었던 국가들도 스스로 국민의 안전을 우선적으로 고려한 반면 실제 상황에서 말을 바꾼 한국 정부. 정부가 안전하다고 해도 신뢰할 수 없는 상황이다. 누굴 믿을 것인가. 국민, 소비자들이 직접 나서 조심할 수 밖에 없다.

미국 언론이 정부발표로 잠잠해진 것과 달리 한국언론은 정부발표 이후 뉴스 생산을 확대하고 있다. 입맛이 씁쓸하지만 왜 호들갑인지 납득이 간다.

장명술 l 보스톤코리아 편집장 editor@boston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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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견목록    [의견수 : 1]
대지
2012.05.27, 01:21:40
암에 걸리는 것이 100% 증명된 담배는 열심히 피우는 사람들이, 걸릴 가능성이 희박한 광우병에 대해서는 그렇게 민감하니 참 기가 찹니다. 여하튼 과도한 육식은 몸에 좋지 않다고 하고 또한 양심적으로 생각해 봐도 즐기기 위해 고기를 먹는 것은 옳지 않은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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