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이민 온 게 죄
보스톤코리아  2012-05-30, 12:48:36 
편 / 집 / 국 / 에 / 서 :


이민자라고 술을 마시지 말라는 법 없다. 합법이든 불법 이민자든. 그 후 술주정까지도 법적으론 문제없다. 그러나 기존의 터줏대감들에게 피해를 주는 범죄행위까지는 용납되지 않는다. 고귀한 생명까지 앗아 간다면 그냥 놓아 둘 리 없다. 음주 운전 불법이민자들이 시민의 생명을 빼앗으면서 무고한 이민자들까지 뭇매를 맞고 있다.

반 이민 정서에 기름을 부은 격. 내친 김에 연방정부의 이민단속국(ICE)은 <시큐어 커뮤니티스>란 이민 단속 프로그램을 이곳 매사추세츠주에서도 실시키로 했다. MA주내 보수 공화당의원들이 중심이 되어 민주, 공화 할 것 없이 밀어 부치니 그동안 반대했던 주지사 패트릭도 두 손 들었다. 내년 연말께 실시될 것으로 보였던 이 제도가 급기야 지난 15일부터 시행됐다. 무려 19개월이나 앞당겨 졌다.

이 프로그램의 주 목적은 범죄를 저지른 이민자의 추방이다. 이민자들로 인해 일자리까지 잃은 마당에 범죄까지 용인해야 되겠냐는 밑바닥 감정에서 나온 조치다. 의심할 여지 없이 감성에 충실한 부시 행정부에서 출발한 것인데 오바마 행정부에서도 밀어 부치고 있다. 맞는 얘기지만 왠지 꺼림직하다.

프로그램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연방기관과 주 경찰 그리고 지역 경찰이 힘을 합해 이민자를 단속한다. 각 지역 경찰이 범죄자를 발각하면 지문을 비롯한 자료를 연방수사국(FBI)에 조회한다. 여기까지는 지금껏 해왔던 관행이다. 그런데 프로그램은 지문 조회를 이민국도 거치도록 한다. 범법자의 이민신분을 매번 확인해 불법을 저지르는 이민자들을 추방하겠다는 의지다.

워싱턴포스트는 2011년 2월 4일자 사설에서 “<시큐어 커뮤니티스>프로그램은 범죄 경력이 없고 경범죄로 체포된 이민자들은 전혀 추방당하지 않는다”며 이 제도를 칭찬했다. 강력범죄를 저지른 이민자들만을 추방함으로써 사회가 더욱 안전해 진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민단속국의 2011년 2월 28일 통계에 따르면 추방된 6,000명의 이민자 중에 강력범은 22%에 불과했다. 범죄기록이 없는 이민자도 무려 28%에 달했다. 교통 신호 위반 등 사소한 경범죄를 저지른 불법이민자도 경찰에 걸려 다수 추방됐다는 말이다.

<시큐어 커뮤니티스>프로그램이 시행된 마당에 이제 매사추세츠 주에서도 불법 이민자들은 발붙일 곳이 없게 됐다. 서류 미비 이민자들은 매일 추방의 불안감 속에서 살아야 한다. 앞으로 이민자로 보이는 동양계, 히스패닉 등 소수 민족을 경찰이 의도적으로 단속하는 경우(Racial profiling)도 많아질 것이다. 이민 커뮤니티에는 언시큐어 커뮤니티스(Unsecure Communities) 프로그램인 것이다.

문제의 발단은 몇몇 음주운전 이민자들에게 있었다. 지난해 8월 과테말라 불법 이민자 니콜라스 과만(35)은 당시 28살이던 매튜 데니스군을 치어 숨지게 했다. 음주운전 상태였던 과만은 오토바이에 탄 데니스를 친 이후에도 그를 차에 매달고 무려 4백 미터를 달리다 경찰에 의해 멈췄다. 검찰 보고서에 따르면 데니스는 끌려가는 도중 사망했다. 더구나 과만은 6살 된 딸을 자신의 픽업 트럭 옆자리에 태우고 있었다. 경찰의 체포에도 그는 제대로 순응하지 않았다. 오랜 범죄 경력이 드러난 그는 즉시 추방됐다. 이 사건으로 인해 MA 주민들의 태도는 일변했다.

엎친데 덮친다. 올해 4월 말에도 케이프 코드에서 초과 체류하던 이민자가 시민을 치어 사망케 했다. 5월 초 한 과테말라 음주운전자는 제지하는 주 경찰을 차로 치려다 붙잡혔다. 피해자 데니스의 형은 <시큐어 커뮤니티스>유치 웹사이트를 개설해 분위기를 띄웠다. 만약 <시큐어 커뮤니티스> 프로그램이 일찍부터 시행됐다면 데니스가 죽지 않았을 것이라는 그의 주장이다.

치안 관계자들이 프로그램 도입을 주장하고 올해 말 상원 선거를 앞둔 브라운도 적극적으로 나섰다. 정치인들도 여야 할 것 없이 가세했다. 결과적으로 이민자 단속 프로그램은 연방정부가 원하던 것보다 훨씬 앞당겨 시행되고 말았다.

<시큐어 커뮤니티스>의 핵심은 불법이민자에 추방있다. 그러나 일련의 사건들을 보면 문제의 핵심은 불법이민에 있지 않고 음주운전에 있었다. 모든 불법이민자들이 음주운전을 하지는 않는다. 음주운전 범을 처벌해야 하는데 정서상 이민자들에게 모든 죄과가 돌아가고 있다. 양보해서 이 제도의 시행을 받아 들일 수 있다고 하자. 그렇다면 과도 단속의 문제점에 대한 안전장치를 갖춰야 했다. 현 제도에서는 음주운전과 무관한 많은 이민자들이 가족과 생이별을 겪어야 할 수도 있다.

범죄를 범한 이민자는 추방해야 한다. 일리가 있다. 그러나 사소한 경범죄까지도 단속을 허용하는 이 법안의 뒷 배경이 고민되는 지점이다. 불법이민자는 음주운전을 하거나 범죄자라는 인식이 깔려있다. ‘불법 이민자는 이미 범법자가 아닌가’라는 생각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정말 그럴까. 하지만 이민법 위반은 민사범이지 형사상의 범죄가 아니다. 이민자가 없어도 범죄와 음주운전은 계속될 것이다. 결국 이민 온 게 죄다.

장명술 l 보스톤코리아 편집장 editor@boston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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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견목록    [의견수 : 1]
movingman
2012.06.04, 15:28:27
맞습니다...남의 나라와서 사는게 죄입니다. 하루빨리 한국에 돌아가서 미국보다 훨씬 살기좋은 나라로 만들고 싶습니다.
IP : 170.xxx.2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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