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영의 세상 스케치 440 회
보스톤코리아  2014-03-31, 13:35:15 
시인이라는 이름이 이제는 익숙할 때도 되었건만 여전히 풋내나는 덜 익은 사과 맛 같은 느낌을 떨쳐버릴 수 없는 것은 여전히 부족한 나를 안 까닭인 게다. 시간은 나를 기다려주지 않고 세월의 흔적은 내 몸의 여기저기에 자욱 으로 남는데 여전히 철없는 마음은 불혹(不惑)을 지나 지천명(知天命)에 올라도 변할 줄 모르니 아무래도 이순(耳順)을 기다려 볼 일이다. 십 년 전 글을 쓰기 시작하며 천방지축 아무것도 모른채 철없는 아이 널뛰는 가슴으로 첫 시집 『하늘』을 내어놓고 10년 만에 두 번째 시집 『그대 내게 오시려거든 바람으로 오소서!』를 출간하게 되었다.

30여 년의 타국에서의 생활이 이제는 내 조국의 땅에서 자란 시간보다 더 많아지고 지낸 세월보다 더 길어졌다. 내 가슴 언저리에 하얗게 서린 짙은 그리움은 도망치려야 도망칠 수도 없고 떨쳐버리려야 떨쳐버릴 수도 없는 지병이 되었다. 어쩌면 하늘이 내게 주신 천형(天刑)이란 생각을 하며 이제는 그 그리움을 밀어내지 않고 나의 분신이 되어 함께 살아가는 것이다. 삶을 가만히 돌아보면 도망치듯 정신없이 흘러왔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삶 가운데 지난 것들은 기쁨이나 슬픔이나 고통이나 환희나 모두가 추억이 되어 가슴에 남아 그리움을 만든다. 

이번 시집은 어설픈 처녀 시집 『하늘』을 부끄러운 마음으로 세상에 내어놓고 10년이 다 되어 두 번째 시집을 내어놓게 되었다. 그저 타국에서의 외로움을 달래고 싶은 마음과 그리움을 얼래고 푼 마음을 끄적거린 낙서일 뿐이다. 그 어디에도 걸리지 않고 머물지 않는 바람 같은 자유로운 영혼의 노래를 그 어디에선가 그 누군가 들어줄 수 있다면 그것으로 이미 충분한 나의 기쁨이고 행복이다. 바람 같은 자유로운 영혼의 노래를 짙은 그리움의 노래를 홀로 흥얼거리도록 내 가슴에 그리움을 남겨 준 이들과 나를 사랑하고 내가 사랑하는 이들에게 바치고 싶다. 



그대 내게 오시려거든 바람으로 오소서! 

연둣빛 새순
여린 햇살에 고개 내밀고
초록이파리 봄비에 몸을 적실 때쯤
그대 내게 오시려거든
바람으로 오소서.

뙤약볕에 익은 대지
소낙비에 식어지고
빗소리에 후박나뭇 잎 흔들릴 때쯤
그대 내게 오시려거든 
바람으로 오소서.

제 살갗을 긁어내고
제 몸을 태워 오색 물들이는
파란 하늘 아래 오색 빛 발할 때쯤
그대 내게 오시려거든
바람으로 오소서.

오랜 기다림이
하얀 그리움으로 쌓여
겨울 햇살에 몸을 녹일 때쯤
그대 내게 오시려거든
바람으로 오소서!

계절과 계절마다의 샛길에서 만나는 그리움을 그냥 흘려보내지 못하고 한 차례씩 지독한 몸 앓이 가슴앓이를 앓고서야 떠나보내곤 했었다. 그것은 고독으로부터 시작된 것일 게다. 아무리 사랑하는 남편과 아이들이 곁에 있어도 그 누구도 채워줄 수 없는 영혼의 배고픔인 게다. 유년의 뜰을 지나다 봄 아지랑이 곱게 핀 신작로를 걸으며 고개 들어 올려다본 하늘은 눈이 시리도록 푸른빛 앞산 뒷산에는 붉은 진달래 몽우리 틔우는 소리 들리고 마당 가에서는 어머니 발자국 소리 빨라진다. 아, 잊을 수 없는 빛바랜 기억 속의 흐릿한 얼굴들 그리고 그리움.

연둣빛 엷은 봄이 찾아오면 냇가의 버들강아지 꺾어 풀피리 만들어주시던 아버지 겨우내 움츠렸던 냇물 소리 졸졸 흐르면 몸살을 앓던 봄꽃들 몽우리를 틔우고 꽃을 피우며 오르는 생명의 소리 들려온다. 어릴 적 뛰어놀던 시골 작은 집 마당도 앞산 뒷산에 붉게 피던 진달래도 파랗게 물들어 가던 쪽빛 하늘도 파란 하늘에 몽실거리던 하얀 뭉게구름도 이제는 모두가 그리움이다. 담장에 오르던 이름 모를 담쟁이 꽃들도 뒤꼍 싸리나무 울타리에 끼어 핀 노란 개나리도 촐랑거리며 따라다니던 누렁이도 복실이도 색칠하다 만 연분홍 여린 유년의 뜰에 서면 모두가 고운 추억이다.

30여 년의 타국 생활에서의 내 그리움은 어쩌면 바람 같은 것일 게다. 아마도 내 그리움의 색깔과 빛깔도 바람일 게다. 그 누구도 잠재울 수 없는 바람 같은 영혼의 그리움인 이유이다. 그 누구도 채울 수 없고 대신할 수 없는 지독한 그리움인 까닭이다. 바람처럼 흐르고 멈추다 다시 또 흘러가는 그 어디에도 걸리지 않고 묶이지 않고 머물지 않는 바람 같은 자유로운 영혼인 까닭이다. 그대 내게 오시려거든 바람으로 오소서!


시인 신영은 월간[문학21]로 등단, 한국[전통문화/전통춤]알림이 역할 등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skybosto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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