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랑도(花郞徒)와 성(性) 그리고 태권도(跆拳道) 44
보스톤코리아  2014-11-03, 17:43:07 
2014-08-08

무예도보통지와 정조대왕(3) 

무예도보통지의 앞에 실린 정조 임금의 서문을 지난 호에 이어 계속 따라가 본다. “이에 나는 무의식武儀式과 전통적 법식을 계승하고 또한 기마술 등 육기을 다시 덧붙혀 24기을 만들었는데, 이미 나의 명을 받아 잘 깨달아서 숙달되고 깊이 연구한 자가 2~3인이나 된다. 그리고 원래의 도보와 속간된 도보를 합치고 적절한 사례와 단편적인 해석들의 잘못을 바로잡고 이를 종합하였다. 그리하여 그 원래의 취지를 형식과 법도에 맞도록 평가하고 만들어서 우수한 무기武技와 그 기예의 오묘한 동작들을 이 한 권의 책에 모두 담겨지게 하였는바, 이 책을 이름하여 ‘무예도보통지武藝圖譜通志’라 한다. 이 책으로 인해 치고 찌르는 법이 더욱 발전되고 상세하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금원禁苑에서 하는 훈련의 진정한 교본이 이 때에 이르러 나왔던 것이다. 교외에서 하는 훈련의 지침서인 ‘오위진병장도설’과 함께 씨와 날을 이루어 상호보완적으로 되어 이 두 책이 짝하여 조화롭게 함께 전수되니, 어찌 또한 이 무예도보통지가 병법의 근본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내가 일찍이 행진64)을 먼저 하고 이후에 기예를 연마하는 것’이 병가의 일반론이라 했거니와 ‘병가의 다섯가지 원칙’에는 개인적인 기예를 닦는 것이 두번째요, 그리고 진법을 훈련하는 것이 그 다음 세번째라고 하니 이것은 어인 까닭인가? 

대저 일월성신의 운행을 인지하고, 이루어지고 흩어지며, 어긋나고 부합하는 조건을 살펴서, 머무를 때는 견고한 담벼락이요, 움직일 때면 바람이나 비같이 휘몰아치는 것, 이것이 진법의 장점이다. 그러나 안으로 들이치고 밖으로 공격하는 구체적인 수단은 결국 군사 하나하나의 손발과 무기를 그 기본 바탕으로 할 수 밖에 없겠는데, 그래서 진을 치고 행군하는 싸움에 있어 대적할 자가 없음도 결국 각 개인의 치고 빼는 동작의 숙달과 민첩함에 달린 것이다. 이치가 이러할진데 병법의 논하는 차례가 어찌 그러하지 않겠는가?

진실로 이 책의 간행으로 말미암아, 중위中尉 재관材官이 날마다 병법65)과 개인 기예66)를 익혀 모두 날랜 무사武士67)가 되어 나라를 저버리는 일이 없도록 하고자 함이 계속적으로 이같은 책들을 저술하여 발간함이 근본의 취지이다. 이는 곧 억만년간 밝은 가르침의 실질적 구현이 진실로 역시 여기에 있으니, 노력할진저, 제군들이여!”내가 즉위한지 14년째 되는, 경술년 더운 여름에.

상기한 글이 정조가 지어 무예도보통지에 실린 서문이다. 이 무예도보통지는 정조의 ‘우문지치右文之治(학문 중심의 정치)’와 ‘작성지화作成之化(신제품으로 발전을 꾀하는 정책)’를 명분으로 내세워 세운 규장각의 귀중한 소산이다. 규장각은 정조가 즉위한 해인 1776년에 창덕궁의 금원 북쪽에 세웠다. ‘규장奎章’이란 임금의 글이나 사문을 일컫는 말이다. 그래서 역대 왕들의 글과 책을 보관하여 왕실 도서관 역할을 했는데, 정조가 여기에 비서실 기능과 문한 기능을 통합적으로 부여하여 과거시험과 문신들의 교육을 담당하였다. 정조가 규장각을 설치한 목적은 즉위 당시의 왕권을 위협하던 척리환관들의 횡포와 음모를 누르고, 학문이 깊은 신하들을 모아 경사를 토론케하여 정사에 반영하고 백성들의 생활상을 살피는데 있었다. 또한 문예를 진흥하고 당시의 타락한 사회 풍습을 바로 잡아 순화시키려는 목적도 있었다. 1781년에는 규장각 청사를 가장 큰 청사인 도총부 청사로 옮겼고, 강화도 사고의 별고를 신축하여 ‘외규장각’으로 하였고, 내규장각의 부설로 세운 장서각에는 우리의 책과 중국본들을 나누어 보관하였다. 그 외 많은 업적으로 조선 후기를 부흥한 정조는 아쉽게도 49세의 나이에 지병으로 앓던 종기가 도져 1800년에 죽었다.
 
64) 진을 치고 행군하는 것.
65) 원문에는 ‘용호지도龍虎之韜’ 라고 적혀 있는데, 이것은 병서 ‘육도삼략’의 각 장을 말한다.
66) 원문에는 ‘인관궐장引關蹶張’ 으로 적혀 있다. 인관은 활에 해당하는 동작이며, 궐장은 활보다 큰 쇠뇌에 해당하는 동작이다.
67) 원문에는 ‘비휴지사’ 로 적혀있다. 비휴라는 동물은 호랑이와 비슷한 용맹한 짐승으로, 고대에는 길을 잘 들여서 전쟁에 사용하였다. 또한 용감한 무사나 병사 그 무리를 상징한다. 그 짐승의 수컷을 ‘비’라고 하며 암컷을 ‘휴’라고 한다.

박선우 (박선우태권도장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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