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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스칼럼니스트김은한 칼럼니스트
<김씨의 뿌리(16)>
보스톤코리아  2014-11-05, 15:52:02   
중국 섬서성 흥평현 남위향 도상촌에 한무제 무덤의 배장묘인 곽거병의 묘
중국 섬서성 흥평현 남위향 도상촌에 한무제 무덤의 배장묘인 곽거병의 묘
2014-10-10

곽거병과 연지의 유래

<표기장군(驃騎將軍)과 곽거병(霍去病)>
평양공주 집의 하녀 위온(衛媼)이 정계라는 자와 사통하여 위청을 낳았는데 위온은 위청을 낳기 전에 이미 위유, 위자부라는 딸과 아들 두 명을 두고 있었다는 얘기를 전편에 한 바 있다. 

당시 한무제와 황후 진아교 사이에는 소생이 없었고 둘 사이의 관계도 소 닭 보듯 하는 사이였다. 그래서 한무제는 쓸쓸함을 달래려고 누이 평양공주 집에 자주 들르곤 하였다. 

마침 평양공주 집에 노래 부르는 가기 위자부가 한무제의 눈에 들어 아들 유거(劉據)를 낳게 되자 한무제는 진아교 황후를 내치고 위자부를 황후로 하였다. 이를 계기로 평양공주 집의 하녀 위온의 소생들이 모두 출세를 하게 되었다. 위청이 태중 대부가 되고 위청의 배다른 첫째 누이 위유는 태부 공손하에게 시집가게 되고 둘째 누이 위소아는 진장(陳掌)이라는 사람과 살고 있었는데 진장도 벼슬길에 오르게 되었다. 위소아가 진장과 살기 전에 곽중유라는 사람과 사통하여 낳은 아들이 곽거병이었다. 위청은 곽거병의 외숙이 되는 셈이다. 한마디로 위온 자신은 물론이고 모든 소생들이 콩가루 집안 식구들이었다.

곽거병은 위황후 조카라는 위세로 나이 18세에 벌써 황제의 시중(侍中)이 되었다. 말 타고 활 쏘기에 능해 대장군 위청에게 종군하였는데 위청은 곽거병을 표요교위(嫖姚校尉)로 임명하였다. 

원래 표요는 날쌔게 비행하는 새를 일컫는데 이는 곽거병에게 매우 적합한 말이었다. 곽거병은 첫 출병에서 800명의 기병을 이끌고 수 백리를 진격하여 흉노 2천명을 사살하고 포로를 잡아 즉시 관군후(冠軍侯)라는 제후로 봉해졌다가 곧 표기장군(驃騎將軍)으로 임명되었다. 

BC121년 곽거병은 1만의 기병을 이끌고 농서로 진군해 대승을 거두었다. 흉노 선우는 좌현왕인 혼야왕(渾邪王)이 여러 차례 전쟁에서 패하자 좌현왕과 우현왕인 휴저왕을 불러 죽이려 하였다. 이 사실을 알아차린 좌현왕과 우현왕이 한나라에 투항하려 하자 한무제는 곽거병을 보내 그를 맞이하게 하였다. 마지막 순간에 많은 흉노군이 투항을 거부하자 곽거병은 흉노군 8천명을 사살하고 수 만명의 투항을 받아냈다. 


평안도 강서 수산리 벽화에 연지로 단장한 고구려 여인.
평안도 강서 수산리 벽화에 연지로 단장한 고구려 여인.
 

 
이로써 흉노는 기련산(祁連山)과 언지산(焉支山) 일대를 한나라에게 빼앗기고, 이 과정 중에 우현왕 휴저왕이 사살되고 그의 부인 알지와 아들 김일제, 김륜은 한나라군의 포로가 되었다. 한나라는 이곳에 무위(武威) 주천(酒泉) 두 군을 설치하고 중국인들을 이곳으로 이주시켰다.

위청은 겸손하고 매사에 조심하는 성격을 가지고 있었는데 곽거병의 성격은 제멋대로였고 거침이 없었다. 전쟁을 할 때도 고대 병법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없었다. 한번은 한무제가 손오병법을 곽거병에게 가르치려고 하자 그는 단번에 거절하였다. “전쟁은 계획과 책략이면 충분하오니 고대병법은 배울 필요는 없사옵니다.”

이토록 병법을 모르는 장군이 상승장군이 된 것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곽거병에게 한가지 취할 점이 있다면 그는 언제나 국가의 대업만을 생각하고 있었다. 한무제가 곽거병을 위하여 집을 짓다가 곽거병을 불러 미리 보여주었다. 그때 곽거병이 “흉노를 멸하기 전에는 집을 세울 수 없사옵니다,” 한마디에 황제의 은총을 물리쳤다. 

이광과 위청은 수하에 거느린 병사들을 사랑하고 아꼈지만 곽거병은 정반대였다. 진중에 양식이 충분해도 그의 병사들은 배불리 먹지 못할 때가 많았고, 병사들이 먹지 못하고 지쳐있을 때도 임시로 구장(球場)을 짓고 공을 차게 해서 유흥을 즐겼다. 

정도를 벗어나는 기행을 즐기는 사람은 일찍 죽는 경우가 많다. 곽거병도 예외가 아니었다. BC 117년에 겨우 23의 젊은 나이에 그는 오염된 물을 마시고 요절해 버렸다.

무제는 그의 공적을 기념하기 위해 기련산(祁連山)의 모양을 본떠 그를 위해 무덤을 지어 주었으니 지금 그의 묘는 한무제의 무덤 무릉 곁에 김일제, 위청의 묘와 함께 배장묘로 남아있다. 

중국 섬서성 흥평현(興平縣) 남위향((南位鄕) 도상촌(道常村)에 이들의 무덤이 있다. 

<연지(臙脂) 곤지의 유래>
한나라 곽거병(霍去病) 장군이 김일제의 부왕, 휴저왕에게서 빼앗은 언지산(焉支山) 일대는 휴저왕의 본거지였다. 여기서 더 서쪽에 있는 기련산 지역은 흉노족들이 대단위 목축을 하던 지역이며 동서교역의 젖줄 silk road가 시작되는 지정학적으로도 아주 중요한 지역이었다. 

곽거병의 공격으로 휴저왕은 사망하고 그의 두 아들 일제(日䃅)와 윤(倫)은 어머니 알지와 함께 한나라 군의 포로가 되었다.

수많은 흉노 사람들이 자신의 고향을 쫓겨나면서 암담했던 그들의 심경을 토로했던 슬픈 노래가 아직까지 전해지고 있다. 

실아 기련산(失我祁連山)
사아육축불번식(使我六蓄不蕃息)
실아 연지산(失我燕支山)
사아부녀무안색(使我婦女無顔色)

그 내용은 기련산을 빼앗겨 우리 가축들을 키우지 못하고, 연지산을 빼앗겨 우리 아녀자들 얼굴 화장도 못 시키네, 라는 뜻이다. 

일본 나라현 다카마쓰 고분 벽화에 고구려 의상을 입고 연지로 화장한 여인들
일본 나라현 다카마쓰 고분 벽화에 고구려 의상을 입고 연지로 화장한 여인들

흉노족의 근거지 언지산(焉支山)에는 홍색(紅色) 염료와 화장품 연지의 원료가 되는 홍화(紅花)가 많이 자라서 산 이름을 연지산(燕支山)으로 바꿔 부르게 되었다. 

홍화는 일명 홍람초(紅藍棗)라고도 부르고 우리 말로는 잇꽃으로도 부른다. 예전 이집트에서는 홍화로 물들인 분홍색 천으로 미라를 싸매었다고 한다. 

중국에서 연지를 처음 사용한 유래는 BC1150년 중국 주왕 때 요사스런 여인 달기가 연나라에서 가져다가 사용했기 때문에 연나라 연자를 넣어 연지가 되었다고 한다. 

정작 연지가 여인들의 화장품으로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한무제가 흉노로부터 연지산을 빼앗은 때로부터였기 때문에 연지의 유래는 흉노에서 시작되었다고 하겠다.

중국에서는 궁정의 궁녀들이 월경이 있을 때는 홍화에서 만들어진 붉은 연지를 얼굴에 묻혀서 “죄송하지만 지금 생리 중”이라는 말을 임금이 한눈에 알아볼 수 있게 하였는데 나중에는 연지가 여염으로 퍼져 월경의 유무에 상관없이 연지를 볼, 입술, 손톱 등에 칠하는 화장술이 보편화 되었다. 

우리나라는 고구려의 경우 평안도 강서 수산리 벽화와 용강 쌍영총 차마 행렬도 벽화에서 볼과 입술에 연지를 바른 여인들을 찾아볼 수 있다. 고구려 중 담징이 일본에 연지를 소개한 것으로 미루어 삼국시대 때 한반도에서도 연지를 사용한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일본 나라현에 있는 다카마쓰 고분 벽화에는 고구려 의상을 입은 여인들이 연지로 화장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 흉노 연지산에서 출발한 연지가 중국, 한반도, 일본으로 전파 보급된 것을 알 수 있다. 


김은한 
보스톤코리아 컬럼니스트
역사문제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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