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랑도(花郞徒)와 성(性) 그리고 태권도(跆拳道) 55
보스톤코리아  2014-11-10, 13:48:41 
이번에는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89) 에 나오는 격구을 살펴 본다. 용비어천가는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창제하면서 정음으로 편찬한 최초의 문헌이며 ‘월인천강지곡’과 함께 조선시대의 악장문학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평가되고 있다. 음악뿐만 아니라 당시의 서지학과 국어(문)학 연구에 대단히 중요한 자료이다. 용비어천가는 총 125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 중 제44장90) 에 격구에 대한 기록이 있다. 이는 조선 초기에 왕을 비롯하여 왕족과 상류층, 특히 무관들이 격구를 많이 즐겼음을 보여 준다. 격구는 세종시대 부터 무과의 시취試取 과목으로 채택되어 세조와 성종대 까지는 유희적인 면보다 습무과정을 중요시하며 군사적으로 더 강조되었다. 

하지만 중기로 접어들면서 화포와 총포의 발달로 말馬의 효용성과 마상무예의 가치가 떨어지면서 유희적인 면으로 발전되었다. 또한 중기로 접어들면서 생긴 극단적인 문치주의는 무예를 경시하는 경향까지 겹치면서 귀족사회에서는 점점 격구를 멀리하게 되었고, 심지어 무과시험에서도 빠지게 되었다. 다행히 정조대에 와서 무예의 중요성을 재인식하고 무예도보통지에 마상기예(마상6기)를 추가하면서 격구의 자세한 내용이 현존한다.

또한 조선시대 초부터 성행한 지상격구(보격구步擊毬, 보행격구)는 초기에는 주로 궁궐에서 이루어졌으며 격방이나 장시를 많이 즐겼다. 격방은 궁중이나 넓은 마당 여기저기에 구멍을 파놓고 걸어 다니면서 공을 구멍에 넣는 놀이로 현재의 골프와 유사하다. 장시는 뛰어 다니면서 구문에 공을 넣는 놀이인데 현재의 필드하키와 유사하다. 실록에 의하면 세종은 종친들을 궁내로 불러 보행격구를 하였고, 세조 때는 수십명씩 무리를 지어 경기를 하였다. 특히 격방은 궁녀들을 비롯하여 남녀노소 모두가 즐긴 유희였다.91)

이렇게 마상격구와 지상격구가 습무와 유희의 여러 형태로 발전해오면서 상하층의 모든 백성들이 즐겼는데 임진왜란 이후 17세기로 접어들면서 기마격구가 병술로서의 효율성이 떨어지자 지상격구도 함께 상류층으로 부터 점차 쇠퇴되었다. 하지만 일반 백성들의 놀이로서는 계속 유지되면서 ‘장치기’로 변모되었다. 동아일보의 기록에 보면 1920년에 전국에서 32개의 남녀팀이 출전하여 수원에서 대회를 하였으며, 1931년에는 얼레공대회라는 이름으로 전국대회를 열기도 하였다. 

결론적으로 마상격구는 페르시아 지방에서 시작되어 인도와 티벳트 거치고 당나라를 통하여 삼국시대에 우리나라에 전래되었다. 삼국시대에 습무나 유희의 형태의 격구가 고려시대로 들어오면서 궁궐에서 왕과 왕족을 중심으로, 중기에서 무신들 중심으로, 후기에는 저잣거리에서 상하층 모든 백성들이 참여하는 대규모의 행사로 전승되었다. 

조선시대에 접어드면서 격구는 한층 더 발전되고 성행하였다. 태조와 태종의 격구 실력은 백성들이 경이의 눈으로 관전하였고, 세종은 용비어천가에서 태조의 격구를 찬양하였으며, 무과시험으로 채택하여 놀이적 성격이 줄어들었다. 초기 100여년간의 왕과 왕족, 무관들의 습무에서 시대가 흐름에 백성들의, 특히 남자아이들의 겨울철 놀이인 장치기로 변모하였고, 또한 상류층 유희에서 단오때의 집단 세시풍속적으로 온 백성들이 즐기는 놀이로 변하였다. 그리고 마상뿐만이 아니라 지상에서 보행격구는 여러가지의 다른 형태로 발전하였다. 다음에는 무예도보통지의 ‘격구편’을 중심으로 좀더 상세한 격구의 종류와 경기방법과 장비 등을 살펴 본다. 격구와 폴로(Polo)는 왼손잡이는 할 수 없다. 우완과 좌완이 함께 구장에서 말몰이를 하면 말들이 충동하기 때문에 오른손잡이만 현대의 Polo경기에 참가할 수 있다.(물론 오른손을 사용한다면 누구나 경기가 가능하다.)  

89) 보물 제1463호(2006년4월28일 지정), 한글 창제 후 가장 먼저 지은 최초의 한글 문헌의 서사시/악장이다. 1445년(세종27년)에 지어 1447년에 간행하였다. 권제, 정인지, 안지 등이 저술했으며, 성삼문, 이개, 박팽년 등이 주석을 달았으며, 정인지가 서문을 쓰고 최항이 발문하였다. 총 125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내용은 목조, 익조, 도조, 환조, 태조, 태종 등 조선 선대 6대의 사적과 조선 건국의 위대함과 시련 등을 노래했고, 그 모든 것이 하늘의 명에 의해 이루어졌다고 서술되어 있다. 서울역사박물관(새문안길, 2002년 개관), 계명대학교, 고려대학교, 규장작 등에 보관되어 있다.

90) 전문 풀이를 옮긴다. “놀음놀이에 쓰이는 방울(공)이시매 (당나라 선종은) 말 위에서 (공을) 이어 치시나 양편의 공치기 선수만이 기뻐한 것입니다.
임금의 명으로 노는 공치기이매 (태조는) 말 곁에 엇막으시니, 사방 팔방으로 통한 거리에 모인 도읍 사람들이 다 놀라니.”

91) 이렇게 역사적으로 고증을 해보면 우리나라 사람들(특히 여자)에게는 골프를 즐기고 잘할 수 있는 유전인자가 있다. 젊은 낭자들이 세계 골프계를 석권하는 것이 조금도 놀라운 일이 아님을 역사가 입증하고 있다.

박선우 (박선우태권도장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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