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영의 세상 스케치 503회
보스톤코리아  2015-06-22, 11:49:11 
한 8여 년 전 한국을 방문하며 선배 언니와 함께 순천의 '송광사'에서 템플스테이 경험을 한 때가 있었다. 크리스천인 내가 절에 간다는 것도 아니 될 일이었지만, 그것도 일주일이 되는 시간을 불자들과 함께 사찰에서 새벽 예불에 참석하고 잠을 자고 음식을 먹으며 지낸다는 것은 참으로 개신교 신자로서는 황당무계한 일일 게다. 하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내 마음은 한결같다. 내가 교인이라서 절에 못 갈 이유가 뭐 있겠으며 그것으로 인해 내가 불자가 되는 것은 더욱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는 가끔 일어나지도 않을 일들에 대해 많은 염려와 걱정으로 시간을 허비한다. 

안다는 것은 내가 경험한 것들로부터의 시작이라는 생각을 한다. 그것은 관계로부터 시작해 여러 가지 각각의 모양과 색깔과 소리로 나 자신과 마주하며 느끼는 것들인 까닭이다. 그렇다, 내가 경하지 못하고 어찌 그것을 안다고 할 수 있을까. 늘 마음에 평생 숙제 하나 있어 다 풀어내지 못한 과제로 때론 마음이 가난할 때가 있다. 나 자신이 개신교 신앙인이라는 것이 가슴 넉넉하다가도 무엇인가 먹은 것이 얹힌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소화를 다 시키지 못하는 이유일 게다. 누가 시켜서가 아닌 내가 경험한 만큼의 체험이 신앙 고백일 것이다. 이만큼에서 나는 서 있는 것이다.

새벽 울음이여!

고요를 삼켜버린 송광사 사자루의 뜰에는 
오랜 고목이 제 살을 발라 먹고 뼈를 세워 
두들기지 않아도 소리 내는 목어를 키우고 
부르지 않아도 찾아오는 바람은 
비어 있는 마음을 두드리며 풍경을 흔든다
 
물이 없이도 물고기가 자라는 사자루 연못에 
샛노랗고 진한 꽃분홍 수줍은 수련이 오르고 
새벽을 부르는 달빛은 연못에 몸을 담그고 
바람은 산사의 닥나무 틀에 매인 창호지를 흔들며 
새벽 예불 준비하는 승려의 장삼 자락을 훔친다
 
새벽을 두들기는 여린 승려들의 손가락마다 
억겁의 시간을 두들기며 공간을 어우르고 
법고(法鼓)가 울릴 때마다 빈 가슴에서 울림이 되고 
밤과 낮을 가르며 하늘로 오르는 운판(雲板)의 여운이 
텅 빈속에서 울음을 내는 목어(木魚)가 새벽을 깨운다

유교 집안에서 자란 나는 어려서 교회를 다닐 기회조차 없었다. 물론 절에도 특별히 가 본 일이 없었다. 그러다가 초등학교 3학년 때 옆집 언니 따라 교회를 처음 나갔던 내 첫사랑의 기억이다. 그리고 믿지 않는 가정에서 자라며 열심히 교회를 다녔다. 아니 그리스도에 대해 열심히 알고 싶어 열정과 열심을 가지고 배우고 익히고 기도하며 지낸 시간이 있었다. 참으로 많은 깨우침과 깨달음으로 안내한 잊을 수 없는 내 내면 깊숙한 영혼의 밭에 심기어진 내 영혼의 뿌리가 되었다. 참으로 많은 것들을 경험하고 체험하며 나의 귀한 신앙고백이 되곤 했었다.

어려서 친구들과 함께 즐거움으로 오르던 피크닉 산행이 아닌 제대로 된 산을 오르게 된 것은 5년 전 처음일 게다. 그렇게 산을 오르기 시작하며 많은 삶의 변화를 느끼게 되었다. 누군가 일러주지 않아도 깊은 숲 속에 들면 저절로 마음의 문이 열리기 시작하고 마음의 귀가 열리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동안 듣지 못했던 나 자신의 내면 깊숙한 얘기들을 하나씩 듣게 되는 것이었다. 참으로 신기하고 놀랍고 신비로운 경험이었다. 그렇게 산을 오르면 오를수록 나 자신은 더욱 작아지고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창조주의 손길에 감사해 그만 무릎을 꿇고 피조물임을 고백하는 것이다.

산을 오를 때마다 나는 깊은 생각과 마주하며 알 듯 모를 듯 싶은 내 영혼의 물음을 하나씩 꺼내어 마주하곤 한다. 그렇게 하나씩 꺼내어 기도처럼 버거운 오르내림의 산행길에서 보일 듯 말 듯한 답을 얻으며 비워내니 나는 평안하다. 그 누구를 탓할 그 무엇이 있을까. 모두가 부족한 모습으로 있는 너와 나 우리인 것을 말이다. 이른 새벽 준비된 맑은 공기와 깊고 푸른 풀내 맡으며 자연과 함께 걸을 수 있음으로도 벅차오르는 감동인 것을 그 무엇이 더 필요할까. 모두가 거저 주신 아주 '특별한 선물'인 것을 내 것인 양 움켜쥐고 잃어버릴가 안절부절 못하는 내 마음만 커져 있는 것을.

내 속에 차 있는 것들이 많아 혹여 맑은 소릴 듣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이제는 조금씩 덜어내고 비워내고 씻어내어 닦이고 싶다. 이제는 몸이든 마음이든 정신이든 간에 채워넣기보다는 조금씩 덜어내어 가벼워지면 좋겠다. 그렇게 덜어내고 비워낸 자리에 조금은 넉넉하고 풍성한 오늘을 맞기를 소망해 본다. 혼자이지 않은 세상에서 네가 있어 내가 있고 내가 있어 네가 있음을 감사하게 여기는 오늘이면 좋겠다. 나와 다르다고 해서 무조건 틀린 것이 아님을 조금은 기다림으로 마주할 수 있는 우리네 삶이면 좋겠다. 그래서 오늘도 맘껏 만나고 느끼고 누릴 수 있는 여유로운 삶이면.


시인 신영은 월간[문학21]로 등단, 한국[전통문화/전통춤]알림이 역할 등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skybosto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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