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톤월 인 사건
보스톤코리아  2015-08-03, 11:56:21 
1969년 6월 28일 새벽 1시 20분, 일군의 경찰병력이 뉴욕 그리니치 빌리지 뒷골목의 허름한 바, 스톤월 인 (Stonewall Inn)을 급습했다. 명목상의 이유는 주류판매 허가 없이 알콜을 판매하는 이 업소의 영업을 단속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사실상의 이유는 이곳에 있던 게이, 레즈비언, 드랙퀸 (여장남자) 등을 체포하기 위해서였다. 

스톤월 인은 매우 작은 규모의 술집으로, 수도 시설조차 마땅치 않아 사용한 술잔을 흐르는 물대신 물통에 고인 물에서 헹궈서 다음 손님에게 건낼 정도로 비위생적인 곳이었고, 화장실도 늘 지저분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곳은 다른 바에 마음놓고 출입할 수 없는 숱한 성소수자들을 받아주는 곳이었고, 또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었기에 뉴욕의 오갈데 없는 어리고 가난한 게이들 사이에서는 상당히 인기가 있는 공간이었던 듯 하다. 그날 경찰의 기습 당시 바 안에는 약 200명의 손님들이 있었다고 한다. 

불과 반세기 전의 미국에서 성소수자로 산다는 것은 온갖 종류의 탄압에 가까운 차별을 일상으로 받아들이는 일이었다. 동성애는 사회적 위험을 수반하는 정신질환으로 간주되었고, 동성애자라는 사실이 직장 해고의 사유가 되었으며, 심지어 동성애자들이 "풍기문란"을 이유로 체포되는 일도 다반사였다. 

동성애자들도 사회적 차별에 대해 "대부분의 음식점이나 술집도 이들을 반기지 않았다.  
스톤월 인이 위치해있던 그리니치빌리지는 1차 대전무렵부터 성소수자들이 상당수 정착하였던 곳으로, "짧은 머리 여자와 긴 머리 남자들의 보금자리"라고 불릴 정도로 고유의 문화가 형성되어 있던 곳이었다. 이 지역의 게이바들은 주로 (이성애자) 마피아들이 운영했는데, 게이바 운영자들은 게이들의 처지를 악용하여 형편없는 서비스를 제공했다. 또한 경찰들은 게이바에서 뇌물을 챙기기 종종 불시 단속에 나서곤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곳의 게이바들은 온갖 차별에 노출되어 있던 성소수자들의 입장에서 보면 일종의 안식처이자 놀이터였다. 

60년대 중반, 뉴욕시가 게이바들의 주류 면허를 취소하거나, 술집에 입장하기 위해서 자신의 '성에 걸맞는' 세가지 이상의 아이템을 착용해야하는 등의 요구조건을 내세우거나 하면서 게이바와 동성애자들에 대한 경찰의 괴롭힘이 더욱 거세어졌다. 스톤월 인 역시 면허를 취소당해, 무면허로 주류를 판매했는데, 69년 사건이 일어날 당시 그리니치 빌리지에서조차도 거의 유일하게 살아남은 게이바가 바로 스톤월 인이었다고 한다. 

1969년 6월 28일 새벽에 경찰들이 스톤월 인에 단속을 나온 것 자체는 뭐랄까 전혀 새로울 것도 없이 종종 벌어지는 광경이었을 게다. 경찰들은 바의 불을 켜게하고 바 안에 있던 손님들을 일렬로 세우거나 화장실로 보내서 신분증을 검사하고, 크로스 드레싱(남장여자, 여장 남자)을 한 사람들을 가려내고 모욕적인 폭언을 하면서 이들을 체포하기 시작했다. 
동성애에 대한 경찰과 뉴욕시와 사회 전반의 분위기를 놓고 볼때, 그저 또 하룻밤의 단속이었을지도 모르는 이 장면은 역사적인 사건이 된다. 

경찰이 들이닥친 이후 벌어진 혼동의 도가니 속에서 돌연 한 레즈비언이 경찰의 체포에 강력히 저항했다. 곧이어 다른 손님들도 체포에 야유를 보내고, 항의하기 시작했다. 이내 스톤월 인은 동전과 술병이 날라다니는 아수라장이 되었다. 경찰이 체포한 이들을 호송차에 강제로 밀어넣으려 하자 군중들의 감정은 더욱 격해졌다. 스톤월 인 바에 있던 손님들은 200여명 남짓이었으나, 그리니치 빌리지의 주민들 2000여 명이 이 흐름에 합세하면서 한밤중의 시위가 벌어지게되었다. 

스톤월 인에서 벌어진 소요사태는 성소수자들에 대한 차별과 억압에 대해 그동안 누적된 불만, 특히 경찰의 일상적 폭력에 대한 반감이 격하게 표출되었던 결과이다. 경찰 폭력에 대한 성소수자들의 항의 시위는 산발적으로나마 그 후로 며칠 더 이어졌다. 이때 <게이 권력 Gay Power>라는 슬로건이 등장했다. 

스톤월 인 사태 이전에 동성애자들의 권익 운동이 전혀 부재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이들은 동성애는 사회적으로 용납할 수 없는 이상한 것이라는 인상을 풍기지 않고 (한마디로 "튀지 말고") 동성애자와 이성애자가 다르지 않다는 것을 강조하는 호모필(homophile) 운동이었다. 그러나 "게이는 좋은 것이다"라는 슬로건이 보여주듯, 스톤월 인 사태 이후 성소수자들은 자신들의 성정체성을 부정하거나 숨기기보다는 드러내고 긍정하기 시작했다.  이런 변화에는  흑인이나 여성등 60년대의 다른 마이너리티 그룹들의 변혁 운동의 영향도 지대했을 것이다. 커밍아웃이 중요해진 것도 이때다.

그리고 스톤월 인 사태가 발생한지 꼭 1년이 되는 1970년 6월 28일, 뉴욕, 샌프란시스코등의 미국 주요 도시에서는 성소수자들이 자신들의 성정체성을 긍정하는 게이 해방 행진 (Gay Liberation March)을 조직했다. 게이행진은  곧 다른 지역으로 퍼졌다. 오늘날의 퀴어퍼레이드의 원조인 셈. 그러고보니 미국 대법원이 동성 결혼 합헌 판결을 내리고, 백악관이 무지개색 조명을 밝힌 지난 달 6월 28일은 공교롭게도 꼭 반세기 전의 스톤월인 사건이 있던 날이기도 했다. 

그냥 사족: 대부분의 사람들이 당연하게 누릴 수 있는 권리가, 누구에겐가는 (성적 지향을 이유로) 제한된다면 이는 본질적으로 불평등이라는 (아주 단순한) 이유로, 이번 판결이 평등을 향한 진일보라는 시각에 동감한다. 그리고 법적 불평등이 줄어든 자리에 더 커진 혐오가 자리하지는 않기를 소망한다. 


보스톤코리아 컬럼니스트 소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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