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담객설閑談客說: 그대 다시는 고향에 돌아가지 못하리
보스톤코리아  2015-08-31, 11:35:12 
  아이에게 물었다. 가장 많이 쓰이는 거리이름이 무엇이냐. 시험해 보고자 물어 본 건 아니었다.  아비나 아들이나 모두 메인스트릿트가 가장 흔한 이름이라 생각했다. 어느 도시건 중앙통은 있을 테니 말이다. 구글에서는 기대하지 못한 답이 나왔다. ‘세컨드 스트릿트’ 가 가장 많은 이름이란다. 이번가二番街가 일번가一番街보다 더 많다는 거다. 이찌방이 신라면에 밀렸다.

  구멍가게는 담배가게와 겸한다. 아이스크림 냉장고는 가게 입구에 있어야 옳다. 주홍색 공중전화는 나무평상과 마주한다. 두 서넛 동네 어른신들 평상에 앉아 한가롭게 부채질 하고 있다. 한적하기 그지 없는 동네 구멍가게 모습이다. 집을 찾는 거라면 당연히 여기서 물어봐야 한다. 동네 어른들의 대답은 정해져 있을 것이다. 골목을 한참 따라 올라가다가, 녹색 대문집이라 일러준다. 하지만 녹색 대문이 한두개 라야지. 문패도 번짓수도 찾기 쉽지 않다.

  어머니는 내가 머리 컸을 적에 아버지 문패 옆에 내 문패를 달았다. 녹색 철문 옆 기둥에 자개를 박은 걸로 달아 주셨던 거다. 그리고 스스로 흡족해 하셨다.  새파란 청년인 나는 결혼하기 전이고 아직도 온전한 성인이라고 말하기 뭣할 적이었다. 부모님 집에서 얹혀 살고 있었으니 말이다. 어머니의 계산된 행동에 선친은 말씀없이 빙그레 웃기만 하셨다. 당신도 매우 대견해 하셨던 거다. 내게 오는 편지 나부랭이가 더 많았기 때문이기도 했다. 어머니는 당신의 문패는 달지 않으셨다. 문패를 따라, 담장엔 선친이 심어놓아 가꾸던 덩굴장미가 여름이면 한창 볼만했다. 선친은 좁은 앞마당에 키 크지 않은 나무며 화초를 가꾸셨는데,  내 눈엔 덩굴장미가 압권이었던 거다. 보기에도 화려하더니만. 장미와 녹색대문이 어울리는지 그건 따져 보지 않았다.

   연전에 한국을 방문했을 때이다. 아직도 내 문패가 벌것게 오는 편지를 기다리던 집에서 묵었다. 좁은 마당을 넘어 골목길이 있었다. 시차를 적응하지 못해 얼핏 졸음을 참지 못할 오후시간이었다.  아이들 몇이 지나면서 웃고 떠드는 소리가 들렸다. 이상한 경험이었다. 아이들이 떠드는 소리는 당연히 한국어인데, 영어인듯 한국말인 듯 구분할 수 없었던게다. 아이들 소리가 지나가면, 고속도로를 달리는 차소리만 이따금 배경음처럼 윙윙이더만. 고요함이 봄날 저녁처럼 깊어졌다. 스스르 졸음 속으로 다시 빠져들었다. 조병화 시인의 시 몇구절이다. 

이곳까지 오는 길 험했으나 
고향에 접어드니 마냥 고요하여라 
….
만남과 이별이 세월이 되고 
마른 눈물이 이곳이 되면서 
지나 온 주막들 아련히 
고향은 마냥 고요하여라 
아, 어머님 안녕하셨습니까.
(조병화, 고요한 귀향)
 
 ‘그대 다시는 고향에 돌아가지 못하리’ 토마스 울프의 작품 제목이다. 문구는 귀에 익었다. 고향 골목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을 것이다. 하지만 더 이상 그 골목은 옛적 그 골목은 아닐 터. 더 이상 덩쿨장미는 피어나지 않는다. 장미뿌리는 담장을 헐어낼 적에 이미 뽑혔으니 말이다.  그 고향에 다시 돌아 갈 수 있을까? 그 시절이 다시 올수 있을까. 별 시덥지 않은 소리를 내 보았다. 

   지금 살고 있는 집에서도 아이들 웃고 떠드는 소리가 이따금 들린다. 자전거를 타고, 오르내리는 소리인게다. 하지만 아이들 지나다니는 소리는 옆집에서 잔디깎는 소리에 쉽게 눌린다. 텅텅거리는 기계음이 더 크다는 말이다.  아, 어머니 안녕하신지요.

 ‘선지자가 고향에서는 높임을 받지 못한다 하시고’ (요한 4:44)


김화옥  (보스톤코리아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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