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대륙 인디언의 역사 : 12. 시팅불과 운디드니 대학살 (3)
보스톤코리아  2016-03-28, 11:35:50 
망령춤과 시팅불의 사망 (계속)
그러나 담당국장은 상사인 전쟁부장관(Secretary of War)과 협의한 결과 시팅불의 체포는 사태를 더 악화시킬 우려가 있기 때문에 그 요청을 수용할 수가 없다고 통보했다. 11월 중순이 되자 인디언 동네는 완전히 망령춤으로 뒤덮였다. 거의 모든 일상적 활동이 중단되고 망령춤만이 인디언 마을 휩쓸게 되었다. 이에 놀란 맥래프린 주재관은 워싱턴으로 급히 전보를 쳐서 부족의 추장들을 긴급 체포해서 군 요새에 감금할 것을 상부에 건의했다. 이 건의는 받아들여져 시카고의 군사령부에 있던 곰 외투라는 별명을 가진 마일스(Nelson Appleton Miles)소장이 이 사건을 맡았다. 전 주재관인 맥길리커디(Dr. Valentine Trant McGillycuddy)는 군대를 동원하면 큰 분쟁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자제해야 한다고 건의했다. 그러나 그의 의견은 무시되었고 마일스는 현지 군인들에게 앉아있는 소를 체포하라고 명령을 내렸다.

 1890년 12월 15일 새벽시간에 인디언 경찰이 시팅불의 거처에 들어가서 시팅불을 깨웠다. 시팅불은 영문도 모른 채 주재소로 가기 위하여 집을 나섰다. 이 때 망령춤 옷을 입은 수많은 인디언들이 모여들었다. 인디언경찰과 시팅불을 보호하려는 인디언들 간에 몸싸움이 벌어졌고 이 과정에서 인디언경찰이 권총을 발사하여 시팅불은 그 자리에서 숨졌다. 인디언의 마지막 정신적 지주가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시팅불의 죽음은 인디언 저항 세력의 종언을 의미했다.

지혜와 용맹과 덕을 고루 갖춘 앉아있는 소는 인디언의 이상적인 지도자이었다. 그가 말을 타고 달리면서 총을 쏘는 기술은 신기에 가까웠다고 하고 전투에서는 늘 앞장서서 가장 용감하게 싸웠으며 미래를 내다보고 예언을 할 수 있는 영적인 능력도 겸비하였다고 한다. 열네 살 나이에 참가했던 크로우 족과의 전투에서 그의 특별한 용맹성을 확인한 아버지는 본인의 이름을 아들에게 물려주고 본인은 이름을 뛰는 소(Jumping Bull)로 바꿨다. 1869년 훙크파파지파의 대추장으로 추대된 그는 그의 이름처럼 소와 같은 여유와 인내를 늘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인디언 지도자에게는 영적인 능력도 필요하다. 시팅불은 꿈과 환영 속에서 미래를 보고 예언할 수 있는 특별한 능력을 가졌다. 문무와 영적인 능력까지 갖춘 시팅불이야말로 인디언으로서는 최적의 지도자가 될 수 있었다. 백인들이 훙크파파의 사냥터를 침범하자 시팅불이 가장 용감하게 싸웠다. 그는 모든 일에 최고가 되기 위해 노력했다. 키는 180센티미터에 달했고 넓은 가슴과 커다란 두상은 그에게 특별한 카리스마를 갖게 해주었다.

원래의 이름인 ‘타탕카 이요탕카(또는 타탕카 이요타케)’가 앉아 있는 소를 의미하듯이 그는 용맹성보다는 인내심이 더욱 돋보이는 지도자이었다. 어틀리(Robert M. Utley)는 그가 쓴 시팅불의 전기에서 “그는 진정한 인디언이었으며 전통 문화에 충실한 문화의 수호자이었다. 그는 훙크파파 지파의 참다운 애국자였으며, 부족의 가치관과 제도를 지키려고 노력했다.”라고 기술했다.

운디드니 대학살
스탠딩 록 인디언 보호구역에 있던 훙크파파지파 인디언들은 그들의 큰 지도자 시팅불을 잃은 후 망령춤을 출 수 있는 곳을 찾아 떠났는데 이 중 일부는 마지막 남은 큰 추장 붉은 구름을 찾아 파인릿지 인디언 보호구역으로 향했다. 1890년 12월 17일에 도망가던 100여명의 인디언들이 큰 발(Big Foot)이라는 별명을 가진 점무늬 엘크사슴(Spotted Elk)이 추장으로 있는 샤이엔 강(Cheyenne River) 인디언 보호구역에 소재하는 미네콘주족 마을에 들렀다. 그날은 미국 전쟁부가 큰 발을 망령춤 소요사건의 주모자로 분류하여 체포하라는 명령이 떨어진 날이다. 큰 발은 레드 클라우드의 보호를 받기 위하여 미네콘주 지파와 훙크파파 지파를 이끌고12월 23일 파인릿지로 출발했다. 가는 도중 폐렴에 걸려 각혈을 하는 등 심한 고생을 하였다. 12월 28일 큰 발 일행은 제7기병대 소속 군인들에게 붙들려 운디드니 개천 옆에 있던 군 초소로 끌려갔다. 그 날 밤늦게는 제7기병 연대의 나머지 병력도 도착하여 초소 주위에는 팽팽한 긴장이 조성되었다. 십 수 년 전 카스터가 지휘하던 그 기병연대는 지금은 퍼시스(James W. Forsyth) 대령이 연대장을 맡고 있었다.  1868년 9월에 있었던 비처 섬(Beecher Island) 전투에서 매부리코를 죽인 퍼시스 수색대를 창설했던 사람은 다른 퍼시스(George Alexander Forsyth)이다.

다음날 아침 인디언들을 한 곳에 모은 다음 무장해제를 실시했다. 자진해서 내놓은 총이 몇 자루 되지 않자 군인들이 천막 속으로 들어가 구석구석을 샅샅이 뒤져도 별로 나오는 것이 없었다. 다음으로 미군들은 인디언의 몸속을 수색해서 총 두 자루를 찾아냈다. 그 중 하나는 검은 코요테(Black Coyote)라는 이름의 젊은 전사의 것이었다. 블랙 코요테는 청력 장애인이었다. 그는 총을 높이 들면서 비싼 돈을 주고 산 자기의 총이라고 소리를 질렀다. 이 때 미군이 인디언 전사에게 달려들어 총을 뺏으려던 순간 총소리가 났다. 그 때부터 미군은 기관총까지 동원하여 인디언을 향하여 무차별 사격을 가했다. 어린이나 부녀자를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인디언들을 죽였다. 14년 전 카스터가 당했던 수모에 대한 분풀이를 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게 만드는 대 참극이었다. 이 광란은 또 하나의 인종청소 성격의 대 학살극으로 역사에 기록되었다. 350명의 인디언 중에서 거의 300명이 목숨을 잃었다. 미군도 25명이 사망하였는데 이는 미군 측의 사격실수나 유탄으로 인한 피해로 추정된다. 이로써 거의 40년에 걸친 평원 인디언들의 유혈 투쟁은 그 막을 내렸다.         (다음 호에 계속)


김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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