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담객설閑談客說: 산너머 남촌에는
보스톤코리아  2016-05-02, 12:02:24 
  봄이 한창이다. 봄엔 꽃이 있을진대, 봄노래와 어울린다. 소리 높지 않아도 된다. 콧노래도 좋다는 말이다. 그윽하지 않은가.

산너머 남촌에는 누가 살길래
해마다 봄바람이 남으로 오네
아 꽃피는 사월이면 진달래 향기
밀익는 오월이면 보리내음새
어느 것 한가진들 실어 안오리
남촌서 남풍불때 나는 좋데나
(김동환 작시, 김동현곡, 박재란 노래)

  한국인은 타민족에 비해 노래를 잘 한단다. 타고난 핏줄인 모양이다. 그건 내가 인정한다. 한국엔 골목마다 노래방이 즐비하니 그걸 증명한다고나 할까. 하지만, 나는 노래라면 젬병이다. 

  오래전 이야기이다. 남자교인이 절대 부족한 교회였다. 성가대를 꾸렸는데, 당연히 남자파트가 약했다. 성가대 지휘자가 나를 불렀다. ‘성가대에 앉아 베이스를 맡으라.’ 부탁아닌 강요였다. 꼬득임이 이어졌다. ‘옆에 앉을 장로님만 따라 소리내면 된다’. 망서림없는 내 변명이다. ‘난 뼛속까지 음치’ ‘난 모태 음맹’ ‘난 악보를 읽을 줄 모른다’. 소용없는 줄 알면서 주섬주섬 주워삼켰다. 

  그럭저럭 견딜만 했다. 겁없는 자신감도 덩달아 자라났다. ‘이것 그닥 어렵지는 않군.’ ‘그럼 그럼 내 목소리는 원래 나쁘지 않아’ ‘어려서 제대로 음악교육을 받지 못한 탓이야’ 스스로 위안과 오해가 충만해져 갔다. 하긴, 바로 옆자리 베이스 장로님을 따라 부르는데 무슨 큰 어려움이 있으랴. 하지만 장로님, 하루라도 자리를 비우면 베이스는 죽고 너무 고요해졌다. 입도 뻥끗할 수 없었으니 말이다. 그날은 크리스마스이브 고요한 밤, 거룩한 밤 되는 거다. 간간히 화음을 만들지 못하는 괴음怪音이 섞이면서 몇달이 흘렀다. 

  지휘자는 원래 성질 더럽다고 했다. 하지만 우리 성가대 지휘자는 달랐다. 겸손했고 조용했으며, 격려를 아끼지 않던 분이었다. 헌데, 이 양반이 내게는 별 말이 없었다. 잘하네 못하네 그런 이야기도 없었던 거다. 하긴 뭐 잘 한일이 있을까만, 그런가 보다 했다. 성탄절이 가까워 왔다. 지휘자는 성탄 칸타타를 탐냈다. 나야 칸타타가 얼마나 고난도의 곡인지 알턱이 없다. 연습이 시작됐다. 당구삼년 음풍월이었다. 내게는 음치 성가대 삼개월에 성聲칸타타 합창에 당당히 기여할 가당치 않은 자신감이었던 거다. 음정이 맞으면 다른 파트와 어울려 듣기에 버걱이지 않는다는  걸 알았다. 귀에서 공명이 되는걸 알아갈 즈음이다.

  한참 연습에 몰두하고 있었다. 지휘봉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지휘자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뜻이다. 부드러운 성미에도 열 받았던 모양이다. 설마 했는데, 벌개진 얼굴로 그가 나를 올려다 봤다. “김집사, 그 부분에선 소리를 내지 마세욧! 입만 벌리며 소리내는 척만 하세욧!.” 뭘 고치라는 말도 아니다. 소리내지 말라는 명령이었다. 헛된 자신감이 넘쳐 내 소리가 불협으로 갔던 거다. 철렁. 날벼락에 심장이 떨어지고, 다리에서 힘이 빠져나가는 걸 실감했다. 자신감의 유체이탈현상이었던 거다. 그렇다고 죽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할 내가 아니다.  큰소리로 응수했다. 노래는 소리 못낼 망정 대답은 우렁찼다. 

  그 이후로 상처(??) 받은 영혼은 더 이상 소리내어 노래할 수 없었다. 입은 있으되, 소리 없는 아우성된거다. 무성영화에, 비쥬얼만 있었던 게다. 그런데, 기적이 일어났다. 내 목소리 없어도, 연주후 우레와 같은 박수가 터져 나왔다. 세상에 이런 이런. 내 목소리 없이도 성가대의 연주가 대 성공이라니. 웃어야 하나. 
  봄바람이 시와 노래를 만든다. 봄바람으로 치유받는다. 남풍 불때 콧노래 하시라.

새 노래로 여호와께 노래하라 온 땅이여 여호와께 노래할지어다 (시편 96:1)


김화옥 
보스톤코리아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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