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 오염, 몸의 기억: 우번 식수 오염 사건과 대중 역학 (Popular Epidemiology)
보스톤코리아  2016-05-23, 12:09:07 
독성 화학 폐기물의 문제에 대한 경종을 울렸던 러브 커낼 사건(보스톤코리아 5월 6일, 13일자 칼럼 참조)이 미국 대중에게 알려진 지 얼마 지나지 않은 1979년 5월 22일, 매사추세츠주 이스트 우번의 식수 공급원인 우물 G와 H가 폐쇄되었다. 식수의 독성 화학물 오염 수준이 높게 측정되었던 탓이다. 그해 가을, 백혈병 진단을 받은 가족 구성원이 있는 지역 주민들이 질병 통제 본부 (CDC)에 식수의 오염과 백혈병 간의 상관 관계에 대한 조사를 촉구하였고, 이듬해 초, 이들을 중심으로 지역 주민들의 조직인 ‘더 깨끗한 환경모임’For A Cleaner Environment (FACE)가 결성된다. 1991년 이 지역이 수퍼펀드 지역으로 지정되어 식수 오염에 원인을 제공했던 대기업들에게 총 6,950만 달려의 배상 책임을 물을 수 있게 될때까지 십 년이 넘게 진행될 긴 싸움의 시작이었다. 

1972년 지미 앤더슨이라는 5세 소년이 매우 희귀한 소아암의 일종인 급성 림프성 백혈병 진단을 받았다. 얼마 후, 지미의 엄마인 앤 앤더슨은 이웃들 중에서도 그녀의 아들과 마찬가지로 이 희귀한 백혈병에 걸린 아이들이 다수 있음을 알게 된다. 앤과 같은 교회에 다니는 도나 로빈슨의 아들 로비도, 앤의 거주지와 꼭 한 블럭 떨어진 곳에 거주하는 조나의 아들 마이클도, 또 다른 이웃인 튜미의 아들 패트릭도 모두 백혈병, 그것도 희귀하고도 치명적인 종류의 백혈병 진단을 받았다는 점은 충격적인 사실이었다. 

앤 앤더슨 주변에서만도 무려 열두 명의 아이들이 백혈병 진단을 받았다. 그리고 그들 중 여덟 명의 아이들은 반경 1/2마일 내에 거주하고 있다. 또한 그 중 여섯 명의 아이들은 거리가 매우 가까운 이웃이다. (후에 조사한 바에 따르면 1964년부터 1979년까지 15년동안, 당시 인구 3만 6천여명의 도시 우번에서 무려 28명의 아이들이 이 희귀한 소아 백혈병에 걸렸다. 환경적 요인을 배제하고는 이 ‘우연’을 달리 설명할 방도가 없었다.) 앤 앤더슨은 그녀 자신의 아들을 포함하여 백혈병 진단을 받은 이웃 아이들이 먹는 물이 같다는 대목에서 우번의 식수에 주목하게 된다. 게다가 오래 전부터 우번의 주민들은 수돗물에서 이상한 냄새가 나고 색깔도 탁하다고 호소해왔던 터였다. 하지만 이 문제에 대해 우번시는 외면한 채로 시간이 흘렀다. 

1979년 어느 날, 납, 크롬, 비소 등의 독성 화학물질이 담긴 184개의 드럼이 이스트 우번지역에 식수를 대부분 공급하는 우물 G 와 H 근방에 폐기되어 있다는 충격적인 사실이 지역신문인 우번 타임즈에 의해 보도되었다. 같은 해 5월, 우물  G,  H 가 수질 검사를 받게 되는데, 조사 결과 드럼통에서 흘러나온 화학 물질들과 동일한 납이나 비소 등이 수돗물에서 검출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음용수 속에 발암성인 트라이클로로에틸렌 (TCE)을 비롯한 유기 화학용제가 다량 검출되었는데, 매우 위험한 수준이었다.  (지하수의 TCE 오염은 신경 이상, 세포 변이, 간손상, 그리고 암등을 유발할 수 있다는 점이 동물실험으로 입증되어 있다.) 이에 따라 결국 문제의 우물들은 폐쇄조치에 처해진다. 

같은 해, 우번 지역의 암 사망률이 평균보다 훨씬 높다는 사실까지 밝혀졌다. 주민들이 ‘의구심’을 넘어 ‘조직의 행동’을 개시한 것도 이 무렵이다. 이리하여 1980년 초엽 ‘지미 엄마’ 앤 앤더슨, 지역 목사 브루스 영 등이 주축이 되어 결성된 주민의 모임이 바로 FACE였다. FACE의 압력에 의해 매사추세츠 환경국 EPA은 지하수의 흐름을 추적하고 언제, 어떻게 우물 G 와 H가 오염되었는지를 조사했다. 

한편 공중보건국 (DPH)은 CDC의 도움을 받아 백혈병 발병과 식수 오염의 상관관계에 대한 조사에 착수했다.  DPH는 식수의 오염이 백혈병 발병-사망률의  증가와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렇다면 유독 높은 백혈병의 원인을 어디서 찾으라는 말인가? 주민들 사이에서 별다른 액션을 취하지 않는 정부, 주민들의 건강 문제를 신경쓰지 않는 것 같은 정부기관들에 대한 불신이 커졌다.

1981년 11월, 하버드 공중보건 대학 연구자들이 FACE와 함께 이 사건을 조사하기로 결정했다. 하버드의 연구자들에게 트레이닝을 받은 300명의 우번 커뮤니티의 봉사지원자들이 우번 전체의 54%에 해당하는 3,257가구를 대상으로 전화 여론 조사를 실시했고, 하버드 연구팀은 이렇게 모인 데이터를 바탕으로 통계적 결과를 찾아냈다. 지역주민과 과학자들의 공조는 당시 보스턴 글로브지의 표현을 빌자면 “환경-건강 영향 분석에 있어서 하나의 이정표가 될만한”파트너십이었다. 결국 1984년 2월 8일, FACE- 하버드 팀은 우번의 환경 오염이 소아 백혈병 발병의 주요 원인이었을 뿐만 아니라, 유산이나 사산, 신생아 사망을 일으키고, 구개열, 다운 증후군등의 선천성 기형 등과 밀접한 관련이 있었음을 밝혔다. 

우번의 주민들은 커뮤니티에서 발생한 공중 보건 상의 문제를 발견하고, 문제의 원인에 대한 가설을 제시하고, 이를 입증하기 위해 커뮤니티와 소통하며, 문제의 원인을 규명할 수 있도록 정부 기관에 압력을 가하고, 역학적 조사의 적극적인 주체가 되었다. 
(다음 주에 계속)

보스톤코리아 칼럼리스트 소피아
us.herstory@gmail.com
소피아 선생님의 지난 칼럼은 mywiseprep.com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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