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담객설閑談客說: 라면먹고 갈래요?
보스톤코리아  2016-08-08, 11:58:17 
‘라면먹고 갈래요?’. 영화 ‘봄날은 간다’에서 이영애가 키가 멀대처럼 큰 배우에게 던진 코멘트이다. 라면으로 밀당이 시작된 건가? 영화에서 연애가 라면처럼 맛있다. 

  아직 신혼 시절 적 이다. 라면에 찬밥을 말아 먹는 내 모습에 아내는 기겁을 했다. 가엽다는 표정이었는데, 눈길을 돌리며 혀를 차는듯 싶었다. 결혼전 처가에서는 라면에 밥을 말아 먹는 걸 본일이 없는 거다. 내가 속으로 투덜거렸다. 이 황홀한 맛을 알지 못하는자, 인생을 논하지 말라.

  이것도 신혼일 적이다. 라면은 역시 송학표 양은 냄비에 끓여야 한다. 하나를 끓였다. 어린 아내에게 건성으로 물었다. 라면 먹을래? 고개를 가로로 젓는 아내를 보면서, 하나만 끓였다. 보글보글 끓은 라면을 먹으려 젓가락을 들었다. 퍼지는 라면 냄새에 아내가 젓가락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더운 라면냄비를 향해 돌진해왔다. 사랑스런 아내에게 주지 못할게 무엇인가. 하지만, 이건 아니었다. 내 안색이 바뀌었고, 볼멘 소리가 터져 나왔다. ‘안 먹는다며. 내가 먹고 끓여 줄께.’ 그렇다고 참을 수 없는 라면의 유혹을 물리칠 수 있는 당찬 아내가 아니다. ‘아냐, 라면은 뺏어 먹는게 제맛이야.’  아아, 아내냐 라면이냐. 애써 부드러운 표정을 지었다. 속으로만 가시돋친 말을 삼켰다. ‘너 다 먹어라.’  아내의 이 못된(??) 버릇은 오랫동안 계속되었다. 

  라면은 안경을 벗고 먹어야 한다. 면발을 삼킬 적에 입에서 후르륵 소리가 나야한다. 오물오물 먹는 건 아니다. 라면 국물은 그릇을 입에 대고 살살 불어가며 마셔야 한다. 스푼으로 떠서 먹는 건 라면국물을 모독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이게 라면에 대한 예의 일 것이고, 맛을 아는 매니아의 행동수칙 일게다. 그런데, 이런건 선비가 할짓은 못된다. 그래도 어쩌랴. 인이 박혀 있은걸. 라면 한개의 행복이라 해야 할꺼나. 

무지한 식욕을 부끄러워 말자
정말 산다는 것은 허기를 다스리는 일
권력도 부도 
라면 한 개의 포만감보다
못한 것을
(정구찬, 라면을 끓이며)

  내가 라면을 처음 맛본건, 열살 즈음일게다. 어머니는 닭이 그려진 라면을 사오셨고 그걸 끓여 주셨다. 어린 아들과 중년의 어머니는 그런데 젓가락을 쉽게 라면 그릇에 댈 수 없었다. 더운 김에선 전혀 맡아 보지 못했던 냄새가 날려 나왔기 때문이다. 국물에 뜬 기름기는 편안해 보이지 않았다. 어머니는 국물을 버렸다. 비상책이고, 임기 응변이다. 남은 라면국수를 물에 헹궜고, 멸치국물에 말았다. 어머니의 말씀. ‘이제야 먹을만하군.’ 어린 아들은 적극 동의 했다. 어머니나 어린 아들은 라면 비린내를 감당할 수 없었던 거다. 버린 라면국물을 아까워 하지 않았다. 뜨거운 라면 국물의 참맛을 알려면 한참 세월을 기다려야 했다.

  라면을 끊을 수 없다. 아내에 말에 순종하는 착한 남편일지라도 이것만은 저항이다. 참을 수 없는 라면의 유혹이여. 내가 일생동안 먹어 치운 라면은 몇개 일까? 기록하지 않았으니 알 수 없다. 오늘 저녁엔 라면을 밤참으로 먹을 것인가. 그리고 아내에게 다시 물을지도 모르겠다. ‘라면 먹을래?’ 

‘음식을 먹으매 강건하여지니라’  (사도행전 9:19)


김화옥 
보스톤코리아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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