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영의 세상 스케치 576회
보스톤코리아  2016-12-22, 18:38:44 
엊그제는 캘리포니아 주 LA에서 문학 행사가 있어 며칠 다녀왔다. 행사 전날 6시간의 비행시간을 거쳐 LAX에 도착해 정해놓은 호텔로 향했다. 코리아타운의 호텔에 묵으니 미국이 아닌 한국이란 느낌이 들었다. 어디를 둘러봐도 한글로 된 한국 간판이 가득하고 오가는 인파들 속에서조차 외국인보다 한국인들이 더 많았다. 보스톤과는 너무도 상반되는 LA 도시의 풍경이기도 하다. 여하튼 도착한 날 오후는 그렇게 한국 타운에서 저녁을 먹고 호텔에 돌아와 편안하게 지냈다. 복잡한 도시 안에서의 홀로 있음이 때론 큰 묵상의 시간일 때가 있다.

문학 행사는 다음 날 저녁 6시에 시작하기에 하루를 어떻게 활용하는 것이 제일 좋을까 곰곰이 생각을 했다. 마침 아는 지인과 통화를 하게 되어 가까운 곳에 들를만한 곳이 있느냐 여쭈니 그리피스 공원(Griffith Park) 내의 그리피스 천문대(Griffith Observatory)를 추천해 주신다. 몇 년 전 캘리포니아를 방문하며 둘러보았던 곳이라 다른 곳을 갔으면 좋겠다고 하니 헌팅턴 라이브러리(Huntington Library)를 일러 주신다. 그래서 아침부터 서둘러 준비를 하고 택시를 타고 가서 4시간 정도를 둘러봐도 볼 것이 너무 많아 시간은 넉넉하지 않았다. 

그리고 행사를 잘 마치고 보스턴으로 돌아오는 비행 스케줄은 그 다음 날 자정이 다 되는 밤 시간으로 정했다. 그렇게 출발하면 보스톤에는 이른 아침에 도착하니 여러 가지로 편안했다. 사실 그곳에 사시는 지인 몇 분이 점심이나 저녁을 함께하자고 하시는데 연말연시로 모두가 바쁜 시간임을 알기에 감사 인사를 하고 나중으로 미뤘다. 그래서 혼자 하루를 어디를 다녀오면 좋을까 생각을 하는데 아는 지인이 시내의 더 라스트 북스토어(The last bookstore)를 추천해주는 것이다. 오래된 책방이라는 말에 마음은 벌써 그곳에 가 있었다. 

더 라스트 북스토어 오프라인 서점은 2005년 LA 시내의 작은 다락방에서 처음 열렸다고 한다. 그러다가 시대에 따라 변하는 판매자와 구매자의 편리와 형편에 따른 오프라인보다는 온라인 시대를 맞게 된 것이다. 무엇이든 앉은 자리에서 컴퓨터만 켜면 구매가 가능한 시대에 접어들며 서점 역시 예외는 아니었을 것이다. 그런 어려운 국면에 접어들며 책방의 의자에 걸터앉거나 바닥에 앉아 책장을 넘기던 추억을 떠올리는 사랑하는 독자들을 위한 마지막 배려의 공간을 마련한 것이다. 그 자리가 바로 2011년도에 현재의 위치로 옮겨진 것이란다.

"서점의 아름다움은 '책을 어떤 배경과 액자로 보여주느냐'를 생각하는 데서 비롯된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서점'의 작가 시미즈 레이나의 글 중에서 발췌한 글이다. 나는 이 책을 읽어보지 못했지만, 자료를 찾다가 좋은 글귀라 여겨 내용을 옮겨본다. 그렇다, 잊혀져가는 것들의 아름다움이란 아마도 이런 것이 아닐까 싶다. 지난 것들은 모두 추억이 되고 그리움이 되듯 우리 부모님 세대와 오십을 넘긴 세대는 그런 아련한 책방(서점)의 그리움이 있는 것이다. 쌓인 책무덤 사이마다 무엇인지 어스레한 불빛에 퀴퀴한 내음이 맴도는 그런 느낌 말이다.

서점에 들어설 때부터 마음이 설레기 시작했다. 가보지 않은 곳에 대한 설렘은 언제나처럼 그런 긴장감의 짜릿한 느낌으로 마주한다.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아래층 서점을 둘러보며 눈 속에 가득 들어오는 그 행복감을 추스르기 어려운 순간이었다. 그렇게 천천히 아주 천천히 둘러보기 시작했다. 무엇보다도 책장을 넘기며 책장의 골목마다에서 그 누구에게도 줄 수 없는 자신만의 시간에 그 속에 푹 빠져든 모습들이었다. 참으로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책과 사람의 거리 그리고 활자와 눈과의 거리 그 사이의 가슴 뛰는 심장 소리는 진정 아름다웠다.

이렇게 더 라스트 북스토어(The last bookstore)에서 위아래층을 3시간 정도 돌며 얼마나 행복했는지 모른다. 나도 Rainer Maria Rilke의 시집 한 권을 손에 들고 왔다. 우리들의 삶에 있어 감동이란 이처럼 무엇인가 크고 높고 멀리에 있지 않다는 것이다. 작은 것들에서의 감동이 나 자신을 꿈틀거리게 하고 그 순간의 감동이 행복이 되는 것이다. 행복은 멀리에 있지 않음을 또 깨닫는 날이다. 행복은 아주 가까운 곳으로부터 시작되고 소소한 일상에서 찾게 되는 것이다. 오늘 하루도 더불어 호흡할 수 있는 날을 주심에 감사하는 감동의 날이길 기도한다.


시인 신영은 월간[문학21]로 등단, 한국[전통문화/전통춤]알림이 역할 등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skybosto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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