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르고의 영어잡설 10] 선택된 들판 샹젤리제 거리
보스톤코리아  2018-03-19, 15:11:30 
프랑스어를 처음 배우던 시간. 선생은 "오, 샹젤리제"란 노래를 가르쳐주었다. 루이 비똥, 샤넬, 에르메스 등 이름만으로도 기를 죽이는 고급 상점들이 즐비한 샹젤리제 거리를 가본 것은 그로부터 십 수 년이 흐르고 프랑스어와는 아무 상관없는 다른 볼 일을 보러 간 때였다. 듣던 대로 비까번쩍하고 할 일이라고는 돈과 시간과 여유를 소비하는 것밖에 없어 보이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샹젤리제는 선택된 거리이다. 부자들에게만 선택되었다는 말이 아니라, 어원적으로 '선택된 거리'를 뜻한단 말이다. Champs은 '들판'이고 Élysées는 '선택된'이란 과거분사이다. 프랑스어까지 다루기에는 지면이 좁지만 일리노이 주의 Urbana-Champaign에서도 들판을 의미하는 champaign을 볼 수 있다. 말이 난 김에, Arkansas부터 Louisiana를 거쳐 Illinois에 이르는 광대한 지역은 프랑스 땅이었고 이 지명들은 당연히 프랑스어에서 왔다. 이 지명들의 끝에 오는 /s/를 발음하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영어에서 '선택하다'는 elect이고, 그러한 정치행사를 election이라 한다. 대통령 당선자는 President-Elect라 한다. 이 단어는 본래 프랑스어의 중개를 거쳐 라틴어 eligere에서 왔다. eligere의 과거분사에서 온 elite는 선택된 사람 즉 '엘리트'이다. 선택된 사람은 선택되지 않은 사람보다 그 수가 훨씬 적다. 어느 사회에서나 엘리트가 적은 이유이다. '자격이 있는'이란 말은 결국 '선택될 수 있는'이란 말이니까 eligible이다. 선택된 사람들은 자태도 우아하기 때문에 elegant, elegance는 각각 '우아한, 우아함'이란 뜻을 가진다. 

프랑스인들이 파리 중심가에서 재현하고자 했던 원조 엘리지아 평원은 호머의 <오딧세이아>에 처음 등장한다. 그는 이 서사시에서 '엘리지아 평원'을 인생이 가장 편안한 곳이라고 했다. 눈이나 비도 내리지 않고, 폭풍도 불지 않는 엘리지아 평원에서는 바다에서 시원한 서풍만이 불어와 사람들을 식혀 준다고 했다. 호머와 쌍벽을 이루는 그리스 시인 헤시오드 역시 '엘리지아'에 대해 바닷가의 축복받은 자의 섬으로 슬픔이 도달할 수 없는 곳이며 1년에 세 번 꿀처럼 달콤한 과일이 열리는 곳이라 했다. 과연 그런 곳이 존재할까? 

흔히 '낙원'이라 말하는 이런 곳은 존재하지 않는다. 셰익스피어보다 조금 먼저 살았던 영국의 대문호 토마스 모어는 그리스어의 부정 접두사 'u-와 -topia(장소)'를 결합해서 '유토피아'란 제목을 만들었다. 1년에 세 번 달콤한 과일이 열리는 곳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 곳이 있다면 살아서는 도저히 갈 수 없는 곳, 즉 죽어서 가는 천국일 수밖에 없다. 데려가기만 하고 돌아오게 해주지는 않는 사공의 ferry에 실려 망각의 강 Lethé를 건너 도달할 수 있는 곳, 그곳이 바로 엘리지아 평원이고 유토피아이고 저승이다. 동양 즉 인도에서도 비슷한 흐름을 볼 수 있다. '가자 가자 저 피안의 세계로'라고 번역하는 'gate gate paragate parasamgate'는 <반야심경>의 산스크리트어 구절이다. 여기서 ga는 영어에서 go로 바뀌고 -te는 '~하자'란 어미이다. 현장법사에 의해 중국에서 탄생한 <반야심경>이 인도로 역수출되어 탄생한 산스크리트어본과 달리 중국에서 우리나라로 직수입된 <반야심경>의 후렴구는 오랜 세월을 거치며 '아제 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로 바뀌었다. 

'선택'에 관한 이야기를 하다가 너무 벗어났다. 한국인과 일본인은 영어의 /l/과 /r/을 잘 구별하지 못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elect는 [이렉트]가 아니라 [일렉트]이고, erect는 [일렉트]가 아니라 [이렉트]이다. 일본의 전 수상이었던 나까소네가 미국 대통령이었던 레이건을 만나서 했다는 유명한 우스갯소리가 생각난다. "몇 번이나 당선되셨습니까?"라고 물어보려던 나까소네가 [이렉트]라고 잘못 발음하는 바람에 그 뜻이 그만 "몇 번이나 서셨습니까?"가 되고 말았다. 머뭇거리던 레이건이 나이가 들어서 잘 서지 않는다고 했다나 뭐래나.


올댓보스톤 교육컨설턴트, orugo4u@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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