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랑도(花郞徒)와 성(性) 그리고 태권도(跆拳道) 228
화랑세기花郞世紀, 8세 풍월주風月主 문노文弩(18)
보스톤코리아  2018-05-21, 13:38:51 
647년 선덕여왕이 후사 없이 죽었다. 그리고 선덕여왕의 유언에 따라 사촌동생인 승만勝曼이 왕위에 올랐다. 그가 신라의 제28대 진덕여왕이다. 아버지는 국반갈문왕으로 진평왕의 동생이며 어머니는 월명부인 박씨이다. 즉위 초에는 상대등 알천이 대리청정을 하였다. 그리고 648 년 부터 654년3월 죽을 때까지 친정을 하였다. 

645년 상대등에 오른 비담이 647년 1월 난을 일으켰다. 선덕이 와병 중에서 후사가 없이 임종이 가까와짐에 따라 승만이 또 차기 여왕이 등극하게 될 것을 보면서, “여자 군주는 나라를 다스릴 수 없다(여주불능선리女主不能善理)” 는 주장으로 비담은 염종과 함께 난을 일으켰다. 그 변란 중에 선덕여왕은 죽었고 김춘추와 김유신의 보좌로 승만이 왕위에 올랐다. 그리고 9일 후 그들은 비담의 난을 평정하였으며 알천이 상대등에 올랐다(선덕여왕은 1월8일에 죽었고 비담의 난은 17일날 평정되었다. 삼국유사에 보면 소지왕 때인 488년 부터 설을 쇠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정초부터 설 쇨 틈도 없이 왕궁에는 흉사와 피바람이 불었다). 알천은 진덕여왕의 재위와 거의 동일하게 상대등으로 있었다. 혼인동맹으로 맺어진 김춘추와 김유신은 진덕여왕 8여년의 재위동안 좌우에서 보좌하면서 삼국통일의 기틀을 마련하였다. 그러다 654년 진덕여왕이 죽었다. 화백회의와 진골세력은 알천으로 하여금 대리청정을 하게 하였지만 그는 김춘추에게 양보하였다. 그리고 김춘추가 제29대 왕으로 즉위하였다. 그가 태종무열왕이다. 그리고 처음 단행한 인사에서 일인지하 만인지상인 상대등으로 당시 60세나 되었던 김유신이 아닌 상당히 뜻밖의 인물인 금강을 임명하였다. 삼국사기(신라본기, 태종무열왕 2년조, 655년)에 보면 “봄 정월에 이찬 금강金剛을 상대등으로 삼고, 파진찬 문충文忠을 중시로 삼았다” 라고 기록되어 있다. 김유신은? 김춘추를 왕위에 올리는데 김유신의 공이 으뜸이었음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왜? 삼국사기 50권 중 3권이 김유신에 관한 기록이다(열전 10권 중 3권이다). 거기에 너무나도 자세하게 기록되어 전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금강에 관한 기록은 아주 짧게 두 곳에 잠깐 등장하고 사라진다. 화랑세기 없이 삼국사기의 기록만 보았을때는 금강이 누구인지도 모르게 기록되어 있다. 이찬 벼슬의 금강이 655년에 무열왕에 의해 상대등이 되었다는 기록과 660년에 죽었다는 기록이 전부이다. 하지만 화랑세기(8세 풍월주 문노편)와 교차해 보면 그의 가계와 세력 등이 상세하게 펼쳐진다. 금강은 문노의 막내아들로 진덕여왕이 후사없이 죽고나서 차기 왕을 세울때 김유신 못지않게 김춘추를 도와 그들의 세력을 확장하였다. 그리고 그들은 알천의 세력을 누르고 성골이 사라진 신라 왕실에서 최초의 진골이 왕이 되는 서막을 열었다. 김춘추의 아버지 김용춘은 진지왕의 아들이고 어머니 또한 진평왕의 딸인 천명공주(문정태후) 였지만 김춘추는 진골이었다. 기록에는 없지만 두 가지를 추측해 볼 수 밖에 없다. 진지왕이 폐위될때 그 후손들이 족강이 되었거나 진평왕이 자신의 적자손들만이 성골이라고 위품의 범위를 좁혔을 가능성만을 추측해 볼 뿐이다. 

김춘추가 등극한 후 단행한 가장 중요한 인사에서 60세의 김유신이 아닌 2등급인 이찬 벼슬의 금강을 상대등으로 올리고 4등급의 파진찬 벼슬을 하고 있던 문충을 중시로 삼았다. 그렇다면 김유신은 상대등에 버금가는 벼슬에 있었을까? 그런 짐작이나 예상은 5년 후인 무열왕 7년, 660년 같은 삼국사기(신라본기)의 다음 기록을 보면 별로 설득력이 없어진다. “봄 정월에 상대등 금강金剛이 죽었으므로 이찬 김유신을 상대등으로 삼았다” 5년간 김유신은 아마도 이찬의 벼슬에 머무르고 있었음이 확실하다. 그리고 65세가 되어서 비로소 금강이 죽은 후에야 상대등에 오를 수 있었다. 이런 기록을 볼때 금강이 김유신보다 나이가 많았을 것이며 김춘추와 김유신이 ‘혼인동맹’으로 세력을 규합한 그들도 절대로 무시하지 못하는 세력이었다고 보여진다. 하지만 아쉽게도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에는 위의 두 가지 외엔 기록이 전하지 않는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화랑세기에 비교적 자세하게 문노의 기록과 아들 금강의 기록이 있기에 그들 가계의 정치적 세력과 금강의 나이도 유추해 볼 수 있다. 먼저 문노는 606년 69세로 세상을 떴다. 그래서 537~8년생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윤궁은 10살이 적고 같은 해에 죽었다. 그러니 윤궁은 547~8년생임이 확실하다. 그들은 문노가 39세에 결혼했으니 당시 윤궁은 29세였다. 그리고 그들 사이에서 3남 3녀를 낳았는데 금강은 막내아들이다. 그래서 금강은 606년 전에 태어나야 하고 문노와 윤궁이 결혼한 577년 이후에 태어나야 한다(윤궁의 첫남편 동륜태자가 572년에 죽었다). 그리고 윤궁의 가임연령을 45세까지로 본다면 3남3녀 모두 578년에서 592년 사이에 태어났다. 금강이 아들로서는 막내이지만 정확하게 몇째인지는 기록이 없다. 설령 가장 막내로 태어났다고 가정해도 595년생인 김유신보다 나이가 많다. 또한 문노의 어머니는 비록 가야의 공주였지만 아버지 비조부, 조부 호조, 증조부 비지 등 그의 가계는 뿌리 깊은 진골의 집안이었다. 결국 귀화하여 품위를 받은 가야 왕족의 후손인 김유신 못지 않게 전통적인 세력이었음을 볼 수 있다. 다만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에 많은 기록을 남기지 못했을 뿐 아니겠는가?        

참고문헌: 삼국사기, 삼국유사, 화랑세기 – 신라인 그들의 이야기(김대문 저, 이종욱 역주해, 소나무), 화랑세기 – 또 하나의 신라(김태식, 김영사)


박선우 (박선우태권도장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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