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다양함 속에서의 어우러짐은 神의 창조 목적이지 않을까
신영의 세상 스케치 653회
보스톤코리아  2018-07-16, 10:17:02 
벽壁이란 나를 중심으로 해서 그 어떤 관계나 일에 대해서 단절을 말해주기도 한다. 어쩌면 이해와 용서를 저버린 차가운 낱말처럼 들린다. 그 높이 쌓여진 담벼락에 창窓 하나 낼 수 있다면 막힌 숨이 탁 트일 듯싶다. 바로 그 창窓은 기독교에서 말하는 사랑이기도 하고 불교에서 말하는 자비 또는 타 종교에서의 나눔일 것이다. 종교라는 이름을 들고 말하자면 끝이 없을 얘기이다. 그 어떤 이유로도 종교나 인종에 대한 차별은 있을 수 없으며 종교는 자유이기 때문이다. 또한, 자신의 특정한 종교로 말미암아 다른 종교인에 대한 비방이나 차별은 더욱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 어떤 이유를 막론하고 종교를 강요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 관계가 가족이라 할지라도 종교의 선택은 자유여야 한다. 부모의 종교에 따라 자식의 종교는 자연스럽게 결정지어지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이가 자라 선택할 수 있는 자유마저 빼앗을 수 없기 때문이다. 자신이 믿는 신앙 안에서 곧은 마음과 긍휼의 마음이 자신에게만 머무르지 않고 타인에게까지 행동으로 몸소 실천할 수 있다면 저절로 자신의 신앙은 상대방에게 전달된 것이다. 그 어떤 종교인들의 모습일지라도 '끼리끼리의 모습'은 보는 이로 하여금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특정한 자신의 종교를 중심으로 해서 그 종교를 갖지 않으면 '믿지 않는 사람'이라고 치부해버리고 만다. '신神은 어디에….' 50년 동안 고뇌한 '빈자의 성녀(聖女)' 테레사 수녀도 내면세계에서는 '신의 부재'로 갈등을 겪었던 것을 보여주는 편지가 공개됐었다. 마터 테레사의 솔직한 고백이 더욱 가슴 깊이 다가온다. 9월이면 더욱 마더 테레사의 철저한 헌신의 삶이 가슴으로 다가오는 때이기도 하다. 마더 테레사에게 그리스도인이란 다름 아닌 '자신을 기쁘게 내어 주는 사람'이고 '타인의 고통을 함께 나누는 사람'을 의미한다고 그녀는 평생동안에 자주 인용했다. 
내 것이 무조건 옳다고만 한다면 내 것 밖의 또 다른 것은 틀린 것이 되고 만다. 우리는 나와 다르면 틀렸다고 단정해버리는 버릇이 있다. 우리는 '다른 것과 틀린 것'의 구분을 제대로 할 수 있어야 한다. 이 세상에는 수많은 민족과 인종이 살고 있다. 나와 다른 것들은 수없이 많다. 이렇듯 나와 다른 모든 것을 틀리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다양한 것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아름다운 삶이면 좋겠다. 너무도 어린아이 같은 생각이긴 하지만 가끔 이처럼 아이의 마음으로 눈으로 세상을 보면 좋겠다. 모두가 똑같은 얼굴로 마주한다면 얼마나 지루한 하루를 보낼까 하고 말이다.

인류의 다양함 속에서의 어우러짐은 神의 창조 목적이었고 보기에 참 좋았더라의 아름다움이기도 하다. 나 자신만을 위한 안전한 공간의 벽壁을 높이 쌓는다면 아마도 그 벽에 덮여 내 몸과 마음과 영혼이 응달에서 병들지 않을까 싶다. 높이 쌓은 벽을 허물 자신이 없다면 그 벽壁에 창窓 하나 낼 수 있으면 좋겠다. 이곳과 저곳의 단절을 뚫고 그 창으로 바라볼 수 있는 세상이면 좋겠다. 모두가 다른 색깔의 피부를 갖고 생김새가 다른 얼굴과 언어가 다르고 문화가 다른 사람들이 어우러져 사는 이 세상이 참으로 아름답지 않은가.

내 것만 옳은 것이 아니고 네 것도 있음을 인정해줄 수 있는 여유와 네가 있어 내가 있음을 고백하는 우리의 나눔이면 좋겠다. 맑고 고운 햇살이 그 창窓을 통해 생명을 키우고 호흡할 수 있도록 말이다. 창窓은 바로 닫히고 쌓이고 막힌 것을 뚫어주는 통로인 '소통疏通'인 것이다. 누가 먼저 다가오기를 기다리지 말고 내가 먼저 마음의 문을 열어 맞이하는 날이면 좋겠다.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내가 당당하면 굳이 다른 이의 것을 트집 잡아 마음 상하게 할 필요가 있을까 하고 말이다. 그 어떤 종교를 떠나서 삶을 나눌 수 있고 그 삶의 노래를 함께 부를 수 있음이 참 행복은 아닐까 싶다.

"기독교인이 절에 들러 스님과 인사를 나누며 합장을 하면 큰일이라도 난 것처럼…." 기독교인이 절에 들어갔다고 해서 밖에 나올 때 승복이라도 입고 나오는가 말이다. 사람의 맡은 역할은 모두가 다르기 때문이다. 그것을 종교적인 언어로 표현하자면 '사명'이나 '소명'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 어떤 특정한 나의 종교를 강조한 나머지 다른 종교인들에게 생각 없이 던지는 날카로운 상처의 말에 대해서는 무어라 말할 것인가. 너와 내가 다른 것을 서로 인정해 줄 수 있는 나눔이길 소망한다. 인류의 다양함 속에서의 어우러짐은 神의 창조 목적이지 않을까.


시인 신영은 월간[문학21]로 등단, 한국[전통문화/전통춤]알림이 역할 등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skybosto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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