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속에 숨겨진 한국을 찾는다 - 유길준 트레일
한국언론진흥재단 후원 보스톤코리아 창간 15주년 특별기획. 미국속 선조들 사적지 복원하기 1
피바디 에섹스 박물관의 첫 한인명 전시관,
보스톤코리아  2018-10-18, 16:45:41 
(좌)피바디에섹스박물관 큐레이터 데이지 왕씨가 과거 유길준관이 이름이 붙어있던 1층 전시관에서 한국관이 사라진 이유에 대해 설명했다. (우)한국관 갤러리 옆 구석에 위치한 장승, 과거 한국관이었던 것을 확인하는 유일한 흔적이다
(좌)피바디에섹스박물관 큐레이터 데이지 왕씨가 과거 유길준관이 이름이 붙어있던 1층 전시관에서 한국관이 사라진 이유에 대해 설명했다. (우)한국관 갤러리 옆 구석에 위치한 장승, 과거 한국관이었던 것을 확인하는 유일한 흔적이다


 유길준의 ‘서유견문’은 보스톤을 이렇게 표현했다. “미국사람들은 이곳을 문물의 중심지라고 부른다. 이 도시의 어린아이까지도 언행과 지식이 남달라서, 먼 곳으로 나다니게 되면 지나던 사람까지도 “보스톤 시민의 자녀”라고 하면서 그 부모의 이름을 묻는다고 한다” 
유길준의 보스톤에 대한 남다른 애정이 느껴진다. 130여년이 지난 지금 보스톤은 유길준을 어떤 형태로 기억할까. 보스톤의 한인사회가 그를 기억하려는 여러 노력을 기울였지만 유길준의 발자취 즉 사적지는 안녕하지 못했다.  
이처럼 미국속 선조들의 사적지는 잊혀져 가거나 누구의 소유로 어떤 형식으로 보관되고 있는지 알려지지 않은 곳이 많다. 보스톤코리아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후원으로 한인 이민선조들의 흔적과 그들의 사적지를 찾아봤으며 그들의 사적지를 기억하고 몸에 담는 트레일을 구성해보고자 한다. (편집자 주)


보스톤 북동쪽 차로 40여분 거리에 있는 항구도시가 샐럼(Salem, MA)이다. 유서깊은 도시 샐럼의 명물은 피바디에섹스박물관(Peabody Essex Museum).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박물관이다. 미국내에서는 최초로 한국인의 이름을 딴 전시관 <유길준관>을 2003년 설치한 곳이기도 하다. 그런데 1층 전시관에는 마땅히 있을 것으로 생각됐던 과거의 유길준관이 없다. 입구에 장승만이 덩그라니 남아있어 옛날의 추억이 틀리지 않았음을 지키고 있다. 

박물관 큐레이터 데이지 왕 씨는 “유길준관은 2012년 박물관 전체 재단장 과정 중에 임시적으로 문을 닫았으며 2020년에 재개관을 계획하고 있다”고 밝혔다. 현재 중국관도 임시적으로 문을 닫은 상태이다. 임시라 하기엔 8년은 너무 길다. 그럼에도 왕씨는 “피바디 에섹스 박물관 한국관은 미국내에서 가장 많은 2000여점이 넘는 유물을 소장하고 있다”고 자랑한다. 아무리 많이 소장해도 박물관에서 전시되지 않은 유물은 의미가 없다는 것을 의식한 변명처럼 들렸다. 한인들이 줄기차게 찾았다면 10년에 가까운 기간을 ‘임시’라고 이처럼 자신있게 이야기 했을까. 

대부분의 유명 박물관의 유물들이 제국주의의 흔적이었던 것과 달리 피바디 에섹스박물관의 한국관은 에드워드 모스 박물관장과 유길준간의 친분과 한국과 미국의 외교활동으로 소장품들이 수집되었다. 

박물관 첫 한국유물은 윤치열이 전달한 부채였다. 관심을 가진 모스 박물관장은 1882년 통상수호조약이 체결되자 $125을 들여 225 한국 유품을 인수했다. 독일 외교관이었으며 고종의 외교자문관이었던 폴 뮐렌도르프를 통해 부탁한 것이었다. 

데이지 왕씨는“유길준은 에드워드 모스 교수를 도와 박물관에서 한국 소장품을 설명하고 함께 카달로그를 만드는 작업을 했다”고 밝혔다. 갑신정변으로 미국을 떠나게 된 유길준도 자신의 소장품을 박물관에 기증했다. 이로써 다양한 한국 전시품을 확보한 피바디에섹스 박물관은 1893년 시카고에서 열린 세계박람회에서 전시된 생황, 가야금 등 한국 고유의 악기들을 구입해 보유키도 했다. 

왕씨는 “피바디 에섹스 박물관에서 가장 소중한 소장품은 역시 유길준의 유물”이라 말하고 “유길준은 당시에 이미 한국이 어떻게 발전해야 하며 어떤 현대화, 민주화를 이뤄야 하는지 한국 사람들에게 전했던 사람”이라고 밝혔다. 피바디 에섹스 박물관은 특히 1800년대 한국의 의복, 그리고 고종 황제를 비롯한 한국의 사진 등 희귀 한국사진도 보관하고 있다. 

피바디 박물관 지하에 보관된 유길준과 보빙사의 유물들. 특히 유길준의 갓은 여전히 완벽한 상태였다. 이 유물을 보기 위해서는 미리 박물관 측과 일정을 조율해야 한다
피바디 박물관 지하에 보관된 유길준과 보빙사의 유물들. 특히 유길준의 갓은 여전히 완벽한 상태였다. 이 유물을 보기 위해서는 미리 박물관 측과 일정을 조율해야 한다
 
한국의 물품들이 모두 지하로 들어갔지만 얼마나 꼼꼼히 잘 있는지 육안으로 확인해야 했다. 박물관측은 한국 유물 관람을 원하는 그룹에게는 1-2개월의 사전 조율을 통해 직접 볼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다. 

한국관의 유물들은 지금도 잘 보존되고 있었다. 심지어 당시 보빙사들이 사용했던 종이 명함은 지금의 명함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한국의 교류재단도 4만여불을 지원해 한국사진의 디지털화 작업을 도왔다. 

콘크리트 빌딩으로 숨겨진 유길준의 하숙집 
샐럼시의 서머 스트리트의 33번지(33 Summer St., Salem, MA) 집은 1883년 엘리즈 도열씨가 하숙집을 운영하던 곳이다. 당시 검은 머리 이방인이 이집에 하숙했는데 그가 유길준이다. 지금은 그집을 찾을 수 없다. 유길준의 하숙집으로 추정되는 곳에 4층의 콘크리트 빌딩만 남아있을 뿐이다. 주위를 둘러보다 건너편 집에 하얀 팻말을 발견했다. “양조업자 존 스톤이 1820년 이전에 짓다. 히스토릭 샐럼” 서머스트리트 36번지 집은 그렇게 팻말을 달고 있었다. 

비영리단체 히스토릭 샐럼이 섬머스트리티 36번지에 붙인 팻말
비영리단체 히스토릭 샐럼이 섬머스트리티 36번지에 붙인 팻말
 
샐럼의 역사를 간직하는 비영리 단체 히스토릭 샐럼(Historic Salem)의 매니저 앨리사 코너리씨는 유길준의 이야기를 듣고선 “역사적인 빌딩을 허물고 추한 빌딩을 세웠다. 유길준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알려졌어야 하는데 전혀 몰랐다”고 한탄했다. 유길준이 하숙하며 살던 곳은 CDI빌딩으로 바뀌었던 것이다. 

유길준의 하숙집이 있었던 샐럼의 섬머스트리트 33번지, 이 건물은 바이오 회사 CDI의 소유다
유길준의 하숙집이 있었던 샐럼의 섬머스트리트 33번지, 이 건물은 바이오 회사 CDI의 소유다
CDI의 알렉산더 카파노 CDI사업본부장과 맷 프레스맨 커먼그라운드사 빌딩관리 매니저
CDI의 알렉산더 카파노 CDI사업본부장과 맷 프레스맨 커먼그라운드사 빌딩관리 매니저
  
히스토릭샐럼의 자료에 따르면 현재의 4층 홀요크(Holyoke) 콘크리트 빌딩은 1936년 완공됐다. 홀요크뮤추얼화재보험사가 소유하다 2년전인 2016년 하버드 교수가 설립한 CDI가 인수했다. 과거 유길준의 하숙집 자리 4층에 자리잡은 회의실에서 만난 알렉산더 카파노 CDI사업본부장과 맷 프레스맨 커먼그라운드사 빌딩관리 매니저는 “바로 이 자리”라며 한국최초유학생 유길준의 하숙집이었다는 사실에 기뻐했다. 

히스토릭 샐럼의 도움을 받아 보스톤한미예술협회는 CDI측과 접촉해 유길준이 언제부터 언제까지 머물렀으며 어떤 사람이라는 내용의 플랙을 빌딩에 달기로 하고 협상에 들어갔다. 
 
몰랐던 유길준 벽화, 거버너스 아카데미
피바디에섹스 박물관을 떠나 동북쪽으로 95번을 타고 30분가량 가면 바이필드(Byfield, MA)의 거버너스아카데미(구 거버너 덤머 아카데미)를 만난다. 1763년 건립된 미국 최초의 기숙학교로 2018년 현재 이 아카데미에는 14명의 한국학생들이 공부하고 있다. 

유길준은 샐럼을 떠나 바이필드로 옮겨 학업에 정진했다. 그는 일요일이면 샐럼을 다시 찾았다. 유길준의 모스 관장에게 1885년 2월 3일 쓴 편지에서 “나는 매주 일요일 샐럼을 찾는 것이 너무 좋습니다. 당신이 말하는 것을 들을 때마다 나는 무언가를 배우게 됩니다”라고 적었다. 유길준의 서유견문을 쓰게 된 바탕이 샐럼에서 점차 공고화 됐음을 확인할 수 있다. 

현재는 아파트로 변한 에드워드 모스의 집
현재는 아파트로 변한 에드워드 모스의 집
 
에드워드 모스 박물관장이 살았던 집은 샐럼의 피바디에섹스박물관에서 1.6킬로(1마일)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다. 모스 관장에게서 영어를 배웠던 린든 스트리트 12번지는 4세대가 거주하는 아파트로 변해 있었다. 

28세의 나이로 유길준은 하버드 진학의 꿈을 안고 거버너스 아카데미에서 공부를 하던 도중 갑신정변 실패 소식을 듣고 한국행을 택했다. 그의 첫 하버드 진학의 꿈은 그렇게 사라졌지만 유길준은 상당히 뛰어난 성적을 거뒀음을 유길준의 편지에서 찾아볼 수 있다. “어제 오후 시험을 봤습니다. 87%를 득점해 평균 학생보다 16%높았고 100%를 득점한 학생보다 13% 낮았습니다”라고 썼다. 

유길준의 성적에 관한 기록은 거버너스쿨에 남아있지 않았다. 거버너 학교측은 “유길준의 공식 기록은 없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학교는 유길준을 기억하고 있었다. 거버너스아카데미 도서관 실내에 커다란 벽화에는 유길준의 모습이 크게 그려져 있었다. 벽화의 유일한 동양인이기도 하다. 

거버너스아카데미 도서관에 2012년 개교 250주년 맞아 그린 벽화
거버너스아카데미 도서관에 2012년 개교 250주년 맞아 그린 벽화
 
도서관 사서 수잔 체이스씨는 “2012년 개교 250주년을 맞아 그린 벽화”라며 팜플렛을 전해주었다 팜플렛의 설명에는 덤머 주지사 부부에 이어 3번째 인물로 설명됐다. “교육개혁가로서 에드워드 모스 박물관장의 추천으로 아카데미에 합류했으며 하버드 진학을 위해 공부했으나 한국의 정변으로 귀국했다”고 팜플렛은 기록하고 있다.

바이필드소재 거버너스아카데미 도서관 앞에 설치된 유길준 기념비. 미주한인백주년기념사업회가 2003년 설치했다
바이필드소재 거버너스아카데미 도서관 앞에 설치된 유길준 기념비. 미주한인백주년기념사업회가 2003년 설치했다
 
도서관 앞에는 2003년 뉴잉글랜드미주한인백주년 기념사업회가 설치한 기념비가 있다. 바위 위에 동판으로 한국국기와 미국국기 그리고 한글로 유길준이라 새긴 기념비다. 체이스씨가 “스톤”이라고 표현하는 이 기념비는 15년째 버티고 있다. 점심을 먹고 도서관으로 들어가는 학생들의 뇌리 속에는 도서관의 한 풍경일 뿐이다. 이곳이 유길준의 기억하는 사적지란 점은 한인들의 발걸음이 잦으면 자연히 알게 될 것이다. 

유길준 트레일이 필요하다
보스톤은 미국역사의 시발점이며, 미국 한인 유학사의 시발점이다. 1883년 보빙사로 미국에 온 유길준이 남아 최초의 한인 유학생으로 공부했던 곳이 바로 여기다. 130여년을 뛰어넘은 공간에는 약 3500여 제 2의 유길준이 학업에 전념하고 있기도 하다. 

보스톤 동북쪽의 도시 샐럼(Salem)은 역사가 숨쉬는 곳이다. 마녀재판은 물론 미국 최초의 박물관인 피바디에섹스박물관(PEM), 주홍글씨의 작가 호오소온의 고향이기도 하다. 이 유서 깊은 항구도시에 유길준의 이야기를 하나 더 보태 그 역사를 더 풍부하게 만들 수 있다. 

그래서 보스톤코리아는 ‘유길준트레일’을 제안한다. 유길준이 1883년에 걷던 그 길을 걸으며 과거 유길준의 역사 한 부분을 더듬어 낼 수 있게 될 것이다. 유길준트레일은 에섹스 스트리트에 있는 피바디에섹스박물관에서 사작하자. 박물관의 유길준관은 2020년에 선보일 예정이지만 유길준의 소지품과 편지 당시 유길준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곳이다. 박물관에서 나와 에섹스 스트리트를 타고 서쪽으로 걷다보면 섬머 스트리트를 만난다. 섬머스트리트에서 남쪽 방향으로 한 블록 걸어가면 만나는 CDI 빌딩이 유길준의 하숙집이다. 약 0.4마일(0.6km) 정도 거리이니 도보로 걸어보자. 

유길준트레일, 박물관-유길준하숙집-모스박물관장집을 잇는 1.4마일(2.2킬로)에 달하는 트레일이다. 샐럼에서 바이필드로 이동 거버너스아카데미까지 포함하면
유길준트레일, 박물관-유길준하숙집-모스박물관장집을 잇는 1.4마일(2.2킬로)에 달하는 트레일이다. 샐럼에서 바이필드로 이동 거버너스아카데미까지 포함하면 '큰 유길준트레일'이 된다
 
유길준이 하숙했던 섬머 스트리트 33번지 CDI빌딩에서 에드워드 모스 PEM전 관장의 집인 린든 스트리트 12번지(12 Linden Street, Salem, MA)까지는 약 1마일(1.6킬로미터) 정도다. 유길준은 모스 관장 자택에서 6개월간 머무르다 하숙집으로 옮겼다. ‘유길준트레일’은 박물관-하숙집-관장집 3각점이다. 

시간이 된다면 바이필드(Byfield, MA)의 거버너스 아카데미까지 찾아보면 더욱 좋다. 피바디박물관-하숙집-모스 자택에서 거버너스아카데미까지를 <큰 유길준트레일>이라고 명명하자. 

많은 한인들이 유길준 트레일을 걸으며 자녀들에게 전한다면 샐럼의 깊은 역사는 유길준을 물론 한국인을 기억할 것이다. 

장명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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