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용씨, "살던 집 알고보니 이승만 살았던 집"
한국언론진흥재단 후원 보스톤코리아 창간 15주년 특별기획. 미국속 선조들 사적지 복원하기 2
미국속의 한국을 찾는다-보빙사/이승만 트레일
보스톤코리아  2018-10-25, 16:08:27 
하버드대 바로옆 12 섬너로드에 위치한 한국불교문화원 전원장 이민용씨 자택, 이곳이 이승만이 1907년 머물렀던 집이다. 처음 집을 구입했을 때 우연인지 무궁화 나무가 있었다.
하버드대 바로옆 12 섬너로드에 위치한 한국불교문화원 전원장 이민용씨 자택, 이곳이 이승만이 1907년 머물렀던 집이다. 처음 집을 구입했을 때 우연인지 무궁화 나무가 있었다.


보빙사가 1883년 처음 보스톤을 찾은 이래 두번째 보스톤 유학생이 이승만 전 대통령이다. 이승만은 유길준이 원했던 하버드의 꿈을 이뤘다. 하버드 석사과정에서 1년간 공부했던 이승만, 보스톤 삶의 흔적에 대한 자료가 어떻게 남아 현재까지 존재하는지 110년이 지난 지금 명확치 않다. 
보스톤코리아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후원으로 지난 호에 이어 두번째로 이승만 전대통령의 사적지 기념사업의 가능성을 취재했다. 선대의 역사를 미국 속에서 잘 보존하고 기억하며 그 정신을 계승하는 것은 미국내에서 자라날 후손들의 정체성 형성에도 큰 힘이 된다. 
일본의 문화 전파는 전략적이며 전방위적이다. 보스톤의 찰스강변에 벚꽃 100여 그루를 심고 이를 가꾸며, 보스톤미술관(MFA)의 적극적 교류를 통해 ‘보스톤미술관의 친 일본화’ 노력을 기울인다. 
선조의 흔적을 사적지화 하고 이곳을 찾는 것은 미국 속에 한국이 자연스레 뿌리내려 있음을 알리는 작업이다. 우리의 발걸음이 잦으면 자연스레 미국인의 발걸음도 따라올 것이다. 없는 것을 만드는 것보다 있는 것을 역사화하고 기억하는 것이 훨씬 친근한 문화 접근법이다.  (편집자 주) 


박영효의 개화파에 가담했다 투옥했던 이승만은 감옥에서 언더우드의 영향으로 개종한다. 풀려난 이승만은 유학을 결심했고 언더우드의 추천은 유학생활의 밑천이 됐다. 

조지워싱턴대를 2년만에 졸업한 청년 이승만은 1907년 여름 보스톤에 와서 1908년까지 1년동안 석사과정을 수료했다. 1909년 여름 다시 보스톤에서 미국 역사학을 공부하고서야 석사학위를 받았다. 이승만이 박사학위를 취득한 곳은 뉴저지주 소재 프린스턴 대학이다. 프린스턴은 2012년 이승만 홀을 개관했다. 그러나 이승만이 석사학위를 받은 하버드에서의 흔적은 쉽게 찾아볼 수 없다. 

하버드 대학의 기록저장소인 하버드 아카이브(Harvard Archive)는 해외 주요 대통령급 인물의 기록의 경우 졸업 후 80년간 봉인을 풀지 않았다. 봉인이 풀린 이승만의 기록을 통해 보면 청년 이승만은 하버드 대학 인근의 케임브리지시 섬너 로드 12번지(12 Sumner Road, Cambridge, MA)에서 기숙했다. 

하버드에 기록저장소에는 이승만의 성적표와 취업면담일정표가 대표적인 기록으로 남아있었다. 이승만의 성적은 그리 뛰어나지 못했다. 이는 이방인 학생으로서 겪었던 외로움과 어려움을 상상해 볼 수 있을 뿐이다. 

그나마 당시 유학생 이승만의 상황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이승만의 취업면담일정표다.. 그의 전화번호는 2334 ring 4였다. 취업면담표에서 유학생 이승만은 교수직을 원했다. 자신이 과목 즉 동양언어 역사, 영국 헌법 역사, 논리, 심리학, 현대 유럽사, 경제원론 과목 교수직을 할 수 있다고 적었다. 사업 또는 다른 직업으로 동양인들에게 설교 및 선교연설, 성경강의 하는 것을 원했다. 그는 원하는 연봉에 대해서 구체적인 금액은 밝히지 않았지만 “박사학위를 취득하는데 충분한 액수”라고 적었다. 

이승만의 집 케임브리지 섬너로드 12번지 
샐럼 유길준의 살던 집이 허물어지고 콘크리트 빌딩으로 대체된 것과 달리 섬너로드 12번지 집은 지금도 여전히 옛날의 기본 골격을 유지한 채 백년을 넘게 버텨왔다. 

현재 이집의 소유주는 흥미롭게도 한국불교문화연구원 전 원장 이민용씨다. 이승만은 100여년 후 자기가 기숙했던 곳이 한인 소유의 집이 될 것이라 상상해 본 적이 있었을까. 이 집을 구입한 이민용씨도 자신의 집이 이승만이 기숙했던 곳이라는 것을 구입 후 우연히 알게 됐다. 

하버드에서 석박사과정을 수료한 이씨에 따르면 1991년 웨스턴 신학대학(Western School of Theology)으로부터 이 건물을 구입했다. 이 건물은 대학 본관으로 사용된 건물이었다. 이 전원장은 사실 이 집을 구입하게 된 것은 우연이었고 6개월의 우여곡절 끝에 구입했다. 

부동산 전문사이트 레드핀에 따르면 이 저택은 1988년 1991년 두번에 걸쳐 소유주가 변경됐다. 아파트의 골격은 그대로 유지되고 있지만 내부는 소유주에 따라서 변경됐기 때문에 이승만 전 대통령이 1907년부터 1년간 머물렀을 당시 어떤 방에서 거주했는지는 불분명하다. 

섬너로드 이승만이 머물던 당시의 집사진
섬너로드 이승만이 머물던 당시의 집사진

현재의 이민용씨의 주택 골격은 바뀌지 않았지만 내부는 여러 형태로 바뀌었다. 지금은 10유닛 아파트먼트이다
현재의 이민용씨의 주택 골격은 바뀌지 않았지만 내부는 여러 형태로 바뀌었다. 지금은 10유닛 아파트먼트이다
  
이씨는 현재 이 집 10채의 아파트를 월세로 세놓고 일년의 절반은 뉴햄프셔에서 그리고 나머지 절반은 한국에서 지낸다. 가끔씩 관리를 위해 머무르게 되면 지하층의 방을 이 전원장은 사용한다. 

집 구입 후 청년 이승만이 거주했었을 수도 있다고 말한 것은 서울대 도서관장을 지내고 옌칭 도서관 사서를 역임한 고 백린 선생이었다. 구체적으로는 하버드 아카이브에서 확인한 취업면담표에 자필로 기록된 주소에서 드러났다. 

이씨는 “이승만의 하버드 아카이브 기록 중 가장 인상에 남았던 것은 하버드 인문대학원장에게 보낸 편지였다”고 말했다. 이승만은 대한민국 하버드대학 최초의 석사다. 더구나 대한민국 1호 박사다. 당시 이승만은 자신감에 넘쳤다.

“나는 한국에서 중요한 일을 했었고, 한국으로 돌아가서 해야 할 일이 많기에 시간이 없다. 그러므로 2년 이내에 박사학위를 받아야 한다. <중략>안된다면 조지 워싱턴 대학으로 갈 것이다. 이곳의 교수들도 나에게 2년이면 박사학위를 받을 수 있다고 한다”라는 내용의 편지다. 이씨는 이승만의 친필 편지에서 “비록 동양인이었지만 담대한 기개가 느껴졌다”고 전했다. 

아쉽게도 이번 취재에서 하버드 아카이브는 하버드대 인문대학원장에게 보낸 이승만의 편지를 확인할 수 없었다. 이승만의 이런 기록은 하버드야드(Harvard Yard)에 소재한 푸시도서관(Pusey Library)을 직접 방문해 찾아볼 수 있다. 미리 하버드 아카이브에 요청하면 이승만대통령을 기록한 보스톤의 신문 등 더 많은 기록을 열람할 수 있다. 

하버드야드 도서관에서 0.4마일(0.6킬로)떨어진 이 집, 32세의 청년 이승만이 향학열을 불태웠던 집의 현재 주인 이민용 불교문화원 전원장은 흔쾌하게 “어떤 형식이든 기념하는 동판이나 팻말이 달리는 것에 동의한다”고 밝혔다. 

사라져가는 미국 속의 한국 역사들 
이승만이 하버드에서 공부할 당시 샌프란시스코 지역에선 도산 안창호 선생이 한인들과 활발하게 활동했다. 활동이 활발했던 만큼 안창호 선생의 사적지는 샌프란시스코 전역에 산재되어 있다. 안창호 선생이 만들었거나 참여한 주요 단체는 공립협회, 대한인국민회, 흥사단 등이다. 안창호의 역사를 접할 수 있는 3곳 모두 이름없는 집으로 남아 있다. 첫 유학생 청년 유길준과, 청년 이승만의 사적지가 잘 보존되지 않았던 것처럼 안창호의 사적지도 잊혀질 위기에 있다. 

도산 안창호 선생 등 49명의 회원이 결성한 공립협회는 북미 최초의 한인민족운동단체다. 미주 한인들의 공사관 역할은 물론 세계의 항일비밀결사 신민회 활동의 계기가 됐던 단체다. 1905년 공립협회가 최초로 마련했던 회관 자리(938 Pacific Ave. San Francisco, CA)는 1906년 샌프란시스코 지진으로 파괴됐으며 현재는 개인주택이 들어서 있다. 

공립협회는 추후 한인합성협회 등과 통합해 대한인국민회로 이름을 바꾼다. 1910년 한인동포들이 모금해 페리 스트리트 232번가(232 Perry St)로 사옥을 마련했지만 1935년 베이브리지 건설로 철거됐다. 1938년에 회관을 로스엔젤레스 (1368 W. Jefferson Blvd., LA)에 신축하여 이전했다. 232번가는 상가 건물이지만 이를 기억해주는 사람은 많지 않다. 

안창호 선생은 인재양성을 목표로 강영소가 세들어 살던 셋집에서 흥사단을 발족했다. 라이온 스트리트 1914번지(1914 Lyon St)는 개인 주택으로 남아있지만 흥사단이 발족했던 곳이란 흔적은 찾아볼 수 없다. 

단지 샌프란시스코에서 3시간 반 떨어진 리들리 소재 호텔만 안창호 선생과 이승만 전대통령의 사진을 새긴 동판을 간직하고 있다. “두명의 한인 애국지사들이 투숙했던 것을 기념하여”라고 영어로 새긴 동판이 샌프란시스코에 남아 있는 유일한 안창호 선생의 흔적이다. 

켈리포니아주 리들리 소재 버지스호텔, 샌프란시스코에서 유일하게 도산 안창호와 우당 이승만의 역사를 알리고 있는 호텔이다. (사진=장현아 기자)
켈리포니아주 리들리 소재 버지스호텔, 샌프란시스코에서 유일하게 도산 안창호와 우당 이승만의 역사를 알리고 있는 호텔이다. (사진=장현아 기자)
 
샌프란시스코에서 발행되는 한글 주간지 주간 현대의 김동열 대표는 “안창호 선생의 사적지를 알고 있지만 모두가 개인들의 소유 건물이다. 왜 이곳을 방치하느냐는 질문을 받기는 하지만 사실상 이들 소유주의 소재 파악은 물론 프라이버시 침해 등의 문제가 있어 허락 구하기는 정말 까다롭다”고 이유를 밝혔다. 그러나 한인사회 전체 차원의 사적지 복원사업을 계획해서 추진하지는 않았다는 것이 김대표의 이야기다. 

보빙사-이승만 트레일을 찾아보자 
보스톤에 최초의 한국인 사절단 보빙사의 발길이 닿은 곳은 벤덤 호텔이다. 보스톤퍼블릭가든(Boston Public Garden)에서 약 0.5마일 커먼웰스애비뉴를 따라 걸으면 왼쪽 160번가의 밴덤 콘도미니엄을 만나게 된다. 커먼웰스 애비뉴와 다트머스 스트리트 교차점인 이곳은 1883년 당시 밴덤 호텔이 자리했던 곳이다. 

커먼웰스 애비뉴 가운데로는 산책로가 있으니 커먼웰스 애비뉴를 걸을 때면 반드시 이 산책로로 걸어보자. 밴덤호텔은 화재로 사라지고 그곳에 밴덤 콘도미니엄이 자리했다. 밴덤호텔 화재로 많은 소방관들이 순직했다. 순직한 소방관을 기리는 기념비가 산책로에 남아 있으니 이곳이 바로 최초 보빙사가 머물렀던 곳이다. 

커먼웰스몰에 위치한 밴덤호텔 화재 사망 소방관 추모비. 호텔로부터 대각선 방향에 있다
커먼웰스몰에 위치한 밴덤호텔 화재 사망 소방관 추모비. 호텔로부터 대각선 방향에 있다

1883년 9월 미국을 찾은 보빙사 일행의 사진, 뒷쪽 윗줄에서 세번째가 유길준이다
1883년 9월 미국을 찾은 보빙사 일행의 사진, 뒷쪽 윗줄에서 세번째가 유길준이다

화재전 과거 보빙사가 머물렀던 밴덤호텔의 모습
화재전 과거 보빙사가 머물렀던 밴덤호텔의 모습

보빙사가 머물렀던 벤덤호텔의 자리에는 벤덤 콘도미니엄이 자리하고 있다. 이곳은 160 커먼웰스 애비뉴에 위치해 있다
보빙사가 머물렀던 벤덤호텔의 자리에는 벤덤 콘도미니엄이 자리하고 있다. 이곳은 160 커먼웰스 애비뉴에 위치해 있다
    
밴덤 콘도미니엄을 보며 당시 밴덤 호텔에 기거했을 보빙사들의 모습을 상상해보자. 이들은 보스톤에서 북쪽 섬유공단이 있던 로웰(Lowell)을 기차로 방문해 산업시찰을 하고 농장도 방문했다. 

보빙사를 기억했다면 찰스강을 건너 케임브리지시로 넘어가 하버드 대학을 방문하자. 아니 더 정확히는 하버드 대학 바로 옆 이승만의 과거 집을 방문해보자. 이승만이 걸어 하버드를 향했던 길을 상상하며 존 하버드 동상이 있는 하버드 야드까지 산책하길 권한다. 

보빙사/이승만트레일, 보스톤퍼블릭가든-벤덤콘도미니엄 그리고 하버드야드-이승만의집까지 걷는 코스를 보빙사/이승만트레일로 제안한다
보빙사/이승만트레일, 보스톤퍼블릭가든-벤덤콘도미니엄 그리고 하버드야드-이승만의집까지 걷는 코스를 보빙사/이승만트레일로 제안한다
 
보스톤을 방문하면 꼭 보빙사-이승만 트레일을 기억하고 이를 찾아보자. 보빙사-이승만 트레일은 한국의 선구자들이 처음 보스톤에서 겪었을 여러가지 도전을 생각해보고 미국속의 선조의 역사를 몸으로 기억하는 작업이 될 것이다. 


장명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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