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친구가 곁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한 누림인 것을...
신영의 세상 스케치 674회
보스톤코리아  2018-12-10, 10:38:58 
세상과 타협하지 않으며 서로 이해관계를 따지지 않고 화들짝 거리며 함께라서 좋았던 그런 시절이 있었다. 시내 칼국숫집을 가거나 매콤한 낙지볶음을 먹으러 가도 함께 먹은 값을 누가 계산할까 미리 정하지 않아도 좋은 그런 어린 시절이 있었다. 이렇게 타국에 살다 보면 멀리 있는 어릴 적 편안한 친구들이 그리움으로 남는다. 가끔은 친구들과의 빛바랜 오랜 추억을 들추며 묵은 그리움을 달래기도 하면서 말이다. 나를 애써 보여주거나 아니면 감추거나 할 이유나 까닭 없이 그저 말없이 차 한 잔 놓고 마주해도 좋을 친구 말이다. 서로 곁에 있는 것만으로 이미 충분한 행복이다.

내게는 가까이에 이렇게 편안한 어릴 적 친구가 살고 있다. 남편과 함께 비지니스를 하는 친구는 늘 바쁘고 시간 내기가 쉽지 않아 자주 얼굴 보기도 힘들다. 나 역시도 밖의 활동으로 움직이는 일이 많으니 서로 시간 맞추기가 쉽지 않은 이유이다. 그러나 어느 곳에 있든, 서로에게 든든한 친구로 있는 것은 서로의 믿음인 까닭이다. 어른이 되어 만난 친구들도 서로 성향이 다 달라서 통화를 자주해야 하는 친한줄 아는 친구가 있고, 그것이 버거워 한발짝 물러나는 친구도 있다. 그렇다면 나는 어디에 속할까. 내 경우는 전자보다는 후자 쪽에 속하는 성향이다.

훌쩍 15년이 흘렀다. 내가 처음 바깥 활동을 시작한 나이가 마흔이었으니 말이다. 아이들이 중학교 때쯤일 게다. 비지니스로 바쁘게 지내는 친구는 일터와 세 아이를 돌보기 버거웠던 터였기에 내게 말해준다. 웬만하면 세 아이 잘 키우면 되지 뭘 글쓰기를 시작하려 하느냐고 말이다. 물론 그랬다. 내 남편도 내 친정 식구들도 그리고 시댁 어른들도 똑같은 생각이었다. 남편이 넉넉히 벌어다 주는 돈으로 세 아이 잘 키우면 최고지 무슨 바깥 활동을 하느냐고 했었다. 그러나 당사자인 나는 무엇인가 내 일을 해야지 세 아이만 키운다는 것이 답답하고 견디기 힘들었다.

세 아이가 연년생이니 아이들이 어려서는 그 무엇을 생각할 겨를도 없이 바쁘게 지나갔다. 나의 30대에는 내 삶의 준비 기간이었다. 세 아이를 다 재우고 늦은 밤시간에 꾸며놓은 지하실에 내려가 글을 쓰고 붓글씨를 쓰고 그림을 그리며 답답했던 내 마음을 달래곤 했었다. 특별히 붓글씨를 쓰는 일은 내게 바로 기도였다. 내 울컥했던 마음을 달래고 가라앉히며 새로운 시작을 위한 준비의 시간이었다. 그렇게 하나님께 기도했다. 지금은 준비 기간이니 나를 훈련시키시고 10년 후에는 꼭 써달라고 말이다. 그렇게 10년이 흐른 뒤 그 약속이 이루어진 것이다.

내 나이 마흔에 바깥 활동이 시작되었으며 그렇게 15여 년을 활동하고 있다. 지금 생각해도 참으로 신기한 일이었다. 아니, 철저히 약속을 지키시는 하나님이셨다. 나는 안다, 내 인생 가운데에 한치의 빈틈없는 그분의 역사하심을 말이다. 그러하기에 지금까지 걸어온 나의 길을 돌아보면 앞으로의 길에도 내가 계획한 듯싶으나 결국 그분의 계획이었음을 또 고백할 것이다. 또한, 어떻게 앞으로 나를 이끌어가실까 궁금해지기도 하다. 깊은 묵상으로의 길을 걷다 보면 참으로 시편 139편의 말씀 신묘막측(神妙莫測)이 온몸과 마음을 전율시키는 것이다.

그렇다, 지금까지의 고백에는 어릴 적 친구와 둘이서 교회의 리트릿도 함께 따라가 서로 기도하며 하나님에 대한 열정과 신앙의 밑뿌리가 된 까닭이다. 친구의 언니는 목사가 되었고, 내 시아주버님도 목사가 되었다. 이렇듯 신앙생활에 열심이지 않을 때도 있지만, 여전히 그 속에 하나님은 일하시고 계신다는 사실이다. 이처럼 어릴 적 친구와는 신앙이 밑바탕이 되어 서로 믿음으로 의지하며 기다려주기에 얼굴을 못 본다고 보채거나 서운해하지 않는다. 그저, 잘 있으려니 하는 마음으로 묵묵히 서로 기도해주고 시간이 허락되면 반가운 마음으로 마주하는 것이다.

이렇듯 어릴 적 친구가 곁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한 누림인 것이다. 처음 글쓰기를 시작하며 바깥 활동을 하려 할 때 염려의 마음으로 아껴주던 친구가 몇 년이 지난 후 내게 '장하다, 내 친구야!' 하고 말해주는 것이었다. 그 누구에게 듣는 말보다도 고마운 마음이었고 값진 응원이었고 후원이었고 힘이었다. 그렇게 친구의 응원으로 15년을 달려왔다. 이제는 그 친구에게 '참으로 장하다, 내 친구야!'하고 응원을 해주는 것이다. 남편과 함께 비지니스를 하는데 어찌나 성실하고 열심인지 이제는 남부럽지 않을만큼의 하나님으로부터 물질과 영육간의 큰 축복을 받았다.


시인 신영은 월간[문학21]로 등단, 한국[전통문화/전통춤]알림이 역할 등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skybosto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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