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르고의 영어잡설 44 ] '말' 같은 '말'
보스톤코리아  2019-01-07, 11:05:27 
"제주도에 갔더니 말이 정말 많던데요." 
"아니 뭣 때문에요?"
"네?"
처음엔 필자가 잘못 들은 줄 알았다. 제주도에 말이 많은 것은 삼척동자도 다 아는 사실인데 왜 이유를 물어보시는 것일까. 의아한 표정으로 바라보자, 국어학자이신 노 교수께서 또 반문하셨다. 
“제주도에 무슨 사건이라도 있었어요? 왜 말이 많았을까?”

그제서야 필자는 사태를 파악했다. 그분은 '말(言語)'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고 필자는 '말(馬 )'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던 것이다. 그분에 따르자면, '말(言語)'은 길고, '말(馬)'은 짧은데 필자가 그걸 반대로 발음했다는 것이다. 어려운 한국말이다. 아직도 우리말에 고저와 장단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또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경상도나 제주도에서는 여전히 고저와 장단으로 의미차이를 유지하는 단어들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먹는 '가지'와 나무의 '가지'를 서울 사람들은 구별할 방법이 없지만, 경상도 사람들은 성조의 위치로 구별한다. 동굴의 '굴'과 먹는 '굴'을 원어민인 우리는 잘 구별하지 모하지만 한국어를 배우는 외국인들은 구별하는 방법을 배운다. 

아무튼 두 '말'은 모두 우리의 삶에서 떼어놓을 수 없는 긴요한 것들이다. 이번호에서는 동물인 '말'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한다. 말은 영어로 hoarse라 하지만 라틴어로는 equus, 그리스어로는 hippos이다. 영어는 두 언어를 모두 받아들였기 때문에 equi-와 hippo-라는 두 가지 형태가 나타난다. 

무슨 이유에서인지는 모르나 현대자동차는 말과 관련된 차 이름들을 주로 애용해왔다. 첫 번째 국산차인 pony는 조랑말, 중형세단인 Equus는 라틴어, 스포츠 유틸리티인 Galloper는 '질주하는 말'이란 뜻이다. gallop은 말 따위가 '질주하다'이고, trot는 트로트 박자처럼 타박타박 걷는 것을 말한다.

말에 관한 한 필자는 Equus란 연극을 잊을 수가 없다. 피터 쉐퍼가 1973년에 쓴 이 작품은 말에 관한 정신착란을 일으킨 한 젊은이를 치료하는 과정을 그린 것으로 영화로도 만들어졌으며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앤쏘니 홉킨스가 주연을 맡기도 했다. 파격적인 스토리 전개와 노골적인 성적 노출, 그리고 끔찍한 폭력적 장면으로 인해 오랫동안 상영이 금지되기도 했다. 

전에 보행자를 pedestrian이라 한다고 했다. 말을 탄 사람은 equestrian이라 한다. 말의 형용사 equine은 bovine(소의), canine(개의)에서 보는 것처럼 라틴어 출신 단어들의 형용사 어미-ine이 결합된 것이다. 

'말'은 그리스어로 hippos이다. 경마장을 hippodrome이라 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필자는 오래도록 hippopotamus가 '하마'라는 사실이 와 닿지 않았다. 하마(河馬)라면 '물에 사는 말'이란 뜻일 텐데 도대체 hippopotamus는 어디서 굴러온 단어란 말인가. hippo-는 '말'이고, -potamus는 '강'을 의미하는 그리스어임을 알고 나서야 궁금증이 풀렸다. 

영어이름 Philip도 사실은 말과 관련이 있다. 이 이름은 그리스어 Philippos에서 온 것으로 '말을 사랑하는'이란 뜻이다. 전에 다룬 적이 있는 philos-(사랑하는)과 hippos(말)이 축약된 것이 Philip이다. 필리핀에는 정말 말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나라일까? 그건 아니지만 적어도 필리핀을 정복한  스페인 왕 Philippe는 말을 사랑했을지도 모르겠다. 

의사들은 누구나 히포크라테스 선서라는 것을 한다. 그리스인 의술의 아버지란 Hippocrates의 계율을 그가 쓴 것은 아니다. 아무튼 그의 이름은 '말을 잘 다루는' 사람이란 뜻이다. Democratic, aristocratic에서 보는 -crat가 '규칙, 룰'을 의미한다. 의술의 아버지란 이름과는 영 딴판으로 Hippocratic이란 단어가 '위선적인'이란 부정적 의미를 가지게 된 것은 의사라는 직업의 성격과 관련이 있다. 의사는 환자의 죽음 앞에서도 환자에게 내색을 하지 않아야 하기 때문이다. 

일설에 의하면 소크라테스를 너무 괴롭혀서 그가 그만 철학자가  될 수밖에 없었다는 부인 Xantippe 역시 말과 관련이 있다. 그녀의 이름이 xanthos(노란)과 hippos(말)의 합성어니까 굳이 번역하자면 '황마(黃馬)'가 되겠다.


올댓보스톤 교육컨설턴트, orugo4u@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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