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르고의 횡설수설 6 ] 아이스 바 일곱 개
보스톤코리아  2020-01-13, 10:41:25 
버스가 출발하려고 부르릉 소리를 내는 순간 창문이 열렸다. “배고플 텐데 가는 길에 먹으렴.” 아이스 바들이 무릎 위로 쏟아져 내렸고 버스가 출발했다. 뿌연 창문으로 엄마가 보이는가 싶더니 버스가 이내 모퉁이를 돌아섰다.

창피하단 생각을 하기도 전에 서글픔이 몰려왔다. 완행버스는 이미 만원이었다. 나는 옆 사람들에게 아이스 바를 하나씩 나눠줬다. 7개의 아이스 바를 녹기 전에 혼자 다 먹을 수는 없을 것 같아서. 온갖 감정이 소용돌이쳤다. 엄마는 물어보지도 않고 아이스 바를 일곱 개나 사셨을까? 이걸 사기 위해서 엄마는 고사리를 꺾어서 번 돈을 다 쓰셨을 텐데. 힘들게 번 돈으로 사주셨는데 전혀 모르는 사람들에게 나눠준 것이 죄송스럽기도 했다. 

엄마는 아이스 바가 뭔지 모르셨다. 물론 그걸 먹어보신 적도 없으셨다. 단지 아들을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뿐이셨다. 엄마의 서툰 표현은 아이스 바 뿐만은 아니었다. 소풍날도 그랬다. 다른 아이들처럼 엄마는 나에게도 김밥을 싸주셨다. 다른 점이 있다면 우리 집 김밥은 말 그대로 김 속에 밥만 넣고 길게 만 상태 그대로라는 점이었다. 다른 아이들은 온갖 것을 넣은 김밥을 먹기 좋게 잘라서 도시락에 넣어왔다. 선생님은 반장인 내가 뭘 가져왔는지 반드시 보고자 하셨고, 나는 한사코 선생님께 도시락을 보여드리지 않으려 했다. 점심시간이 다가오기도 전에 나는 선생님을 피해 어느 한적한 곳에 숨을 궁리를 하느라고 머리가 아팠다. 나는 그런 엄마가 미웠다기보다 김밥이 뭔지 모르는 엄마가 서글펐다.

시내로 유학을 나오고 군대를 마치고 결혼을 하고 미국으로 오고... 그렇게 세월이 흘러 벌써 내 아이들은 그때의 내 나이를 훨씬 넘어섰다. 아이들이 떠난 지금, 나는 내가 혹시 아이들에게 당혹감을 주지 않았을까 되돌아보는 일이 잦아졌다. 아이들이 그립기 때문일 게다. 나의 엄마처럼, 나도 아이들에게는 사랑의 표현에는 서툴지만 아이들을 무한히 사랑하는 아버지로 비쳐졌을까. 아이가 초등학교 다닐 무렵이었던 것 같다. 아이는 사람들 앞에서 영어 하지 말라고 심각하게 말했다. 아마도 자신의 영어보다 아빠의 영어발음이 신통치 않다는 것을 알아챘기 때문일 것이다. 덕분에 내 생활은 다소 편해졌다. 햄버거를 주문할 때도, 마트에서 계산할 때도 아이가 있으면 내가 더 이상 영어를 할 필요가 없어졌으니까.

그때도 난 엄마 생각이 났다. 여름 날 버스 속에서 일곱 개의 아이스 바를 받아들고 당혹스러웠던 기억이 고스란히 살아왔다. 자식을 키워보면 부모 마음을 알게 된다는 옛 말이 지금처럼 절실하게 와 닿을 줄은 몰랐다. 아이가 커갈수록 지식의 격차도 벌어지고 적응력도 점점 차이가 나기 시작했다. 아이에게 묻는 것이 많아졌고, 아이에게 부탁할 일이 많아졌다. 어떤 것은 내 스스로 해결하려고 해보지만 인터넷 관련이나 컴퓨터 관련된 것들은 늘 자신이 없고 아이에게 물어볼 수밖에 없다. 아직은 아이가 귀찮아할 정도는 아니지만, 더 나이가 들어가면 나는 누군가에게 귀찮을 정도로 의존해야할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생활이 점점 단순해지고 활동이 더 적어지던가. 엄마는 이제 아흔이시다. 아직 일주일에 6일은 복지관에 나가시고 일요일에는 교회에 가신다. 하지만 어쩌다 친척을 방문하거나 고향에 갈 때 같이 가자고 하면 엄마는 피곤해서 못 가신다고 하신다. 태어나고 자라고 사시면서 수십 년을 보내신 고향을 엄마에게도 다시 보여드리고 싶지만 엄마는 차타고 멀리 가는 게 힘들다고 하신다. 처음엔 반신반의했지만 차츰 나는 그것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나도 나이 들면 모든 것이 귀찮아지거나 버겁게 되리라. 그때 나의 아이들도 지금의 나처럼 느낄까?  


올댓보스톤 교육컨설턴트, orugo4u@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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