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와 문화를 둘러보는 일본 여행기 3.
보스톤코리아  2008-01-20, 00:58:55 
김은한 (본지칼럼니스트, 마취 전문의)


세이칸터널을 지나 훗카이도의 하코다테(函館)로

오늘 일정은 혼슈(本州) 맨 북쪽에 있는 아오모리(靑삼)역에서 기차로 쓰가루 해저의 세이칸 터널을 통해 훗카이도의 관문 하코다테(函館)로 갈 예정이라고 한다.

세이칸 터널은 전체 길이가 53.9Km나 되는 세계에서 제일 긴 해저 철도 전용 터널이다. 해저 부분의 터널 길이만해도 23.3Km인데 터널 중간에 기차 정거장이 2개나 있다.

페리호로 쓰가루 해협을 건너려면 3시간 반 정도 소요되는데 지금은 1-2년 사이에 신간센을 개통시키려고 새로운 공사를 하고 있었다. 신간센이 개통되면 현재 기차로 40분이 걸리는 터널 통과시간이 10분 이내로 단축된다고 한다. 지금부터 55년 전인 1953년에 기본계획을 수립하고서, 1964년 아오모리의 요시오까에서 굴착을 시작한 후 23년이 지나 1987년에 완공될 때까지 40여년이 걸린, 세계 건설 역사상 최대의 난공사였다고 한다. 이 때 터득한 터널 건설의 노하우가 후일에 영불해협을 가로 지르는 유로터널 건설에 큰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유로 터널은 50Km의 구간을 30개월만에 개통시켰으니 세이칸터널 공사의 10분의 1도 안되는 짧은 시간에 공사를 끝낸 것이다. 세이칸 터널의 완성으로 홋카이도의 경제가 탄력을 받게되고 훗카이도 주민들의 생활패턴이 바뀌게 된 것이다. 홋카이도의 싱싱한 농수산물이 몇시간 만에 동경까지 운반이 되고 홋카이도의 아름다운 자연을 보러 각지에서 몰려드는 관광객들로 홋카이도의 생활 수준과 문화수준이 업그레이드 되게 된 것이다.

이제는 일본 4개의 섬이 모두 터널이나 다리로 연결되어 일본은 일일 생활권이 된 것이다. 규슈의 후쿠오카와 횬슈의 시모노세키 사이에는 2개의 간몬터널과 간몬대교로 연결되고 시코쿠와 혼슈사이에는 세계에서 가장 긴(13Km) 3개의 세토대교로 연결된 것이다.

일본 사람들에게는 홋카이도가 아직도 개척할 것이 많은 낮선 땅이다. 그러나 먼 옛날부터 이곳에 살고 있던 아이누족들에겐 아주 오랜 역사와 추억이 스며있는 정든 고향인 것이다.

아이누는 그들 말로 ‘인간’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일본사람들은 그들을 에조(蝦夷)라고 불러왔다. 즉 오랑캐라는 뜻이다. 그런데 아이누 남자들만이 유일하게 간직하고 있는 YAP염색체를 일본 성인 남자의 40%가 간직하고 있는 것을 어떻게 볼것인가? 일본 사람들은 자신의 조상을 오랑캐라고 부르는 셈인 것이다. 우리 한민족의 피가 섞여 있는 것은 또 어떻게 할 것인가? 명치유신 때 성이 없는 일본인 들에게 성을 모두 부쳐 주었는데 성을 그전부터 가지고 있던 사회 지도층의 40%는 한민족의 성을 소유한 한민족계 혈통이었다고 한다. 그런데도 일본은 순수혈통을 주장하고 있다.

어쨌든 홋카이도는 일본땅이 아니고 아이누족의 땅이었다. 혼슈의 동북지방도 아이누의 땅이었다. 근대에 이르기까지 독자적인 문화와 언어를 가지고 있었고 17세기 말까지는 일본과는 대등한 공생관계였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일본을 통일했을 때에야 아이누를 혼슈에서 완전히 제거하게 된 것이다.

19세기에 접어들면서는 러시아의 남진정책에 대비해서 아이누족들에게 유화정책을 취하다가 명치유신을 계기로 강제적인 동화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했다. 사실은 민족 말살정책으로 지금은 겨우 1만5천명만이 생존하고 있으며 그들에게는 교육, 취업, 결혼 등 모든 사회활동에 제약을 가하고 있다. 이들은 살아남기 위해서 관광객들을 상대로 민속공연을 한다든가 민속 공예품을 팔아서 연명하고 있다.

일본의 인종차별은 아이누 족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재일 한민족, 오끼나와 원주민에 이르기까지 끝이 없다. 일본인들은 다른 민족들과 함께 살아가는 데는 익숙한 민족이 아니라 볼 수 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들은 유엔 상임이사국이 되려고 염치없는 노력을 하고 있다. 자격 미달이다.

아이누족은 문자가 없기 때문에 자신의 뜻대로 기록한 것이 없고 일본 사람들이 자의적으로 기록한 것이 아이누 역사에 대한 기록일 뿐이다. 1720년에 에도막부 6대 쇼군 도구가와 이에노부 때 재상을 지냈던 이라이 하쿠세키(新井白石)가 쓴 에조시(蝦夷志)가 처음인데 아름다운 훗카이도의 자연을 기록한 문학지였다.

1785년에야 나누마오 키쓰구(田沼意次)가 에조슈이(蝦夷搭)를 써서 비로서 훗카이도의 실상을 공개하게 된 것이다. 지독히 춥고 눈이 많은 긴 겨울과 짧은 봄을 지나 여름이 되어서야 인간이 활동할 수 있는 추운 홋카이도를 일본인들이 개발을 시작하자 아이누족들은 자신들의 생활터전을 지키기 위해 끈질기게 대항했지만 결과는 아메리칸 인디언들과 다를게 없었다. 현재 홋카이도는 현대문명에서 말하는 개발을 끝냈다. 도청소재지 삿포로는 황무지에서 시작하여 지금은 인구 180만의 큰 도시가 되었다.

홋카이도 지명(地名)의 80%가 아이누 말이 라는 것을 빼고는 그들이 남긴 유적이나 유물을 보기 어렵게 되었다. 아름답고 장대한 자연이 그들이 남긴 유일한 유산인 것이다.
어느덧 세이칸 터널을 빠쪄 나온 기차는 해안선을 따라서 하코다테를 향하고 있었다. 멀리 바라다 보이는 하코다테항구는 말로 듣던대로 한 폭의 그림이다. 하코다테는 인구가 30만밖에 안되지만 남부 훗카이도의 행정, 경제 문화의 중심지다.

에도막부의 말기에 미일수호조약으로 나가사키, 요코하마와 함께 구미 열강들에게 무역항으로 개항한 영향으로 시내에는 러시아 정교교회를 비롯해서 성당, 구 영사관들, 서양식 창고들이 많이 들어서 있어서 이국적인 정서를 지니고 있는 도시다.
원래 아이누들은 우스케시라고 불렀는데 무로 마치 막부시대인 1454년에 쓰가루의호족인 기와노가 이곳에 와서 성을 세운 후 꼭 하꼬상자를 닮았다고 해서 하코다테로 불리게 된 것이다.
밤에는 하코다테 산에서 내려다 보는 항구의 야경이 볼만한데 나가사키, 고베항구의 야경과 함께 일본 3대 야경의 하나로 유명하다고 한다. 여행스케줄 때문에 야경을 못보고 하코다테 외곽에 있는 고료가쿠성(五稜郭)을 향해 버스에 올라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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