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와 문화를 둘러보는 일본 여행기 4.
보스톤코리아  2008-01-27, 10:30:08 
▲ (상)별모양의 오각형이 완연히 드러나는 고료가쿠성
▲ (하)120여개의 작은 섬이 있는데 이를 18개의 다리로 이었다고 하는 오오누마 국정공원

김은한 (본지칼럼니스트, 마취 전문의)

고료가쿠성(五稜郭)


1854년 일본은 미국의 동인도 함대 사령관 페리제독의 무력을 앞세운 시위에 굴복하여 나가사키, 요코하마, 그리고 하코다테 항을 개항하게 되었다.

그 뒤로는 유럽의 여러 나라, 러시아와도 똑같은 조약을 맺고 항구를 개항하게 되었다. 일본은 오래전부터 구미각국보다는 러시아에 대한 두려움이 많은 나라였다. 고료가쿠성은 러시아의 위협에 대항해서 하코다테 항구를 방어할 목적으로 축성한 성이다. 말그대로 별모양의 5각형으로 된 일본 최초의 서양식 성곽이다.

바로 이 성에서 명치천황의 정부군이 250년 동안 일본을 지배해 온 에도막부 무사정권을 패배시키고 일본 근대화의 첫발을 내딛은 곳이다. 1869년(戊辰年:무진년)에 일본에서 서양문물을 제일 먼저 받아들인 야마구치, 가고시마 출신들이 주도하는 존황파 정부군이 에도막부군을 물리치고 본거지인 에도(동경)를 점령하게 되는데 이것을 무진(戊辰)전쟁 또는 하꼬다테 전쟁이라고 한다.

마지막 남은 막부군은 해군 부총독 에노모토 다케야키(本武揚)가 주동이 되어 훗카이도의 고료가쿠성을 본거지로 에조(瑕夷)공화국을 세워 정부군과 대결하게 되었다.

불리한 여건에서 항전을 거듭하던 에노모토는 결전을 앞에두고 정부군 사령관인 구로다 기요다카에게 자신이 소장하고 있던 ‘해상 국제법’이란 귀중한 책을 보내면서 이 책은 일본에 하나밖에 없는 귀중한 책으로 외국과 조약을 체결할 때 꼭 필요한 책이니 부디 잘 보관하기를 부탁하면서 결전에 임하게 되었다. 구로다는 죽음을 앞두고도 일본의 장래를 걱정하며 귀중한 책을 보내준 에노모토에게 연민의 정을 느끼면서 새로운 일본 건설을 위해 같이 일할 것을 권유하게 되었다.

에노모토는 항전을 계속하다 결국 세가 불리하여 구로다에게 항복을 하게 됐다. 전쟁에서 패한 수장은 할복 자살하는 것이 일본의 전통이지만 에노모토는 이를 택하지 않고 구차하더라도 국가에 봉사하기 위해 생존의 길을 택하게 된다. 하지만 에노모토는 감옥에 수감된 죄인이 되었고 구로다는 의롭게 맺은 우정을 살려 에노모토 구명운동을 펼치게 된다. 당시 일본의 석학 후꾸자와 유키치도 구로다의 구명운동에 동참하여 일본정부를 설득하였으며 이로 인해 3년 후 에노모토는 석방되어 일본 근대화 대열에 참여하게 되었다.

그는 구로다와 함께 홋카이도 개척에 힘쓰다가 구로다의 천거로 초대 러시아 공사로 발탁되게 되었다. 그가 러시아에 체류한 4년 동안 러시아의 실체를 조사해서 일본정부에 수많은 정보를 제공했다. 그의 이같은 정보가 러일전쟁을 승리로 이끄는데 많은 공헌을 했다고 한다. 그는 러시아에 있으면서도 조선정책에 관심을 갖고 조선에 관한 정보를 수집하여 자신의 제자이면서 직속부하인 하나부사 요시모토 서기관에게 전수시켰다. 그는 하나부사를 초대 조선공사로 추천했고, 하나부사는 6년동안 외교적 능력을 발휘해서 일본의 조선 침략에 큰 역할을 하게 된다.

구로다 기요다카는 1875년 강화도 앞바다에 일본군함 운양호를 몰고 와서 무력시위를 벌인 후에 조선정부와 강화도 조약을 체결한 장본인이다. 후일에 총리대신까지 되었지만 그는 평생을 홋카이도 개발에 전념했다고 하는 편이 맞을 것이다. 구로다는 60세 되던 해에 사망했는데 장례위원장은 그를 은인겸 친구로 사랑했던 에노모토였다. 하코다테 전쟁의 두 주인공이 조선침략의 원흉이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근래에 탐 크루즈가 주연으로 나온 ‘The Last Samurai’라는 영화가 있다. 미국의 나단 알그렌 대위가 명치정부의 초청으로 일본 군인들에게 신식 군사훈련을 시키기 위하여 일본에 왔다가 거꾸로 명치정부에 반대하는 에도막부편을 위해서 싸우는 영화인데 2 가지만 틀리고 실제로 있었던 이야기다.

그는 미군대위가 아니라 프랑스 군인 쥴 브뤼네(Jules Brunet)로 명치정부의 초청이 아니라 에도막부의 초청을 받아 군사고문단의 일원으로 일본에 왔다. 1868년의 무신전쟁에 막부편으로 참가해 싸우다 천황측으로부터 일본을 떠나라는 통보를 받지만 에노모토 편에 가담하여 하코다테 전투에 참가하게 된다. 패전후 프랑스로 탈출하여 이어 터진 보불전쟁에 참가했다가 후일에 육군 참모총장을 역임하게 된다.

하코다테 전투가 끝나자 명치천황은 무신전쟁중에 사망한 정부군 3,588명을 위한 도쿄 초혼사(東京招魂寺)를 건립했는데 1879년에는 일본군부의 요청에 따라 야스쿠니신사로 명칭을 바꿨고 그후에는 천황이 직접 참배하는 호국신사로 격상시키면서 당시 일본의 침략전쟁으로 사망한 군인들까지 합사시키게 되었다.

침략전쟁으로 사망한 군인들이 합사되었기 때문에 전후에 연합군 사령부는 야스쿠니 신사에 일본 정부관리가 공식적으로 참배하는 것을 금지시켰다. 그러나 일본정부는 한술 더떠서 1978년에는 도죠를 비롯한 A급전범까지 합사시키고 총리들도 개인자격으로 참배를 해왔다. 그러나 얼마전부터 떳떳하게 공식적인 참배를 해 한국 그리고 중국을 비롯한 인접 피해국들의 지탄을 사고 있는 것이다.

고료가쿠 공원안에 있는 고료가쿠성은 현재 일본의 사적지로 지정되어 있다. 옆에 98m의 전망대가 있어서 별모양으로 된 5각형의 성을 그대로 내려다 볼 수 있도록 했다. 전망대 아래층에는 에노모토 다케야키 동상이 서있고 동상 옆에는 그 때 사용했던 정부군과 막부군의 대포가 진열되어 있다. 정부군 대포의 구경이 막부군 대포에 비해 훨씬 큰 것을 확인할 수 있는데 이것이 바로 막부군 패전의 원인이라고 한다.

공원에는 하코다테 전쟁의 자료를 수집한 박물관이 있었다. 일본사람들은 하코다테 전쟁을 끝내면서 온국민들이 일치단결해서 명치 유신의 대업을 이뤘다고 보고 고료가쿠성의 보존과 당시의 자료보존에 열성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공원안에는 벚나무가 3천그루나 돼 봄에 벚꽃이 만발하면 화사함이 대단하다고 한다.

고료가쿠성을 뒤로하며 느껴지는 것이 있었다. 구로다, 에노모토, 하나부사 등이 비록 우리에게는 적이지만 그들이 국가의 장래를 위해 준비하고 봉직한 충성심에 대해서는 존경을 보내고 싶다는 것이다.

고료가쿠성 북쪽으로 30km되는 곳에 3개의 호수와 120여개의 작은 섬들이 있으며 그 섬과 섬을 18개의 다리로 연결한 호수가 있다. 원래 이름은 七飯村(칠반촌)이었지만 명치정부 초기에 경치가 아름다워 외국인들이 이곳에 많이 와서 살게 되자 오오누마국정공원(大沼國定公園)으로 명칭을 바꾸게 되었다. 국정공원은 국립공원과 똑같지만 공원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경제적 책임을 지방 정부가 담당한다는 뜻이며, 국립공원은 국가가 모든 책임을 진다는 뜻이라고 한다.

이 공원의 별미는 서양에 섬들을 연결한 아취교를 따라 돌아보는 산책이란다. 그러나 해지기 전까지는 다음 일정에 있는 도야에 도착해야 한다는 독촉에 이 공원의 별미를 맛볼 수 있는 기회를 포기해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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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한 칼럼니스트    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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