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와 문화를 둘러보는 일본 여행기 6.
보스톤코리아  2008-02-10, 12:01:52 
김은한 (본지 칼럼니스트)

사랑의 도시 오타루(小樽市)


오늘 일정이 아주 바쁘다고 한다. 도야에서 북쪽으로 70km 떨어져 있는 오타루를 거쳐 40km동쪽에 있는 삿포로 관광을 하루에 마쳐야 한다며 아침 일찍 호텔을 떠나는데 종업원 10여명이 줄을 서서 환송을 한다. 일본 어디를 가든지 식당이나 호텔을 나올 때면 의례히 보는 광경이다. 가이드의 주문에 따라 우리도 버스 안에서 손을 흔들어 답례를 하곤 한다.

일본인들이 고객을 대할 때 보여주는 친절은 의도적이기 보다는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생활철학같은 느낌이 드는데 가이드의 말로는 옛날 무사가 판을 치던 때에 조금이라도 불손하거나 대답을 늦게하면 목이 달아나기 때문에 친절하게 되었다고 한다. 강화도에 운양호를 타고 와서 조선을 위협했던 구로다 기요다카는 밤늦게 귀가 했는데 부인이 늦게 접대했다고 칼로 쳐 죽였으니 그 설명을 믿을만도 하다.

오타루는 아이누 말로 ‘모래가 많은 바다’라는 뜻이다. 명치유신때 주위 바다에서 많이 잡히는 청어잡이 기지로, 홋카이도 개발을 위한 물자조달을 위한 도시로 당시에는 훗카이도 기업의 중심지로 금융기관과 외국 문물이 많이 유입된 이국적인 외양을 보여주는 도시다. 하코다테와 유사하다.

당시에 큰 배에서 물자를 하역하기 위해서 9년에 걸쳐 오타루 운하를 건설했으나 지금은 항구도시로의 역할이 없어져서 운하를 메우려고 했다. 이에 대해 주민들의 반대가 거세 결국 이 운하를 그대로 유지키로 했다고 한다. 지금은 이 운하가 오타루를 대표하는 관광명물이 된 것이다. 운하 연변에 즐비하게 서 있는 옛날의 석조건물 창고들이 지금은 식당, 기념품 가게, 초밥집, 찻집, 쇼핑몰로 변신해서 여전히 많은 사람들의 발걸음을 끌고 있다.

저녁에는 운하옆에 있는 가스 가로등에 불을 밝히면 맞은 쪽 석조건물에 투영되어 로맨틱한 분위기를 자아내어 젊은 연인들이 많이 모여든다. 매년 2월에는 이 운하에서 오타루 촛불축제가 열리는데 가게나 산책로마다 갖가지 촛불이 밝혀지고 오타루 운하에 형형색색 촛불을 띄어 보낸다고 한다. 운하의 맞은쪽에는 세계에서 제일 큰 오르골(노래상자) 상점이 있다. 현재 3만여점의 형형각색 오르골이 3층 건물에 꽉 차있다. 오르골 가게 앞에는 사람키 두배가 됨직한 증기시계가 있는데 15분마다 증기를 내뿜으며 소리를 지르고 있어 많은 사람들이 이 광경을 보려고 몰려있었다.  

이 건물 앞으로 오타루 운하에 평행으로 뻗어 있는 번화가가 사카이 이마치도리로 베네치아 미술전시관, 키타이 치가라스 유리공예관 아이스크림 가게, 초밥집이 줄서 있다. 고작 인구 14만명이 살고 있는 오타루에 초밥집이 무려 130개가 넘는다고 하는데 ‘톱피’라고 부르는 오타루의 초밥은 생선의 크기가 아주 커서 밑에 있는 밥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길거리나 상점은 젊은 관광객들로 초만원이다. 요새뿐만 아니라 옛날부터 오타루를 ‘연인의 도시’라고 불렀다고 한다. 지금도 많은 연인들이 사랑을 확인하기 위해서 오타루를 찾는다. 옛날에는 오타루를 다녀가는 연인들이 사랑의 도시를 방문한 징표로 ‘오타루’라는 글자가 찍힌 기차표를 한 장 더 사서 간직하는 관습이 있었다고 한다. 아마도 요새는 돈을 더내고 이런 일을 하는 젊은이들은 없을 것이다.

예로부터 많은 영화와 소설이 오타루를 배경으로 제작되었는데 한국가수 조성모의 뮤직비디오 ‘불멸의 사랑’과 ‘가시나무새’를 이곳에서 찍었고 1995년 경에 한국에서 상영해서 수많은 한국인들의 심금을 울려주었던 영화‘Love Letter’를 촬영한 곳이다. 오타루 시내 곳곳에 소개판이 서 있어서 ‘Love Letter’영화를 본 사람들에게는 시내곳곳이 낮설지 않은 것이다. 여주인공 이츠키가 입원했던 병원으로 찍혔던 시청, 와타나베 히로코와 선배가 키스했던 오타루 유리공방, 약혼녀 히로코가 누워있던 텐구잔(天拘山) 등 오타루시 전체가 ‘Love Letter’의 세트인 셈이다. 딱 하나 후지이 이츠키가 살던집은 오타루 교외에 있다고 한다.

정신없이 이곳저곳 둘러보고 약속시간이 돼서 버스 있는 곳에 와보니 주차장에 있는 버스만도 30대가 넘는다. 이 많은 승객들을 작은 오타루 시내에 풀어놨으니 거리가 그렇게 복잡했던 것이다. 이곳에는 일년에 500만명의 관광객들이 몰려든다고 한다. 최종 목적지인 삿포로를 향해 떠나는데 찔끔거리던 날씨가 이제는 제법 굵은 빗줄기가 되어 버스 창문을 때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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