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와 문화를 둘러보는 일본 여행기 마지막회
보스톤코리아  2008-02-24, 08:38:22 
▲MA주 주청사를 본따서 만든 구도청 청사. 지금은 문서보관소로 사용된다
▲클락 교수가 떠나는 장면 그림

김은한 (본지 칼럼니스트)


삿포로(札幌)  


홋카이도 지명은 80%가 아이누 말이다. 삿포로는 아이누 말로 ‘메마른 넓은 들’이라는 뜻이다. 현재 홋카이도의 도청 소재지로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지일 뿐만 아니라 홋카이도에서 항상 치르는 1,200여개나 되는 축제의 도시이기도 하다.
원래 홋카이도는 800여 년 동안 아이누의 나라였지만 에도막부 때부터 본격적으로 아이누족들을 몰아내고 일본 영향력 아래 두었다가, 명치유신 이후에는 러시아의 남진 정책을 견제할 목적으로 본격적인 개발을 시작했다.
홋카이도의 크기는 남한만한 면적에서 강원도를 뺀 정도의 면적을 가진 큰 섬이지만 인구는 고작 600만 정도이다. 인구 180만의 삿포로를 빼고는 아사히카와가 136만, 북해도의 현관이라 하는 하코다테가 고작 30만 밖에 안 되는 한적한 곳이다.
거의 모든 북해도의 개발은 미국인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는데 삿포로만 해도 아무것도 없는 황무지에 미국인의 설계에 의해 바둑판처럼 질서 정연하게 구획된 도시라서 미국의 한 도시에 와 있는 느낌이 드는 도시다. 삿포로 시내에 들어서자 마자 빗줄기가 세차게 뿌리기 시작하니 도보관광을 할 수가 없게 됐다. 라면 가게만 20여 개가 모여있는 유명한 라면거리를 그냥 지나치니 몹시 아쉬운 것은 지난해 초에 보스톤코리아 신년 칼럼에 소개했던 구리 료헤이의 수필 '우동 한 그릇'의 무대 '북해정'을 못 보기 때문이다.
시내 어느 곳에서도 보이는 147m나 되는 삿포로 TV타워 맨 아래 층에 유명한 우동가게가 2개나 있다는데 역시 지나칠 수밖에. TV타워 앞쪽으로는 꽤 넓은 공원이 동서로 1.5km나 길게 뻗어 있다. 이 공원이 2월 삿포로 눈 축제가 열리는 오오도리(大通)공원이다. 아마추어 작가들이 수 백 개의 눈과 얼음조각으로 세계에서 유명한 건물이나 인물들의 조각을 만든다고 하는데 그 때는 30만개나 되는 공원의 전등을 모두 밝혀서 아주 환상적인 분위기를 만든다고 한다. 이 때문에 전세계에서 수백만명의 인파가 몰려든다. 이 때 삿포로의 거리는 도로변에 태양열 발전장치를 설치해서 도로의 눈을 녹이기 때문에 수많은 인파들의 통행에 아무 지장이 없다고 한다.
원래 삿포로 눈 축제는 2차 세계대전에서 패전하고 실의에 빠져있는 일본인들의 기분을 진작시키기 위해 일본 정부가 1950년에 시작한 축제로 지금은 세계 3대 축제의 하나가 되었다.
곧이어 5월에 열리는 라일락 축제, 여름축제, 맥주축제로 이어지면서 일년 내내 축제가 끊이지를 않는다.
일본의 대표적인 맥주에는 아사히, 기린 삿포로가 있다. 삿포로 맥주가 바로 이곳에서 120년 동안 생산해오고 있다. 공원 북쪽에는 홋카이도에서 유일한 북해도 대학이 있다. 1868년 명치유신과 함께 식량공급 기지로 북해도를 개발하기 시작했으며 농업기술을 지도할 목표로 북해도 대학의 전신인 삿포로농업학교를 세웠다.
이 학교의 교감으로 메사추세츠농과 대학장으로 있던 윌리엄 스미스 클락 박사를 초대하여 지도를 받게 되었다. 그래서 홋카이도에서 재배되는 농작물이 메사추세츠에서 재배되는 작물과 품종이 거의 똑 같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아스파라거스, 브로커리, 옥수수, 감자, 치즈 등이 그것이다. 클락 교수가 9달 동안 열심히 농업지도를 하고 떠나는데 제자들이 고별인사말을 부탁했다.
클락 교수는 "Boys be Ambitious for Christ!"라는 인사말을 남겼다. 즉 "여러분 주님을 위해 최선을 다합시다"라는 뜻이었는데 후일 'For Christ'가 일본인들의 정서에 맞지 않는다고 떼어버리고 "Boys be ambitious", "청년들이여 야망을 가져라"로 둔갑한 것이다.
어쨌든 이 격언이 일본은 물론이고 조선과 중국에도 알려져서 필자도 중고등학교 시절에 숱하게 많이 들어온 격언이 되었다. 근처에 있는 홋카이도 구도청 청사는 보스톤에 있는 메사추세츠 의사당을 그대로 본떠서 만든 붉은 벽돌건물로 지금은 문서 보관소로 사용한다. 청사 안에 들어서면 바로 마주 보이는 벽에 윌리엄 클락 교수가 떠나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삿뽀로 시내에도 그의 흉상이 2개나 있어서 일본 사람들이 얼마나 그에게 감사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오늘을 마지막으로 북해도 여행을 끝내게 된다. 저녁식사 후에라도 삿포로 시내를 다녀보고 싶지만 아직도 꾸역꾸역 내리는 빗속을 걸을 엄두가 나지 않는다. 작년에 일본을 여행하고 느낀 것이 "일본은 세계에서 제일 앞서가는 나라"였다. 이번 여행에서 느낀 것도 작년과 다를 바 없었다. 일본의 잠재력에 놀랄 뿐이었다.  
이조 세조대왕 때 신숙주가 일본에 수신사로 다녀온 후에 쓴 '해동제국기'라는 책에서 그는 일본은 왜국(倭國; 작은 나라)이 아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는 훨씬 강하고 큰 나라'라고 경고 했지만 아무도 관심조차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200년 후에는 임진왜란으로 전국토가 쑥대밭이 되지 않았던가? 임진, 정유재란 후에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죽자 그의 아들 도요토미 히데요리와 에도 막부가 패권을 건 결전을 벌였는데 그 때 동원된 총포숫자가 8만정이었다고 한다. 당시 세계 최강인 프랑스 육군이 소유한 총포수가 5만정에 미달했다고 하니 일본은 당시에도 세계 최강의 육군을 가지고 있었다는 셈이다. 다행히 이순신이라는 희대의 명장이 있어서 왜군을 물리쳤지만 당시에 일본의 실력이 우리보다 월등하다는 사실을 전쟁이 끝난 후에는 또 말끔히 잊어버린 것이다. 그래서 250년 후, 이번에는 온 나라의 국토와 주권을 몽땅 빼앗기는 수모를 당한 것이다.
지금 일본의 GDP(국민총생산)만 해도 한국의 8배가 넘는다. 인구도 1억2천만, 면적도 38만km2로 한반도의 1.7배나 된다. 영국, 독일, 이태리보다 큰 나라다. 태평양 전쟁에 패전한 후로 유가다 유키오 박사가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했으며, 이후 7명이 더 물리 화학상을 수상했다. 우리보다 월등히 앞서가고 있는 것이다.
한국과 일본은 역사, 경제, 문화적으로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지만 서로의 존재를 애써 무시하고 도외시 하는 불행한 관계를 이어오고 있다. 원인은 물론 가해자 입장에 있는 일본에 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지만 한국도 자신의 과오를 깨닫고 일본을 따라 잡으려는 가시적인 노력을 기피해온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일본은 우리가 배워야 하는 국가인 것이다. 역사는 반복하는 것이다. 한국 국민이나 정부가 현재의 한국을 업그레이드 시켜야 하는 당위성이 여기에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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