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武)
보스톤코리아  2009-06-08, 15:58:51 
“자신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은 세상을 사랑합니다. 세상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불의에 대하여 분노할 줄 알고 저항합니다.” - 노무(武)현 자살한 전 한국 대통령
“(사랑은)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 고린도전서 13장 7절.


멍청한 노武현. 멍텅구리 노武현! “바보 노武현 대통령님! 당신은 진정 우리에겐 바(라볼수록) 보(고싶은) 사람입니다” 2009. 5. 31. 노武현 장례식을 인터넷으로 보낸 조사 중 하나다. 자살한 노武현을 “바보(a fool, an idiot)”는 분명한데 전 대통령인 것을 감안 바보에 대한 설명을 구차하게 보탰지만 자세히 따져보면 그냥 바보가 더 존경(?)스럽다.

같은 날 23살 미스 김(대학생, 인천시 계양구 거주)은 아파트 문고리에 허리띠로 목을 매 숨졌다. 휴대전화 문자 메시지엔 “노통(노무현 대통령) 따라 갈래.” 이렇게 자살 이유가 명백해야 하는데. 노武현의 유서는 명백치가 않다. 바보처럼. “너무 많은 사람에게 신세를 졌다. 나로 말미암아 여러 사람이 받을 고통이 너무 크다. 앞으로 받을 고통도 헤아릴 수가 없다. 여생도 남에게 짐이 될 일밖에 없다. 건강이 좋지 않아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책을 읽을 수도 글을 쓸 수도 없다. 너무 슬퍼하지 마라.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 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 조각이 아니겠는가? 미안해 하지 마라. 운명이다. 화장해라. 그리고 집 가까운 곳에 아주 작은 비석 하나만 남겨라. 오래된 생각이다.” “나로 말미암아 여러 사람의 고통이 너무 크다”란 제목으로 2009. 5. 23. 새벽 5시 21분에 컴퓨터 한글 file(문서철)에 남겼다.

누구 때문에 죽는단 말인가? 집안 사정이 어려워 상업 고등학교만 졸업하고 검정고시로 변호사, 법관, 국회의원, 대통령까지 된 노武현의 유서가 이렇게 흐리멍텅해서야. 유서면, 특히 자살 유서면 누구 때문에 뭣 때문에 왜 삶을 중단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명백한 까닭이 조목조목 있어야 할텐데. 따라 자살한 미스김의 유서 6자 “노통 따라 갈래”는 왜 자살했는지 더 물어볼 일 없다. 헌데 노통의 유서는 수신자도 없다. 그냥 생각나는대로 수상(隨想)을 정리한 듯한 느낌인데 “노武현 대통령이 서거 전 접했던 불교의 생사관이 유서에 남겨졌다”고 문화일보가 보도했었다 (2009. 5. 28).

지난 4월 5일 봉화 사저를 찾은 불교계 인사 20여 명 중 혜총(조계종 포교원장) 스님이 “부처님께서는 부모를 헤친 자라 할지라도 앙갚음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업(業)의 윤회(輪廻)를 꺾으려면 부처님의 가르침을 새겨 남을 미워하지 말고 원망하지 말아야”한다는. 그래서 노통의 유서에 “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 조각. 미안해 하지 마라. 누구도 원망하지 말라”며 자신이 괴로움을 당했지만 생사여일(生死如一)이란 깨달음 얻었기 때문에 "민주주의와 세상의 화합을 위해 몸을 던진 게 아닌가 싶다"는 것이 유서에 대한 문화일보 해석.

언론에서 노통의 유서를 유권해석을 할 만큼 갈피를 잡기 힘드는데. 바보 같은(?) 정치꾼들은 노통의 자살을 정치화(政治化)해 검찰총장을 해임시켰다. 세월이 가면 소가 웃을 역사의 한 토막인 것을 모르니 답답하다. 노武현의 죽음을 떠들 때마다 부엉 바위에서 머리를 박어 죽인다는 것 몰라? 확실한 것은 불경에서 “남을 원망하지 말라”는 말의 초점이 누굴 두고 한 것일까? 640만 달러를 준 박연차 씬가? 받은 권양숙 씨 아니면 중간에 심부름을 한 청와대 비서관들? 노통의 형 건평 씨(구류중)? 그도 저도 아니면 검찰? 언론? …… 아무리 맞춰도 “자살의 까닭”이 꼬집어지지 않는다.

오죽했으면 김동길 연세대 명예교수의 홈페이지에 “먹었으면 먹었다고 말해야죠”의 제하 글(2009. 4. 15)에서 “도덕적인 과오는 바로 잡을 길 없으니 국민에게 사과하는 의미에서 자살을 하거나 아니면 재판을 받고 감옥에 가서 복역을 하는 수밖에 없다.”는 글이 노武현 게이트의 정곡을 찔렀다며 말이 씨가 돼서 노통이 자살을 했다고? 분명히 짚고 넘어 갈 것이 있다. 불교의 혜총조계종포교원장의 설법(說法)이 자살을 유도한 것 아니다. 김동길 교수의 이메일도 아니다.

노武현은 불교 교리보다 기독교 교리인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이같이 한 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 Love your enemies and pray for those who persecute you that you maybe be sons of your Father in heaven : 마태복음 5 : 44, 45.”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는 조건 중 “참는 것”을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하라 “I tell you not seven times, but seventy - seven times : 마태복음 18 : 22.” 상업학교 출신의 노武현이 이 성경의 진리와 참는 수(數)를 기억하고 익히 알고 있은지 오래다. 에도 불구하고 이 진리를 벗어난 노武현이 바보랄 수밖에. 노武현의 “武 : 威也위야 = 위엄스러울 무.” 무(武)를 뜯어보면 武 = 止 : 停也 = 그칠 지 + 二 : 數一之加一 = 둘이/두이 + _ : 取也취야 = 취할 익. 세부분으로 짜여진다. “둘째를 잡고 서라”는 뜻이다.

둘째가 누구인대? 하나님이 첫째니까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둘째. 예수와 함께 붙어다니라는 뜻 아닌가? 신약성경 27권이 모두 “예수와 함께” 동행하라는 얘기다. 바울(Paul)사도는 “In (en) Christ ; 그리스도 안에서”란 표현을 200번 이상 기록했다. 문(文)이 글이면 무(武)는 칼이다. 글이 말씀 : Word, 칼은 성령:Sword, 하여 문무(文武)가 성경얘기다. 말씀 Word는 무한한 창조의 능력을 가졌으나 성령 Sword가 아니고서는 볼 수도 들을 수도 없다. 바울 사도는 악(惡)을 이기는 그리스도인의 무장(武裝)은 “하나님의 전신갑주 : Full armor of God”를 입으란다.

진리의 허리띠, 의(義)의 흉배, 복음의 신발(Feet with Gospel of peace), 믿음의 방패, 구원의 투구, 그리고 마지막 마무리 무장이면서 공격수단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 : The sword of Spirit which is the word of God(에배소서 6:11-17)”을 갖추라 했다. 이토록 중요한 하나님의 전신갑주(全身甲胄)의 Sword(武)와 Word(文)를 노武현이 무장했었다.

1986년 부산의 송기인 신부에게서 영세(Baptism)를 받고 “유스도(Justus)”라는 세례명도 받았었다. 유스도는 신약성경에 세번 등장한다. 예수님을 팔아넘긴 유다(Judas)의 공석을 메꾸는 열두번째 예수제자 후보에 등장한 유스도(Justus)와 맛디아(Matthias)의 선거(당시에는 제비뽑아)에서 유스도가 낙선했지만 예수님사역 초기부터 그리스도와 동행한 신실한 신자, 바로 “예수와 동행”한 武를 잘 증명한 유스도였다(사도행전 1:23).

제자보궐선거(?) 이유를 설명한 “항상 우리와 함께 다니는 사람 중에서 예수의 부활하심을 증거할 사람”(사도행전1: 22)이란 취지설명이 武를 그린 것이다. 다음은 디도유스도(Titus Justus: 사도행전 18:7). 하나님을 공경하여 유대교에서 개종했으며 바울 사도와 함께 유대교 회당장 그리스보(Crispus, the Synagogu ruler)와 그 가족을 개종시킨 바울 사도의 동역자. 이 회당 옆집에 바울이 함께 전도 사역했다.

후에 디도(Titus)서의 수신자로서 유스도가 된다. 이 서신에서 바울은 디도유스도에게 '하나님의 말씀은 영생(永生)의 길로 인도하는 진리의 근원이라 강조한다(디도서 1:1~4). 마지막 세번째 유스도는 예수(Jesus) 성(姓: Surname)을 가진 유스도, 바울 사도가 첫번째 로마 감옥에 갇혔을 때(서기61~63년경) 쓴 골로새서(Colossious:4:11)에 언급된 이 유스도는 할례(Circumcision)로 구원을 주장하는 유대교에서 전향, 바울 사도의 옥중역경 등 믿음의 시험들을 크게 위로한 사람.

Justus Jesus(유스도 예수). 이 이름보다 “하나님의 아들을 잡고 머물라”는 武를 정확하게 묘사한 이름은 드물다. 유스도(Justus)의 라틴말의 뜻은 “Just 곧 정의(正義).” 正(方直不曲방직불곡=바를 정은 武의 아들 예수(二)가 아버지라 부르는 첫번째 하나님 (一) 아래 머무는(止) 글자 正(2007.10.19자 人칼럼 정(正) 참조)이 “인간의 죽음을 정지(God's stop)” 시키고 아들 예수그리스도를 통해서 영생을 견본화 시키는 武가 곧 유스도이다.

영세(세례)를 준 송기인 신부가 노武현 이름에? 아니면 당시(1986년) 그의 인권변호사 직업에 맞춰? 세례명을 유스도라 했는지는 확인 안되지만 확실한 것은 그의 2003년 대통령이 되는 데는 카톨릭표가 많이 지원했었던 것은 틀림없다. 노武현 후원자 DJ 김대중도 카톨릭이니까.

노武현이 이름자 武를 따라 “In Christ: 예수님 안에 머무는, 아니 예수님과 함께 정의를 입증하는 일”에 앞장 섰으면,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약속했으면 대통령까지 시킨 기적을 감사하고 여생을 살 것이지, 부엉바위에는 왜 올라가? 바보같이! 기왕에 올라갔으면 유스도, 노武현, 네 이름 따라 예수와 함께 일한다면 이 부엉바위를 뛰어 내려도 예수의 아버지 하나님이 네 발이 돌에 부딪치지 않게 하리라, 뛰어내려!” 하는 사탄의 권고를 듣고 “주 나의 하나님을 시험치 말라, 내가 武현, 유스도인 것을 알았으면 썩 물러가지 못해!”(마태복음4:5~7 참조) 하고 호통쳐 보내지 못했을까? 바보같이.

武의 이름 속에 감춰진 예수님이 왜 안보였을까? 생각할수록 답답하기만 하다. 바보보다 박복이란 말이 있다. 두 가지 뜻. 薄福(박복)은 “복이 없다; misfortune” 이고 迫福(박복)은 “복을 차버린다; kick-off blessing or bliss”는 말. 복의 근원 예수님과 세례로 약속한 복을 차버렸다는 뜻이다. 노武현의 복은 “대통령을 못하더라도 아내를 버리지 않겠다.”는 사랑의 편지는 武현 유스도가 “그리스도 안에서 사랑을 권양숙에게 쏟아 부은 것인데.”

이 사랑: 모든 것을 참으며(Love always protects) 모든 것을 믿으며(always trusts) 모든 것을 바라며(always hopes) 모든 것을 견디는(always perseveres). 이 사랑 武현 유스도가 끝까지 지켰으면 남북 통일 후 7,000만의 대통령을 바라볼 수 있었는데. 형무소를 갔다왔다 해도 그래서 박복하다는 거지. 노武현 유스도! 선(善)한 일만 하시다가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님 사랑을 죽어서도 되찾을 수만 있는 길이 있다면.

신영각(한미 노인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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