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영의 세상 스케치 - 262회
보스톤코리아  2010-08-30, 12:00:05 
요즘은 예전보다 만나는 사람의 숫자가 많이 줄었다. 그만큼 나 자신 안의 성찰이 필요했던 시기이기도 하다. 또한, 관계의 폭이 좁아진 만큼 깊이가 있어졌다는 얘기일 것이다. 이제는 어린 나이가 아니라는 생각이 문득 아이들을 키우며 생활에서 피부로 느끼게 되었다. 삶의 여정에서 만나고 헤어지는 수많은 관계를 통해서 기쁨과 행복을 때로는 아픔과 고통의 시련을 겪기도 했다. 그 시간을 통해서 얻어진 것이라면 다름 아닌 삶의 지혜라는 생각을 한다. 지난 일들을 통해서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은 그 어떤 것도 나쁘고 좋고가 없다는 것이다.

처음 사람을 만나면 관심과 호기심이 생긴다. 저 사람은 어떤 사림일까.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하며 사는 사람일까 하면서 말이다. 상대방도 마찬가지란 생각이다. 그 어떤 관계에서 가까이 다가갈수록 어려운 사람이 있는가 하면 편안한 사람이 있다. 그것은 서로 마찬가지라는 생각이다. 옛말에 '주는 것 없이 미운 사람이 있고 고운 사람이 있다'고 하지 않던가. 그런 것처럼 나와 찰떡궁합으로 잘 맞고 통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주는 것 없이 정이 가지 않는 사람이 있다. 이제는 여유를 가지고 미운 사람, 고운 사람 바라보는 법을 깨달아 간다.

가까이 지내는 사람들이야 가끔 전화 연락을 하고 얼굴을 마주하기에 별 약속없이도 만나게 된다. 모두 바쁜 생활을 하다가 어떤 장소에서 오랜만에 반가운 얼굴을 만나면 당장이라도 지난 애기들을 나누며 차 한 잔이라도 하고 싶어진다. 그 간절한 마음에 쉬이 뱉어버리는 말이 '언제 밥이라도 먹으면 좋겠다' 하고 말을 전하게 된다. 그 상대방도 같은 마음인지라 그렇게 하자는 그 '언제'의 약속은 생각처럼 그리 쉬이 이뤄지지 않는다. 정해지지 않은 날짜와 약속을 입에서 던지길 몇 번,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한 나 자신에 대해 속상할 때가 있었다.

이제는 생각에서 머문 얘기를 입 밖으로 쉬이 내뱉지 않으려고 많은 노력을 한다. 얼마나 많은 말빚을 쉬이 뱉어버리고 주워담지 못했던가. 이제는 예전처럼 그렇게 쉬이 지나는 약속은 하지 않으려 애쓰는 편이다. 또한, 반가운 마음에 전할 얘기가 있으면 이메일 주소를 묻던가 전화번호를 확인하고 다시 연락하는 방법을 취하게 되었다. 그 이후로는 사람에 대해 그 어떤 관계에 대해 쉬이 던져버리던 말빚이 많이 줄어들었다. 서로 만나서 반가우면 반가운 대로 섭섭하면 섭섭한 대로 그렇게 만나고 헤어지니 마음도 편안하고 행동도 자유로워 좋다.
하루의 삶이 모두가 바쁘고 분주한 현대 생활에서 이것저것 따지면 서로 오해가 생기기도 한다.

그 어떤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서로 관계의 거리가 중요하다. 서로 적당한 거리에서 예의를 지킬 수 있다면 그 관계처럼 좋은 사이는 없을 것이다. 이것은 어느 한 쪽에서만 노력한다고 가능한 것이 아니고 서로 노력해야 할 부분이다. 살면서 가족이든, 친구이든 간에 가까운 사이일수록 일상에서 쉬이 던지는 말의 숫자는 더 많다. 그만큼 가까운 관계에서 짓는 '말빚'이 더 많다는 이유이다. 때로는 그것이 작든 크든 상대에게는 상처로 남을 수 있는 까닭이다.

물론, 그 어떤 상대를 만났을 때 그 사람에게 고마운 마음이 남아 있다면 무엇이든 주고 싶고 만나고 싶은 마음은 진심에서 우러나온 마음일 것이다. 하지만, 그 약속을 지키지 못했을 때에는 그 진실의 마음이나 약속도 그 무엇으로도 채우기 어렵다는 얘기다. 아직은 넉넉하지 않은 짧은 인생살이이지만 갚기 어려운 '말빚'은 되도록 짓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더욱 간절하다. 어찌 보면 복잡하지 않은 단순한 삶을 원한다는 얘기일 것이다. 이제는 인생 여정의 그 어떤 관계에서든 폭의 넓이보다는 폭의 깊이를 더욱 귀중히 여기고 싶어진 이유일 게다.

누군가 답답한 마음에 '기도'를 부탁한다고 했을 때 쉬이 '함께 기도해요, 그렇게 할게요' 라고 대답했을 때가 얼마나 많았는지 모른다. 지난 시간을 가만히 돌이켜보며 진정 얼마나 간절한 마음이었든가 하고 부끄러움이 앞선다. 모두가 다 갚지 못한 '말빚'이다. 오랜만에 잊었던 사람을 만나면 반가운 마음에 '언제 茶라도 함께해요, 언제 식사라도 함께해요' 하고 뱉어버린 그 '언제'의 약속은 정해진 날짜도 시간도 아니다. 너무도 무의미하게 지나치고 흘려버린 마음의 진실을 외면한 웃음일 뿐이다. 이제는 그 누구에게도 갚을 수 있는 '말빚'을 지고 싶다.

시인 신영은 월간[문학21]로 등단, 한국[전통문화/전통춤]알림이 역할 등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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