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영의 세상 스케치 - 265회
보스톤코리아  2010-09-20, 13:34:15 
지천명(知天命)으로 가는 길목에서 이제는 삶이든, 사람이든, 사랑이든 단순한 것이 좋다. 조용한 동네에서 지내니 복잡하지 않아 좋고 가끔 주말에 시내에 가려면 늘어선 차들과 사람들 틈에서 어리둥절한 나를 만난다. 세 아이들이 모두 집을 떠나 대학 기숙사로 가고 나니 집에서 밥을 하는 일도 줄었다. 늦은 시간 출근하는 남편도 간단하게 아침을 먹고 집을 나서고 늦은 시간 돌아오니 저녁은 하지 않아 좋다. 하지만, 함께 대화할 수 있는 시간이 많이 줄었다. 그래도 요즘은 남편과 함께 가끔 골프라도 하니 참으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요즘은 더욱이 단순함을 생각하며 생활 안에서 실천하려 애쓴다. 오래전 같으면 옷가지 수들도 많아 무엇을 입을까 무슨 가방을 들까 고민을 할 때가 있었다. 물론, 그 시간도 내게는 즐겁고 행복한 시간이었다. 세 아이를 키우며 제일 중요한 때에 미국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불황이 닥쳐왔다. 국제와 사회 그리고 가정의 생활 가운데도 그 바람은 비켜가지 않고 오래도록 절제와 절약을 요구하였다. 이 몇 년 동안의 불황이 내게는 전화위복이 되었다는 생각을 한다. 가정에서 주부로서 아내로서 엄마로서의 자리를 더욱 튼실하게 해주었던 시간이었다.

몇 년 전부터 절약을 시작한 것이 우선 세탁소에 드라이크리닝을 맡기던 옷가지들을 정리하고 손수 집에서 세탁할 수 있는 옷으로 바꿔입었다. 남편의 옷도 몇 가지만 세탁을 맡기고 와이셔츠와 카키 바지 정도는 집에서 세탁하여 손수 다림질을 시작했다. 남편이 2년 전에 새로 시작한 비지니스로 와이셔츠를 꼭 입고 가기에 요즘은 봄 가을 남편의 와이셔츠를 다리는 일이 내게는 커다란 행복이 되었다. 이른 아침 남편의 옷을 다림질하며 마음속으로 감사의 기도를 올리는 시간이 되었기 때문이다. 가정의 행복은 이처럼 아주 작은일에 숨어 있다.

이렇듯 몇 년 동안의 생활에서 나의 삶은 큰 변화를 가져왔다. 사람을 만나는 일도 예전처럼 쉬이 약속하고 이런저런 수다로 시간을 보냈던 시간을 조금은 서로에게 도움이 되고 격려가 될 수 있는 만남을 선택했다. 어찌 보면 단순한 삶을 위한 준비과정으로 무겁던 겹 가지들을 하나씩 가지치기를 시작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게 조금씩 삶의 방향이 정해지고 나니 하루의 생활에서 누릴 수 있는 여유의 시간이 길어졌다. 그동안 읽고 싶었던 책과 내게 필요한 책도 한 권이라도 더 깊이 들여다볼 수 있는 여유가 생기니 사색할 수 있는 시간도 찾아왔다.

'남의 얘기가 궁금하지 않으면 남의 말도 하지 않게 된다'는 생각을 그때 문득 하게 되었다. 가깝게 지내는 곁의 친구들과 얘기를 하다 보면 그 또래 아줌마들의 일상 대화가 그런 것처럼 남의 얘기가 흥미로워진다. 무덤덤한 하루의 일상에서 흥밋거리의 얘기는 아주 감칠맛 나는 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 흥미는 또 다른 흥미를 기대하게 된다는 것을 그때야 깨달을 수 있었다. 아, 그렇구나! 남의 얘기가 궁금하지 않으면 남의 얘기도 하지 않게 된다는 사실을. 그 이후로 '듣는 귀'에 대한 철저한 절제와 지혜를 달라고 주문처럼 간절한 기도를 했다.

이제는 새로운 친구를 사귀기보다는 오래 알고 지내던 친구를 더욱 귀히 여기게 되었다. 지내온 세월만큼이나 서로 편안하다는 얘기일 것이다. 새로운 인연은 마음에 설렘도 있지만, 그 이면에 두려움도 있다. 이제는 삶에서 너무 많은 인연을 만들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 어떤 만남일지라도 서로 만나면 좋아하고 좋아하다 보면 욕심이 생기게 된다. 그 만남이 굳이 여자이든, 남자이든, 젊은이든, 늙은이든 상관하지 않더라도 삶에서의 인연은 그리 쉬이 놓이지 않는 집착을 만들게 한다. 이제는 쥐고 있던 작은 집착들마저도 하나씩 놓고 싶다.

하루의 일상에서 단순한 삶을 위한 실천은 바로 절제라는 생각이다. 그 누구보다도 먹는 것을 즐기고 행복해하는 식도락가인 내게는 맛있는 음식을 남겨두기란 여간 어렵지 않은 일이다. 지난 1년 동안 집에서나 밖에서나 식사량을 줄이는 연습을 계속해 왔다. 1년이 지난 지금 가만히 생각하니 몸무게가 특별히 많이 줄지는 않았지만, 몸이 많이 가벼워졌다. 이제는 어느 곳에서든 음식을 앞에 놓고도 여유롭게 바라보고 기다리는 여유가 생겼다. 지천명으로 가는 길목에서 만난 생활에서의 '절제'는 나의 삶의 방향과 인생의 가치관을 바꿔 놓았다.

시인 신영은 월간[문학21]로 등단, 한국[전통문화/전통춤]알림이 역할 등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skybosto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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