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영의 세상 스케치 - 266회
보스톤코리아  2010-09-27, 13:08:38 
"사람은 자신이 행한 것이나 행하지 않은 것 때문에 죄책감을 느낀다. 그리고 자신의 존재와 관련하여 부끄러움을 느낀다" - 윌리엄 모어멘 -

우리 세대(40-50대)의 사람들이 자라온 환경을 가만히 살펴보면 가정에서나, 학교에서나, 사회에서나 그 어디에서나 제약된 테두리가 많았다. 물론, 문화적인 것과 종교적인 것이 큰 역할을 했을 테지만, 유교적인 사고가 삶의 뿌리에 잔재해 있었기에 그에서 벗어나기가 더욱 어려웠을 거라는 생각을 해본다. 예를 들면, 가정에서 아들과 딸의 구분이 정확히 그어졌었고, 형과 아우의 문제도 서로의 선이 정해졌기에 형과 아우의 따뜻한 정감보다는 윗사람과 아랫사람의 거리감을 느끼게 된 것이다.

그 오랜 사고방식을 가지고 이민을 온 사람들의 생활을 가만히 생각해 보면 가슴이 먼저 답답해 온다. 물론, 나 자신 역시도 20여 년 전 처음 왔을 때의 그 묵은 사고와 방식으로 살고 있으며 아이들에게도 보이지 않게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코리안 아메리칸으로 사는 아이들에게 한국 사고방식의 부모는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고 고민거리인 문제이기도 하다. 한국 부모 밑에서 아이들이 자라며 이렇다저렇다 말하지 않지만, 그 내면에서 이중사고 방식의 문화를 접하며 겪어야 했을 그 마음이 안타깝게 다가온다.

물론, 문화가 다르고 종교가 다르고 인종이 다른 곳에서의 생활이 어려움은 있겠으나 어른이 겪는 어려움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한국에서 배운 영어는 도대체 어디로 숨어들었는지 보이지 않고 버벅거리는 바보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미국인들과 함께 직장생활을 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상처'라는 것은 굳이 상대방에게서 오지 않더라도 자신 속에서 먼저 치솟아 오른 '자격지심'이 자존심을 건드리는 것이다. 어쩌면 상대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을 그 '상한 자존심'은 '상처'라는 다른 이름으로 '남의 탓'으로 전가하기도 한다.

상처라는 것은 그 누군가가 주었든 말았든 간에 자신에게 이미 와 있는 '상한 마음과 깨어진 자존심'에 억울하고 화가 치밀어 견딜 수 없는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그렇게 보내다 상대방의 얼굴이 떠오르면 미움이 솟고 얼굴이 울그락불그락, 열이 오르락내리락 거리다 혼자 씩씩거리는 것이다. 그런데 그 상대방은 이 사람이 이렇게 속상해하고 아파하는 줄 알기나 할까. 이렇게 며칠을 지내면서 상대가 알든 모르든 간에 마음속에 미움은 더욱 쌓이고 상처(수치심)는 더욱 깊어지는 것이다. 결국, 상하는 것은 상대방이 아닌 나 자신이다.

수치심은 기본적으로 자신의 '존재'에 대해 느끼는 감정이라면, 죄책감은 우리가 살면서 '행하는 것'에 대한 느낌이라는 것이다. 아마도 이런 때 느꼈던 것이 '수치심'이고 '죄책감'이었다는 생각이 스쳐 지난다. 친정에서는 '쉰둥이 늦둥이'로 아버지 어머니 사랑을 그 누구보다도 많이 받고 자랐다. 헌데, 결혼 후 그 누가 주었든 말았든 간에 시집 가족들로부터 받은 상처가 내게 큰 아픔이 되었다. 친정에서처럼 '그래, 그래 네가 최고다' 하고 말해주는 사람보다는 '무엇인가 트집을 잡으려 기다리는 사람들처럼...' 그렇게 힘겹게 살던 때가 있었다.

우리 부부는 벌써 결혼한 지 21년째를 보내고 있다. 삶이란 참으로 아이러니하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제일 힘겨웠던 결혼 10년이 내게 가장 행복했던 결혼 10년이었다는 것이다. 이렇듯 순간순간이 이어져 영원이 되리라. 인생은 이처럼 올록볼록하고 울퉁불퉁한 모습으로 사랑과 미움과 용서와 화해를 반복하며 조각난 것들을 찾아 붙여가는 '모자이크의 그림'일 것이다. 때로는 '수치심'으로 미움이 되기도 하고 그 미움으로 '죄책감'을 느끼며 그렇게 내일은 조금 다를 거라는 꿈과 희망을 가지며 오늘을 사는 것이다.

'수치심과 죄책감에서 벗어나기'위해서는 나 자신을 사랑하는 일이 우선이다. 내 마음도 때로는 나 자신이 모를 때가 있는데 어찌 다른 사람이 내 마음을 다 이해할 수 있겠는가. 때로는 나도 다른 사람에게 생각없이 던진 말 한마디가 상대방에게 '수치심'을 느끼게 하지 않았겠는가. 서로가 다른 환경과 문화에서 자란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해주면 쉬운 것이리라. 우리는 이처럼 서로 너무도 부족한 존재들이다. 서로 모서리마다 모가 난 사람들이 만나 닿고 부딪히며, 익숙해지고 이해하게 되어 둥굴어지는 연습을 오늘도 하는 것이다.

시인 신영은 월간[문학21]로 등단, 한국[전통문화/전통춤]알림이 역할 등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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