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도박, 미국의 착각
보스톤코리아  2010-11-01, 15:54:42 
편/집/국/에/서 :

영국이 몸살을 앓고 있다. 보수당은 극한의 재정축소라는 쓴 약을 마시겠다고 나섰다. 앞으로 50만 명에 달하는 공무원을 해고한다. 현재 주문 건조중인 항공모함 계획을 취소하면 훨씬 더 많은 비용이 들기 때문에 계속 건조하지만 그곳에 채울 전투기는 없다. 2013년부터는 어린이에 대한 정부보조를 중단한다.

영국의 조지 오스본 재무부 장관은 지난 20일 향후 5년간 정부의 전 부서 심지어는 왕실 예산까지 약 20%를 삭감한다고 발표했다. 극도의 재정축소는 영국의 국내총생산(GDP)의 10%에 달하는 정부 빚을 줄이기 위한 고육지책이다.

영국의 보수경제 전문지 이코노미스트는 20일 오스본 장관의 발표 모습을 ‘축구 결승전과 장례식의 모습을 결합해 놓은 것’이라고 묘사했다. 오스본 장관은 “(재정축소는) 어려운 길이지만 더 나은 미래로 이끌 것이다. (중략) 우리가 갚아야 하는 빚으로 인해 우리 자녀들에게 ‘이자의 이자의 이자만’을 물려줄 수 없다.”고 밝혔다.

그러나 영국 캐머런 총리는 단 한 분야의 예산은 전혀 삭감하지 않았다. 영국의 전 주민 의료보험 예산이다. 심지어 항공모함에 비행기를 싣지 않으며 이를 프랑스와 나눠 쓸 생각까지 하는 영국 정부가 정부 지출의 5분의 1에 해당하는 의료보험은 한 푼도 삭감하지 않았다는 것은 주목할만 하다.

향후 군인, 경찰, 교사 등 공무원이 일자리를 잃고, 복지혜택과 연금은 줄어들고, 대중교통요금과 대학 학자금은 올라간다. 세금도 올라간다. 이코노미스트는 상황이 생각했던 만큼 나쁘지 않을 수도 있지만 허리 띠 졸라매기가 계속되면 결국 서민 뿐만 아니라 경찰 등 중산층 보수당의 지지자들까지도 결국은 등을 돌리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파이낸스 타임즈의 알렉스 바커 경제 전문기자는 미국의 공영 라디오(NPR)과의 인터뷰에서 “오스본이 희망하듯이 민간 기업부분이 성장을 주도하지 않는 경우 영국은 긴 스테그네이션에 상태에 이를 것”이라고 예측했다.

이코노미스트지도 “현재의 문제를 다루는 것이 현재의 문제를 기피하는 것보다 위험이 적지만 민간 부분이 역할을 할 것이라는 기대는 정확한 도박”이라 지적했다. 노벨수상 경제학자 조셉 스티글리츠 컬럼비아대 교수도 “혜택은 하나도 없고 거의 도박에 가깝다”고 비난한 바 있다.

불완전한 시장에서는 정부 주도의 지출과 투자가 필수적이라고 했던 현대 경제학의 거장 케인즈의 나라에서 그를 완전 부정하는 방향의 경제정책을 펴는 영국의 정책을 두고 세계는 우려와 기대가 섞인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미국의 중간 선거에서는 공화당과 티파티가 승리할 것이라는 여론조사 결과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 ‘누가 승리하느냐’ 하는 것 보다는 ‘승리 후 어떤 변화가 올 것인가’에 관심이 모아진다. 티파티의 도움을 받은 공화당이 승리하는 경우 추구하는 정책은 무엇일까. 차기 하원의장으로 촉망(?)받는 존 뵈너 의원은 얼마전 공화당의 안건을 발표한 바 있다.

공화당이 줄기차게 주장하는 것은 바로 전주민 의료보험을 보장한 오바마의 의료개혁을 폐지하는 것이다. 영국의 보수 정부가 유일하게 예산을 삭감하지 않는 항목이지만 미국의 공화당 및 티파티는 의료보험 폐지를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다. 실행도 해보지 않고. 폐지는 힘들겠지만 일부 개편을 위해 소모적인 정쟁이 계속될 것이 불 보듯 뻔하다.

공화당은 금융개혁안의 철폐를 주장한다. 티파티 운동이 가장 반대하는 것 중의 하나는 대형은행의 구제금융(TARP)이었다. 그럼에도 월가의 대형은행과 투자은행들을 규제하는 금융개혁안을 폐지하자고 주장한다. 앞에서는 구제금융을 반대하고 뒤에서는 규제를 반대하는 티파티의 정체성의 혼란이다.

또한 정부지출의 축소로 재정균형을 추구한다. 의료개혁, 교육, 정부의 대체에너지 프로젝트 등으로 발생하는 재정지출을 줄이겠다고. 정부 주도의 경기 부양책도 강력하게 반대한다. 문제는 재정축소를 추구하면서 동시에 세금감면을 요구한다는 것이다. 오바마 경기 부양책의 핵심이 세금감면이 아니었던가. 더구나 5천억 달러에 달하는 국방예산은 노터치다.

국민의 의료보험은 유지하되 그 외 모든 정부 지출은 과감하게 줄이겠다는 영국 캐머런 총리와 보수당의 정책은 ‘도박’이지만 정직해 보인다. 자녀들에게 빚더미를 물려줄 수 없다는 영국 정부는 그럼에도 수많은 실업자들의 자녀들이 고통스러워 해야 하는 것은 무시하는 모순을 벗어나지 못한다. 영국의 케인지 학파 경제학자 로드로버트 스키들스키 박사는 “많은 실업자와 고통스러워 하는 자녀들을 만드는 것보다 활황인 경제를 물려주는 것이 훨씬 나은 선택”이라고 지적했다.

미국의 보수와 티파티는 재정긴축을 오바마 정책에 대한 반대로 생각하는 것처럼 보인다. 마치 클린턴 정책을 무작정 반대하던 부시의 ABC(Anything but Clinton)정책처럼. 자녀들에게 빚더미를 주어서는 안 된다며 재정긴축을 요구하지만 뼈를 깎는 허리띠 졸라매기를 하기 보다는 내 세금을 돌려달라고 하는데 관심이 많다. 티파티의 시작은 세금에 대한 분노에서 비롯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영국 보수의 개혁이 ‘도박’이라면 미국 보수, 티파티정책은 ‘착각’이다. 도박이든 착각이든 어쩔 수 없이 우리가 걸어가야 할 길이라는 현실이 한탄스럽다.

장명술 l 보스톤코리아 편집장 editor@boston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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