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영의 세상 스케치 - 278회
보스톤코리아  2010-12-20, 14:59:12 
"축하드려요, 하바드 할머니!"
"손자가 하바드에 합격했으니 얼마나 좋으신지요?"
"그래요, 우리 집 손자 녀석이 할머니를 기쁘고 행복하게 해줬어요."
"호호호, '하바드 할머니?'" 하시며 웃으신다.
보스톤 지역의 특징 가운데 일가친척들이 가까이 모여 사는 일이 많다. 운전으로 30여 분이면 만날 수 있는 곳에 가족들이 사니 이런저런 얘기들이 많다. 이 할머니도 마찬가지로 우리 시댁하고 사돈이 되신다. 할머니 큰며느리가 우리 시어머님의 여동생(시이모님)이 되기 때문이다.

그것뿐일까. 이 할머니의 막내며느리는 나의 어릴 적 친구이기에 가까우면서도 더욱 어려운 분이시기도 하다. 그러니 시이모님과 나의 친구는 동서지간이 된다. 한 사람을 놓고 친정 조카며느리가 되고 친한 친구가 되니 생각만으로도 그림이 그려지지 않겠는가. 20여 년을 그렇게 시집 가족과 일가친척들과 사돈과 사돈의 팔촌까지 얽혀 있는 복잡한 곳에서 탈 없이 잘살고 있다. 지금 생각하면 이런 틈바구니에서 인생공부를 톡톡히 배우고 경험하며 내성을 기르고 일들을 대처하는 삶의 지혜를 배우고 익혔다는 생각을 한다. 여하튼 이 세상에는 공짜가 없다는 것을 또 깨닫는다.

사돈 할머니는 7남매를 두셨는데 딸 넷과 아들 셋을 두셨고 할아버지(남편)와는 오래전에 이별을 하셨다. 자손들도 할머니를 좋아하고 따르는 다복하신 할머니시다. 세 며느리를 보면 여느 가정의 며느리들보다 시어머님께 잘한다는 생각을 한다. 생활이 넉넉하지 못한 시집에서 세 며느리가 어찌나 부지런한지 20여 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에는 모두가 생활의 안정과 자녀의 교육에서 으뜸가는 가정이 되었다. 그중에서 둘째 아들네의 손자 녀석이 지난해 하바드에 합격한 것이다. 이 가정의 기쁨과 행복이기도 하지만, 이 동네의 자랑이기도 했다. 'O씨 가문의 영광'임에는 틀림없었다.

어찌 혼자만의 힘으로 뜻(하바드 대학 합격)을 이룰 수 있었겠는가. 자상하고 사랑 많은 어머니의 정성과 곁에 있는 든든하신 아버지 그리고 따뜻하신 할머니의 사랑이 있어 가능했던 일이었을 게다. 이 녀석을 어려서부터 가끔 보아왔지만, 성품이 얌전하고 착했었다. 나중에 가끔 시이모님이나 친구에게서 들은 얘기이지만, 학업성적도 아주 우수하다는 얘기와 함께 그의 어머니가 한국에서 교편생활을 했었다는 것이다. 그만큼 교육에 대한 열의와 뒷받침이 있었다는 결론이다. 이 아이의 '하바드 대학 합격'은 이 동네 한국 사람들의 자랑이기도 했으며 자부심이기도 했다. 녀석에게 다시 한 번 큰 박수를 보낸다.

남의 자식의 자랑이지만, 남의 일 같지 않고 나의 일처럼 기쁜 마음인 것은 그 또래의 자식이 내게도 셋이나 있기 때문이다. 공부라는 것은 억지로 시킨다고 하는 것도 아니고 돈을 주고 사는 일은 더욱 아니기 때문이다. 아이와 부모와 선생과 삼박자가 맞아야 하고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어야 함은 물론이기 때문이다. 세상에 억지로 되는 일이 무엇이 있겠으며 노력 없이 이루어지는 일이 어디에 있겠는가. 그 무엇하나도 거저 얻어지는 것은 없으며 그 뒤를 돌아보면 부모의 사랑과 정성이 그리고 할머니 할아버지의 끊임없는 기도와 사랑이 있었기에 가능하다는 생각을 한다.

팔순을 훌쩍 넘기신 사돈 할머니가 얼마나 많은 시간을 자손들을 위해 마음으로 간절한 기도를 하셨는지 이렇듯 아름다운 열매를 맺으시는가 싶다. 한국 식품점이나 교회 한국 사람들이 모인 곳에서 이 할머니는 손자를 통해 더욱 행복한 인사를 받으신다. 얼마나 마음 흐뭇한 일이겠는가. 입으로 자랑하지 않아도 저절로 자랑이 되는 순간이며 마음으로 더욱 겸손해지는 감사의 시간을 만나는 것이다. 옛 시절을 떠올리며 어려운 형편에 7남매를 키우시느라 힘드셨다는 얘기를 해주셨던 사돈 할머니. 이제는 그 시절의 아련한 슬픔과 설움이 기쁨과 행복으로 모두 씻겨지셨을 사돈 할머니.

'하바드 할머니!' 하고 반갑게 인사드리니 환한 얼굴로 화답하시는 사돈 할머니의 모습이 스쳐 지난다. 하얀 백발노인의 해맑은 미소가 어린아이처럼 곱고 예쁘다. 팔십여 평생을 살아오시며 겪었을 수많은 삶의 애환들이 자식을 키워내고 손자를 키워내시며 가슴 속에 남았던 恨이 조금씩 풀어졌을 것이다. 긴 삶의 여정에서 부딪치고 깎이며 마음의 비움을 경험하셨을 것이다. 이제는 오래 묵었던 삶의 찌꺼기들을 하나 둘 씻고 또 씻기며 넉넉하고 풍성한 삶을 누리시는 것이다. 자식과 자손들을 위해 매일 쉬지 않고 기도하실 사돈 할머니, '하바드 할머니'는 멋지고 아름다우십니다.

시인 신영은 월간[문학21]로 등단, 한국[전통문화/전통춤]알림이 역할 등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skybosto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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