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영의 세상 스케치 - 281회
보스톤코리아  2011-01-14, 12:42:30 
우리 모녀는 다른 집 모녀보다 자기주장이 강한 편이다. 서로 누구 탓이랄 것도 없이 둘 다 똑같다. 그 엄마에 그 딸이라는 말이 우리 모녀를 두고 한 말이 아닐까 싶다. 딸아이가 엄마 마음을 섭섭하게 하면 어찌 그리도 내 어머니가 그리운지 이제는 버릇처럼 되어간다. 아마도 엄마가 그리운 것은 엄마에게 나도 저런 딸이었을 테지 하고 생각이 스치기 때문일 게다. 그래도 내 어머니는 야단보다는 늘 사랑으로 안아주셨던 기억이다. 하지만, 나는 내 딸에게 엄마에게 받은 그 사랑을 주지 못하고 마음의 화를 다스리기 바쁘다. 화의 기운이 딸에게 흘러갈까 싶어서 말이다.

엄마와 아들 두 녀석과는 사이가 좋은 편인데 딸아이와는 가끔 보이지 않는 묘한 감정이 오간다. 엄마를 좋아하면서도 아빠를 더 챙기는 딸아이의 마음을 알수 없지만 말이다. 예를 들어 방을 좀 치우라고 하면 대답은 하면서 반나절이 지나도록 움직이질 않는다. 물론, 엄마인 내가 방을 치워줄 수는 있지만, 딸아이가 하는 행동을 지켜보는 것이다. 엄마의 입에서 좋은 소리가 나갈 리 없으니 딸아이의 마음이 상하기 시작하고 그 시간 이후에는 서로 보이지 않는 실랑이를 벌인다. 어제도 엄마와 딸이 별일 아닌 부엌 설거지거리로 서로 얼굴을 붉히고 마음이 상하는 일이 있었다.

세 아이가 방학이니 요즘은 식사를 때를 따라 챙겨 먹는다. 아이들이 밥 먹은 설거지거리를 싱크대에 쌓아 놓는 것이 못마땅한 엄마는 얼른 주섬주섬 챙겨 디시워시어(dishwasher)에 넣고 돌린다. 점심때가 지나니 설거지거리가 또 쌓였다. 딸아이에게 설거지를 좀 하라고 얘길 하고 몸이 찌뿌드드해서 잠시 소파에 누워 잠이 들었다. 한두 시간 잤을까 싶어 눈을 뜨니 저녁이 다 되었다. 부엌으로 내려와 싱크대를 보니 여전히 설거지 거리가 있지 않은가. 큰 소리로 이층에 있는 딸아이 이름을 부르며 부엌으로 내려오라고 했다. 아래층으로 내려오는 발걸음 소리가 심상치 않았다.

"엄마가 점심때 먹은 설거지를 하라고 일렀는데..."
"아직까지 그대로 있네?" 하고 딸아이에게 볼 맨 소리로 묻는다.
"엄마가 먼저 디시워시어에서 끝낸 그릇을 챙겨 넣어주지 않아서 그랬지 뭐!~~" 한다.
"지금 할게요, 엄마!" 하며 싱크대에 물을 틀더니 주섬주섬 설거지를 시작한다.
"아니, 이게 웬일인가? 설거지를 하는 것까지는 좋은데... "
먼저 끝낸 그릇을 그냥 놔둔 채 그 위에 설거지 그릇을 넣지 않는가. 딸아이가 하고 있는 그 광경을 목격한 엄마가 더는 볼 수가 없어 소리를 버럭 질렀다.

엄마의 화난 목소리에 각자 방에서 컴퓨터에 빠져 있던 두 녀석이 슬그머니 부엌으로 얼굴을 내민다. 엄마의 얼굴이 심상치 않은지 조용히 각자의 방으로 사라졌다. 딸아이는 아무런 말도 없이 먼저 끝냈던 씻겨진 그릇을 하나 둘 챙겨 넣는다. 잘잘못을 따지자면 엄마가 먼저 끝낸 그릇을 꺼내지 않은 일일 테지만, 그렇다고 닦여진 그릇을 꺼내지 않고 그 위에 설거지거리를 넣는 그 행동은 도저히 용서할 수가 없었다. 엄마가 매번 설거지하라는 것도 아니고 집에 와 몇 번 하는 설거지가 싫어서 엄마에게 그렇게 행동했다는 것이 생각할수록 여간 마음이 상하는 것이 아니었다.

사내 녀석들은 엄마의 기분을 살피느라 바쁘더니 막내 녀석은 친구들과 약속이 있다고 나가고 한 참 후에는 큰 녀석도 약속이 있다며 집을 나갔다. 딸아이와 엄마가 한 지붕 아래의 위 아래층에서 상한 마음을 끌어안고 각자의 시간을 죽이고 있었다. 남편이 늦은 시간에 집에 들어왔지만, 아무런 내색 없이 잠을 청했다. 아침이 되어 남편과 함께 커피와 빵을 챙겨 먹는데 큰 녀석이 내려와 함께 아침을 먹었다.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 어제의 속상했던 얘기를 꺼냈다. 남편은 들었는지 말았는지 누구의 편을 들 수가 없었던지 아무런 대답이 없다. 그렇게 오늘 하루가 시작되었다.

어제의 일이 못내 미안했던지 아니면 밤새 잠을 설쳐 늦잠을 잤던지 여하튼 점심때가 다 되어서 딸아이는 아래층으로 내려왔다. 훼밀리 룸에서 TV를 보던 엄마의 얼굴을 보더니 미안했던지 괜스레 곁에 있는 강아지 티노에게 아침 인사를 건다. 딸아이의 활달한 성격과 거침없는 성격이 때로는 걱정스럽고 염려스럽다가도 무조건 적으로 참으려 하지 않는 딸아이가 이 세상 살기에는 더 좋겠다 싶은 생각을 해본다.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담아두지 않고 할 줄 아는 용기가 어쩌면 엄마는 내심 부러운지도 모른다. 언제 또 터질지 모르는 우리 모녀 사이에는 무엇이 있을까.

시인 신영은 월간[문학21]로 등단, 한국[전통문화/전통춤]알림이 역할 등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skybosto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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