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스톤에 눈이 오면
보스톤코리아  2011-01-31, 16:01:18 
편 / 집 / 국 / 에 / 서 :

눈이 오면 사우스 보스톤에선 늘 다툼이 인다. 주차장을 보유한 아파트가 거의 없고 도로주차가 대부분이어서 늘 주차 경쟁이 치열한 곳이 바로 사우스 보스톤이다. 1-2피트(30-60센치) 가량 눈을 퍼붓는 ‘노이스터(Nor’Easter)’가 지나가면 차와 주변에 쌓인 눈을 옆으로 밀어놓기에 그만큼 주차 공간이 좁아진다.

자신이 치워 놓은 자리에는 의자, 물통, 콘, 가구 등이 세워진다. “내가 치워 놓은 자리니 건들지 말라”는 영역 표시다. 남이 치워 놓은 자리에 얌체처럼 차를 대는 사람도 있기에 가끔씩은 자리다툼이 싸움으로 번진다. 과거 칼부림, 총질까지 이어졌던 적도 있다.

보스톤 시는 이 같은 문제를 방지해 보고자 모든 자리 표시 물품들을 한꺼번에 수거하고 자리표시를 시 조례로 금지하는 처방을 썼다. 그러나 사우스 보스톤 주민(Southie라 부름)들은 시의 명령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자신의 자리표시를 강행한다. 주민들 사이의 다툼이 이제는 시 환경미화부 직원들과 주민들간의 싸움으로 바뀌어 버렸다.

눈이 만들어 놓은 갈등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건물 소유주와 세입자 사이에서도 싸움이 일곤 한다. 건물 소유지 안에 쌓인 눈을 누가 치우느냐 하는 것이다. 건물주가 나몰라라 하는 경우, 당장 눈속에 갇힌 세입자들은 어쩔 수 없이 눈을 치워야 했다. 하지만 결국 이 문제는 소송으로까지 이어졌다.

주택 소유주들은 약 100여 년간 “자연적으로 내려서 쌓인 눈”에 대한 책임은 지지 않아도 됐었다. 보행자의 부상 책임은 눈 제설 작업으로 쌓인 눈처럼 인공적으로 쌓인 눈일 경우에만 졌다. 그러나 이것은 옛날 얘기다. 작년 7월 매사추세츠 주 대법원은 세입자의 손을 들어줬다. 눈이 쌓이는 경우 소유주들은 어떤 상황에서도 적절한 시간 이내에 이를 제거해야만 한다.

잇따른 폭설로 인해 ‘스노 팜(Snow Farm)’도 문젯거리로 등장했다. 보스톤 시는 적정량보다 많은 눈을 쌓는 스노 팜 소유주들에게 ‘눈 산적 중단’명령을 내리고 그래도 거부할 경우 법원에 고발할 것이라고 으름장을 놓고 있다.

겨울철이면 빈 공지를 소유한 사람들은 자신의 땅에 다른 곳에서 옮겨온 눈을 쌓아 두도록 하는 스노 팜을 만든다. 보스톤 시는 시 주변에 5곳을 이 ‘스노팜’으로 지정해 처리 곤란한 눈을 저장토록 하고 있다. 그러나 과다하게 눈을 쌓는 경우, 날씨가 갑자기 풀리면 홍수를 일으킬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보스톤 시는 눈의 양을 규제하고 있다. 특히 쌓인 눈에는 소금과 기름 등 유해성 물질이 함께 섞여 있기 때문에 지역 주민들은 과다한 눈의 산적을 꺼려하고 있다.

눈은 일반 운전자들에게도 고역이다. 출근 전 눈더미를 헤치고 눈을 파내야 한다. 더구나 따로 주차장이 없는 도심 운전자들은 고역을 치른다. ‘눈폭풍 비상령’이 발령되면 대로변 주차가 금지되기 때문에 이를 모르고 주차했다가 차를 견인 당해 거금을 들여 차를 되찾아야 하는 경우도 있다. 주차 장소 발견도 어렵다. 두 발을 이용하는‘뚜벅이’들도 마냥 편하지만은 않다. 보행자들은 날씨가 추울 경우 미끄러워진 도로에 엉덩방아를 찧는 일이 많고, 날씨가 따뜻할 경우 질퍽거리는 녹은 눈에 신발을 적시는 경우가 다반사다.

비즈니스도 울상이다. 움직이지 않는 사람들 때문에 여지없이 손님이 줄고 그날 장사를 망치게 된다. 보스톤에서는 눈이 적이요, 증오의 대상이다. 그만큼 눈을 좋아하는 사람이 드물고 눈을 좋아했던 사람들도 싫어하게 된다. 사람을 만나면 눈에 대한 불평을 늘어놓기에 바쁘다.

아이들은 다르다. 학교가 쉬어서 좋고, 눈사람을 만들 수 있어서 좋다. 눈 썰매를 타는 것은 정말 즐거운 일이다. 눈이 쌓이면 눈썰매 장소로 유명한 브루클라인 소재 앤더슨 파크는 아이들로 만원이다.

그 동심에는 다툼도 없고, 넘어지는 것도 즐거움이다. 눈이 많이 쌓이는 것도 즐거움이다. 땀이 나도록 눈썰매를 타다보니 강추위도 즐거움을 더하는 요소다. ­

하지만 현실에 부딪쳐야 하는 우리는 즐기는 방법을 잊어버린 지 오래다. 어린 시절엔 앤더슨 파크의 아이들처럼 눈을 즐길 줄 알고 좋아했는데 말이다.

보스톤에 내리는 눈은 사우스 보스톤에 내리는 것이나, 어른들에게 내리는 것이나, 어린이들에게 내리는 것이 다르지 않다. 자연이 만드는 눈을 결코 피할 수 없다. 피할 수 없다면 그것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것이다. 눈을 미워하고 싫어한다고 해서 덜 내리지 않는다. 그렇다면 차라리 눈을 즐기는 것이 생산적이다.

새벽에 일어나야 하고, 할 일이 산적해 있는데 무슨 소리냐고 반문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잠시의 여유면 된다. 창밖에 내리는 눈의 소리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 사락사락 내리는 눈을‘먼 곳에 여인의 옷벗는 소리’라고 한 김광균 시인의 마음을 느끼는 것으로 우리의 삶은 풍부해질 것이다.

보스톤의 눈, 지겹다고 하지 말고 올 겨울엔 즐겨보자.‘먼 곳에 여인의 옷벗는 소리’를 들어보자.

장명술 l 보스톤코리아 편집장 editor@boston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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