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영의 세상 스케치 - 296회
보스톤코리아  2011-05-02, 14:31:49 
우리 집 뒤뜰에는 개나리 몇 그루에 노란 꽃이 활짝 피었다. 무심히 창밖을 내다보다 문득 만개한 개나리꽃에서 이씨 아저씨를 만나고 말았다. 아저씨께서 개나리 몇 그루를 뒤뜰에 심어주시고 떠나신지도 벌써 2주기가 훌쩍 지났다. 이씨 아저씨와의 인연은 우리 시부모님과 함께 아주머니가 가깝게 지내셨던 사이라 결혼 후 자연스럽게 여느 동네 아저씨가 아닌 가족처럼 편안하게 지냈다. 아저씨는 한국에서 당신의 전공은 아니었지만, 미국에 이민 오신 이후로 손재주가 있으신 덕분에 한국 가정집에 냉장고나 수도 그리고 화장실 등 급한 고장이 있으면 연락을 받고 달려가 고쳐주곤 하셨다.

우리 집도 예외일 순 없었다. 시어른들과 가깝게 지내신 이유도 있을 테지만, 가정 살림에 필요한 것들을 달아주시고 떼어주시고 하셨던 손길을 생각하면 지금도 감사함이 가득 차오른다. 우리 집에 오시면 일도 일이거니와 이런저런 삶의 얘기들을 두런두런 들려주시고 들어주시며 지냈다. 지금도 남편과 아저씨 얘기를 가끔 하곤 한다.

"아저씨가 계실 때에는 이런 것들은 사용하기 편안하고 편리하게 만들어주셨을 텐데..."
"여기도, 저기도..."
"이것도 저것도..." 하면서 남편과 얘기를 나누며 지금은 떠나신 이씨 아저씨를 떠올리곤 한다.

이씨 아저씨를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내게는 더욱이 고마운 분이셨다. 그 어느 곳 하나 아저씨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기 때문이다. 아저씨가 떠나신 지 벌써 2주기를 넘고 보니 집안 구석구석에서 아저씨의 고마운 정성과 사랑의 흔적이 남아 있다. 아저씨는 여느 한국 분들처럼 궂은 일을 하시면서 옛날 '금송아지 타령'을 별로 하신 적이 없다. 아주머니 얘기를 듣자면 아저씨의 젊은 시절은 집안 형편도 썩 괜찮은 가정에서 자라 편안하게 사시며 공부를 하셨다고 한다. 이민 오신 지 25여 년이 되었지만, 이민 생활에 대한 불만이나 탓을 하지 않으시고 현실에 충실하셨다.

아저씨는 아이들도 어찌나 좋아하시던지 우리 집 딸아이가 태어났을 때 아저씨와 아주머니께서 많이 좋아하시고 축하해 주셨다. 가끔 우리 딸아이를 보시면 두 손으로 번쩍 안아주시곤 하셨다. 아이처럼 순박한 마음과 너그러운 심성을 갖고 계셨던 분이다. 아저씨가 돌아가신 후 남편과 함께 딸아이의 어릴 적 사진첩을 들춰보게 되었다. 그 앨범 속에는 딸아이를 안고 있는 이씨 아저씨 사진도 있었다.

"음, 아저씨가 총각 같으시네!"
"정말, 젊으신 모습이다." 하고 우리 부부는 아저씨를 떠올리며 얘기를 나누게 되었다.
아마도 그 사진 속의 아저씨는 우리 부부 나이보다도 더 젊으셨던 모습이라는 생각이다.

뒤뜰에 활짝 핀 노란 개나리를 보면서 이씨 아저씨를 기억하게 되었다. 우리 집의 집안일과 바깥 일을 마다하지 않으시고 시간을 마련해주셨던 아저씨의 고마움을 잊을 수가 없다. 더욱이 개나리꽃이 만개한 이 따뜻한 봄날에 바람에 실려온 아저씨의 고마운 사랑이 더욱 그립니다. 이렇듯 떠나셨어도 당신을 생각하고 그리워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행복한 삶이었을까. 이렇듯 사람과 사람의 사이에 편안함이 자리할 수 있는 삶이라면 아름답고 멋진 인생이 아니겠는가. 아저씨는 오래지 않은 지병을 앓다 가셨기에 가족이나 지인들이 더욱 섭섭했었다.

우리 집 세 아이도 아저씨의 기억과 추억을 가지고 있다. 이씨 아저씨 이름이 '감자 아저씨!'란 별칭이 붙여진 것은 우리 집 아이들이 어려서 이씨 아저씨와 아주머니께서 아침 식사(Breakfast)를 전문으로 하는 Diner를 하셨다. 아이들이 할머니를 따라 가끔 '다이너'에 놀러 가곤 했었는데 그곳에서 제일 맛있게 먹었던 것이 감자를 굵게 썰어 만든 '후렌치후라이'였다. 그래서 아이들이 붙여 드린 이름이 '감자 아줌마 & 감자 아저씨!'가 되었다. 이제는 그 일을 그만두신 지 꽤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우리 집 아이들의 기억 속에 남은 이름은 '감자 아저씨 & 감자 아줌마!'인 것이다.

이씨 아저씨를 생각하면 그저 고마움 뿐이다. 가끔 아주머니를 뵈올 일이 있을 때는 아저씨의 고맙고 감사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나눈다. 아주머니에게도 편안하고 좋은 남편이셨다며 기억을 더듬으며 회상하곤 하신다. 아저씨는 정말 행복한 사람이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인생이 길든 짧든 간에 삶을 살다 돌아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돌아간 자리에서 그 사람의 따뜻한 온기를 느낄 수 있고 은은한 향기를 맡을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그것도 가족이 아닌 다른 사람들에게 이런 그리움을 남겼다는 것은 이씨 아저씨의 삶을 말해주는 것이다.

시인 신영은 월간[문학21]로 등단, 한국[전통문화/전통춤]알림이 역할 등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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