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영의 세상 스케치 - 302회
보스톤코리아  2011-06-13, 14:29:25 
내가 그녀를 처음 만난 것은 아마도 20여 년 전의 일이다. 아마도 1986~87년이라는 기억이다. 전위예술가 홍신자의 포스터가 뉴욕에 붙여졌던 때가 말이다. 미국 생활이 채 익숙하지 않은 내게는 조금은 생소한 모습이었지만 꽤나 흥미롭고 파격적인 도전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얼마 되지 않아 뉴욕을 떠나 한국으로 돌아간다는 얘기가 들렸다. 그녀의 삶은 참으로 소설 같은 얘기들로 가득하다. 총명하고 발랄한 영문학도가 유학길에 올랐다가 갑작스럽게 춤을 선택하며 '춤꾼'이 되는 일과 명상에 입문하며 뉴욕을 떠나 인도에서 보낸 시간이 그랬다.

"한국 최초로 라즈니쉬의 제자가 된 무용가 홍신자의 치열한 구도 체험. 미국 뉴욕에서 명성을 떨치며 전위무용가로 활약하던 그녀는 한때 모든 것을 버리기로 결심한다. 그녀 앞에 다가선 고행의 인도, 그리고 라즈니쉬…. 라즈니쉬와 그녀 사이에는 어떤 추억이 있었으며, 그는 그녀에게 어떤 가르침을 주었는가? 인도 푸나를 배경으로, 라즈니쉬와의 만남과 헤어짐, 그녀의 수행 과정과 신비 체험이 생생히 그려진다." 라즈니쉬와의 운명적인 만남과 3년간의 인도에서 보낸 수행과 체험이 담긴 깊은 공명의 얘기가 '푸나의 추억'인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 없는 여자다. 도대체 이런 거침없는 몸짓, 행동은 어디에서부터 흘러온 것일까. 그녀의 속 깊은 곳에 있는 마음 짓이 궁금해진다. 그녀의 속에는 알 수 없는 신비와 경이가 살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이뿐일까. 그녀는 12살 연하의 남자를 만나 남편으로 맞아들인다. 그녀에 속한 것들은 이토록 변화무쌍하다. 평범을 거부한 태풍 같은 그녀에게서는 보이지 않는 바람이 휘돈다. 마른하늘에 날벼락이라도 떨어뜨릴 듯한 멈추지 않는 에너지는 바로 그녀의 힘이다. 평범함이나 반복은 그녀에게 어울리지 않는 지루함일 뿐이다.

그녀는 세월을 비켜간 바람 같은 여자 아직도 내 가슴에 젊은 여자로 사는 신비의 여신이다. 어느 날 그녀의 근황이 궁금해졌다. 가끔 한국 뉴스의 문화면의 한 귀퉁이에 남은 그녀의 이름과 '웃는돌과 죽산마을'에 대한 얘기로 만날 뿐이었다. 마음 닿는 곳에 발길도 닿는 것일까. 몇 년 전 그녀가 사는 안성의 '죽산 마을'로 발길을 돌렸다. 아마도 '안성죽산국제예술제'가 끝나고 모두가 돌아간 시간이었나 보다. 나지막한 야산에는 남은 깃발들 몇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고 아직 가시지 않은 자연과 호흡했던 사람의 냄새가 바람을 흔들고 있었다.

그녀는 그렇게 오래도록 내 가슴에 살고 있다. 그녀와 비슷한 한 남자를 오래전에 만났다. 단 한 번도 얼굴을 보지 않은 한 사람, 그저 그의 책 한 권을 만났을 뿐이었다. 그 책 속에는 그저 평범한 활자가 그려져 있을 뿐인데 읽으면 읽을수록 가슴을 흔들어 놓았다. 지금까지 만나보지 못했던 영혼에 대한 물음이 쉬지 않고 올라왔다. 오래도록 나 자신이 영혼의 갈증에 목말랐다는 사실을 그때야 깨달을 수 있었다. 그리고 한참 후에야 이 남자를 만날 수 있었다. 그녀와 너무도 비슷한 한 남자를 그리고 두 사람과 너무도 닮은 나를 발견하고 말았다.

눈앞에 놓인 거울을 보는 것처럼 너무도 닮아 있는 두 사람에게서 나를 만나며 때로는 섬 짓 놀랄 때도 있었다. 그녀의 여러 권의 책을 통해 그녀와 오래도록 동행했던 것처럼 그의 책을 통해 그의 깊은 영혼을 만났던 것이다. 아주 오래 전 만났던 사람처럼 느껴지던 그 순간을 아직도 나는 잊을 수가 없다. 서로 말하지 않아도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를 그녀와 내가 그리고 그가 서로 느낄 수 있고 깨달을 수 있는 것이다. 평범을 거부한 사람들의 색깔과 모양은 참으로 수선스럽다. 반복을 받아들 수 없는 그들의 가슴은 요동치는 파도를 닮았다.

이제는 알 것 같다. 사람의 겉이 아닌 사람의 속에서의 만남이 얼마나 커다란 힘으로 남는 것인지. 그 한 사람의 영혼의 언어가 다른 또 한 사람에게 전해주는 에너지는 말할 수 없는 힘이 있다는 것을 말이다. 때로는 말보다 글이 상대의 가슴에 오래도록 남는다는 사실을. 그래서 글이라는 것이 무서울 때가 있다. 글 속에 있는 영혼의 언어가 그 메시지의 파장이 얼마나 멀리 높이 깊이 다가갈 수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욱 조심스럽고 부족한 나 자신을 깊이 들여다보는 묵상의 시간과 마음에서의 말간 씻김의 기도 시간을 갖게 한다.

영혼의 깊음에 다다르면 가끔 아주 가끔은 영혼의 허기를 느낀다. 무엇인가 채워진 듯싶은데 아직은 차지 않은 허전한 느낌들. 그 허전함에 외로워하고 있을 무렵 나는 그녀와 그를 만났다. 참으로 놀라운 것은 그녀와 그와 내가 서로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나중에야 알았다. 우리 셋은 '띠동갑 내기'로 열정적이고 현실 밖의 이상을 꿈꾸는 '용(龍) 세 마리'라는 것을.

시인 신영은 월간[문학21]로 등단, 한국[전통문화/전통춤]알림이 역할 등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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