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영의 세상 스케치 - 307회
보스톤코리아  2011-07-25, 13:41:51 
요즘 산의 매력에 빠져 칠월의 무더위를 산 생각으로 식히고 있다. 엊그제(07/09/2011) 보스턴산악회의 산행은 뉴-햄셔 주의 와잇 마운틴 중에서 여섯 번째로 높은 Mt. lafayette(5260ft)를 다녀왔다. 산행을 위해 A, B, C로 조를 나누게 되었다. 이제 막 산을 찾기 시작한 나로서는 C조의 일행에 끼어야 마땅한 일이겠으나 이왕 높은 산을 오르자면 '정상'에 발을 딛고 내려오고 싶었다. 그래서 B조 팀들과 함께 산행을 하게 되었다. B조 팀에는 젊은 친구들이 여럿 있어 좋았다.젊음은 이처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기분 좋은 일이다. 가끔 그들 틈에 끼어 있으면 내 나이를 잊곤 한다.

이번 산행에서는 지난번 산행에서 스쳐지나며 눈인사만 나눴던 산우님과 함께 산행을 하게 되었다. 산악회 모임에서는 이름 대신 '닉네임'을 사용하고 있었다. 산우님에게 '닉'이 뭐냐고 물으니 아직 이름을 정하지 못하셨단다. 산행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분이기에 나 역시 더욱 친근감이 들었는지 모를 일이다. 비슷한 시기에 초보 산행을 시작한 산행 동기처럼 느껴진 이유일 게다.

"그럼, 'OO'는 어떻겠냐?" 하고 물으니...
"그것참 마음에 드신다고..." 그렇게 인연이 되어 즐겁고 행복한 하루를 보냈다. 첫 산행에서의 첫 경험을 함께 나눴던 'OO'님은 한국 여행 중이라 함께하지 못했다.

모두는 조를 나눠서 출발하기 시작했다. 우리 B조는 조장을 정하고 서로 팀들의 걸음을 눈여겨보며 산을 오르게 되었다. 한두 시간 정도 올라왔을까. C조 그룹은 산 중턱의 산장에서 잠시 머물러 앉았다. 우리 B조는 아직 남은 산길을 따라 열심히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산을 오를수록 바람이 거세지고 산을 뒤덮은 안개구름은 가시질 않고 머물러 있다. 먼저 A조로 올랐던 어른 한 분이 오늘은 따님과 함께 산행에 참석하셨는데 딸의 옷차림으로는 도저히 어렵겠다는 생각을 하셨나 보다. 우리가 오르는 동안 어른은 산길을 내려오시면서 산에서 내려가는 것이 좋겠다는 조언을 해주신다.

그 얘기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오르던 B조 그룹의 몇 사람은 정상을 향해 힘든 발걸음을 옮겼다. 바람은 세차게 불고 산에 오르는 중에 비도 오락가락하더니 그만 사라져 버렸다. 기온마저도 떨어지기 시작하는지 손가락이 시렵기 시작했다. 준비한 자켓을 꺼내 입고 앞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몸은 힘들었지만, 산을 올랐으니 정상에 올라가 보고 싶은 마음에 비바람 따위는 무시하기로 했다. 구름에 뒤덮인 Mt. lafayette은 말이 없고 앞은 더욱 보이지 않았다. 뒤를 챙기며 앞서 가는 산우님들의 발자국을 따라 좇으며 그만 주저앉고 싶었던 기억, 그것은 생각이 아닌 사실이었다.

그렇게 힘들게 Mt. lafayette의 정상에 올랐다. 오르던 산을 내려가시며 한 어른이 말씀해주셨던 것처럼 구름에 덮인 산은 더 이상 그 무엇을 보여주지 않았다. 하지만 운무에 덮인 '라파엣' 산은 장관이었다. 우리는 모여 앉아 점심을 먹으며 얘기를 나눴다. 식사를 마친 후 B조 그룹의 기념 사진촬영이 있었다. 그렇게 사진을 찍고 일어서려는데 찰나의 순간이 이런 때를 말하리라. 기대조차 하지 못했는데 무슨 영문인지 바람이 구름을 밀고 달아난다. 뿌옇던 안개가 가시기 시작하더니 온 산천이 한눈에 들어온다. 우리는 하도 신기하고 놀라워 환한 웃음으로 화답했다.

정상을 오른 기분은 무어라 형언할 수 없는 기쁨이다. 요즘 산을 찾으며 그동안 느끼지 못했던 감사가 차오르기 시작했다. 자연과 사람이 하나가 되어 서로를 숨 쉬고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산을 오르며 만나는 이름 모를 작은 들꽃들과 들풀들을 보면서 세상은 혼자이지 않음을 깨닫게 된다. 온 우주 만물이 이렇게 서로를 나누며 더불어 함께 호흡하고 있음을 고백하는 감사의 시간이다. 언제나처럼 자연을 만나면 마음이 풍요로워진다. 세상에 살면서 보채고 안달하며 조급했던 마음이 어느샌가 느긋해지고 여유로운 마음과 넉넉한 마음을 마련해주는 것이다.

산의 높이가 오천 피트가 넘는 '라파엣'에 함께 올랐던 산우님과 두런두런 얘기를 나누며 내려오는 길은 더욱 행복했다. 아직은 서투른 산행이지만, 가파른 산을 오르고 버거운 내리막길을 만나며 인생을 잠시 생각했다. 산을 오르며 힘에 부치고 버거울 때 그냥 내려오고 싶은 마음은 인생의 여정 중 어려운 고비를 만났을 때 주저앉고 싶은 마음과 어찌 그리도 닮았는지 모른다. 하지만 산의 정상을 올랐을 때의 기쁨과 행복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충만함이다. 그리고 내려오는 길에 한 발 한 발 내딛으며 만났던 내리막길이 더욱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느끼며 삶을 또 배운다.

시인 신영은 월간[문학21]로 등단, 한국[전통문화/전통춤]알림이 역할 등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skybosto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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