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영의 세상 스케치 - 310회
보스톤코리아  2011-08-15, 12:45:02 
세월이 참 많이도 흘렀다는 생각을 문득 훌쩍 커버린 아이들을 보면서 느끼게 된다. 이분을 처음 만난 때를 생각하니 벌써 17~18년이 되었다. 우리 집 세 아이가 두세 살 올망졸망 어릴 적 얘기인데 모두 대학생이 되었으니 세월이 많이도 흘렀다. 하지만 여전히 사랑 많고 정 많은 맑고 고운 그분의 모습은 세월을 비켜간 듯한 모습이다. 곁에 이처럼 좋은 분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복된 삶이라는 깨달음을 요즘 더욱 느끼며 산다. 처음 교회에서 뵙고 성경공부 그룹에서 많은 나눔을 한 분이다. 자신이 맡은 일이나 사람에 대해 깔끔하고 열심과 정성으로 대하는 사랑의 사람이다.

그 시절, 친정 가족들과 떨어져 타국에서 시댁 가족들과 결혼 생활을 하며 세 아이를 키우는 일은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내게는 참으로 버거운 시절이었다. 차라리 육체적인 어려움은 극복할 수 있겠으나 정신적인 어려움은 견디기 어려운 시간이었다. 이 시기에 신앙 안에서의 나눔은 내게 큰 힘이 되었고 버팀목이 되었다. 다른 많은 분은 모두 삶의 중반기를 준비하는 분들이었기에 내게 삶의 가치와 방향을 일깨워 주었다. 삶에서 느낀 자신들의 여러 가지 경험들을 들려주고 나눠주며 일상생활과 신앙생활을 통해 새로운 삶으로의 여정을 안내해 주었다. 그 시간은 내게 귀한 시간이었다.

세상 나이 오십에서 육십을 향해 걸을 때쯤에는 많은 생각이 오간다는 얘기를 엊그제는 그분이 나눠주신다. 신앙 안에서 제대로 잘살고 있는지 아니면 가족이나 다른 사람에게 불편함은 주지 않았는지 깊은 생각에 머물 때가 있다는 얘기를. 그래, 그렇다. 세상의 나이 지천명에서 이순의 고개를 오를 때쯤이면 걸어오던 자신의 발자국을 잠시 돌아다 보고 싶어지지 않을까 싶어진다. 자신이 걸어온 그 길에서 만나 나눴던 다른 사람의 느낌이나 얘기가 궁금해지는 때일지도 모를 일이다. 요즘 가끔 이분을 만나며 더욱 짙은 사람의 냄새를 더욱 진한 사랑의 향기를 맡는다.

다른 사람이 아닌 나 자신을 보더라도 그 어떤 일에든 시작은 쉬우나 꾸준히 오래도록 그 일을 하기란 여간 어렵지 않다. 그 이유가 핑계이든 아니든 타당하든 그렇지 않든 간에 말이다. 삶에서 한결같은 사람이라면 믿을만하지 않겠는가. 바로 그 한결같은 사람이 바로 이분이다. 누군가에게 선물을 줄 때 눈에 뜨이는 물건이라든가 가격이 비싼 물건이 아니라 마음에서 정성을 다해 전하는 모습은 참으로 아름답다. 그것이 일회적인 것이 아니고 몇 년을 걸쳐 꾸준하게 그리고 한마음의 한결같은 모습은 더욱 귀하다. 그 누구의 칭찬이나 나타냄이 아닌 진정한 사랑의 실천이다.

삶에서 몸과 마음이 지치고 곤고한 영혼들을 위해 매일 진심으로 기도하는 가족과 같은 사람이다. 한 사람을 위해 또 한 가정을 위해 마음으로 기도하며 정성으로 손수 '파운드케이크'를 만들고 구워 선물하는 것이다. 파운드케이크와 함께 예쁜 카드에 정성스럽게 마음을 적어 함께 선물하면 받는 사람의 마음은 감동이 출렁거린다. 서로의 따뜻한 사랑이 마음으로 통했기 때문이다. 아마도 이 동네에서 이분의 '파운드케이크' 선물을 안 받아본 이가 없을 정도로 그분의 정성과 사랑은 흘러넘치고 있다. 그 무엇을 위해서가 아니라 받은 그 사랑이 고마워 그저 사랑을 나눈다는 것이다.

"물이 깊으면 소리가 나지 않는다"라는 옛말이 있지 않던가. 아마도 지금 그분의 모습이지 않을까 싶다. 지금은 장남이 결혼해 가정을 이루고 손녀딸까지 있으니 더욱 삶의 깊이를 아시는 분이다. 가끔 삶에서 어둡고 차가운 터널을 지나는 분들에게 등불과 같은 상담자 역할을 하기도 한다. 누구에게나 편안한 사람으로 그 사람의 마음과 마주하며 나누는 삶은 참으로 평화롭기 그지없다. 그분에게서 나오는 에너지는 어디에서부터의 시작일까. 늘 겸손하고 여유 있는 모습과 향기는 도대체 어디에서부터 온 것일까. 늘 자신의 부족을 감추지 않고 눈물을 훔치는 이의 그 향기는.

20여 년이 다되도록 한결같은 마음과 변함없는 사랑의 손길은 다른 사람에게 삶의 귀감이 된다. 우리의 삶의 여정에서 한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과 나누고 싶은 마음은 이처럼 저절로 차올라 넘쳐흐른다. 물을 퍼내고 또 퍼내도 차오르는 말간 샘물처럼 사랑을 경험한 사람에게서만 흘러넘치는 깊은 사랑이다. 자신에게 차오르는 사랑을 다른 사람에게 주지 않으면 못 견딜 가슴으로 사는 넉넉한 사랑의 사람들. 곁에 이처럼 귀한 분이 있음이 내게도 복된 삶이라고 감사하는 아침이다. 오늘도 '파운드케이크'에 포도알처럼 달콤하고 호두알처럼 고소한 사랑을 굽고 있을 그분을 생각하며.

시인 신영은 월간[문학21]로 등단, 한국[전통문화/전통춤]알림이 역할 등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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