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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카 백제 문화를 찾아서 : 12. 금강조 (金剛組) 1400년의 약속
보스톤코리아  2011-09-05, 13:07:56   
작년 10월 말에 교토에 있는 민박집을 찾아 갔었다. 주인이 출타중이라 사무실 옆에 방을 두드렸더니 50대 남자가 자다가 깨서 나온다. 미안하지만 민박객이라고 했더니 자기 역시 민박중이라면서 마실 것도 대접하고 고맙게 대해 주었다.

무슨 일로 왔냐고 묻길래 곤지왕 사당이 있는 아스카베 신사와 나라의 아스카 절 등 아스카 백제 문화 유적을 보고 사천왕사를 건축한 백제 사람들이 만든 세계에서 제일 오래된 금강조 회사를 찾아보고 싶다고 했더니 금방 전화로 오오사카 시립대학 양형은 역사학 교수를 소개해 주면서 양 교수가 아스카베 신사에 미쳐버린 사람이라며 11월 1일에 내가 오오사카에 가면 잘 안내해 주라는 부탁까지 해주는 것이었다.

그는 금강조 사장님 만나는 것은 어려울 거라고 하면서 실은 요시다카 콩고(金剛利隆) 사장을 처음 인터뷰한 사람이 자기였는데 매년 연하장을 보내고 이메일(e-mail)을 보낸 끝에 인터뷰 승락을 받았다고 한다. 15일 동안 함께 지내면서 인터뷰를 했다고 한다. 그의 이름은 홍하상(洪夏祥) 씨로 다큐멘터리 방송작가였다. 그가 인터뷰한 내용이 1999년 11월 14일에 KBS TV의 KBS Special “금강조 1400년의 약속”이란 제목으로 방영되어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그래서 금강조의 이름이 알려졌고 수년 전에는 Time지 표지에 세계에서 제일 오래된 기업으로 사천왕사를 건축한 금강조(金剛租 )회사가 소개 되었다.

홍하상 작가는 <금강조> 방영으로 방송 위원회 우수 기획상, MBC 다큐멘터리 부문 방송대상 작가상을 수상했고, 2000년 한국일보 백상 출판 문화상을 수상했다. 그는 한일 고대사의 대가로 작고하신 재일교포 김달수 선생과 외국어 대학 홍윤기 교수를 모시고 일본 각지의 한국문화 흔적을 찾아 다녔고 지금도 여행을 계속하고 있다.

한일 고대사에 관한 한 그는 백과사전이었다. 그가 펴낸 저서로는 <1400년 기업 금강조>, <오사카 상인들>, <열두겹 기모노의 속사정>, <일본 뒷골목 엿보기>, <일본 불교 1400년>, <연오랑과 세오녀>, <안토니오 코레아> 등 좋은 자료를 제공해 주는 많은 책들이 있다.

그에게 부탁하기를 만약에 금강조 사장님과의 인터뷰가 성사되지 않으면 Boston Korea 독자들을 위하여 홍 작가의 글을 전재해도 되겠느냐고 했더니 흔쾌히 승낙을 하였다. 그 다음날 내가 교토 관광을 늦게까지 하다 밤 9 시에 숙소에 왔더니 홍하상 씨가 늦은 밤중까지 저녁을 같이 먹자고 기다리고 있었다. 그날 저녁에 나는 홍하상이라는 꽤 잘나가는 동생을 두게 되었다. 그는 일년에 1/3은 대기업에 초청 받아 한일고대사에 관한 여러 가지를 강연하고 있다.

나와 금강조 사장님과의 인터뷰는 1차 시험에는 통과 됐는데 2차에서 취소가 되었다. 홍하상 작가의 금강조에 관한 글을 소개한다.

금강조(金剛組)는 절이나 신사, 탑 등을 건축하는 회사로 지금부터 1425년 전인 서기 586년에 오오사카에서 창업하였다. 창업자는 사천왕사를 짓기 위해 백제에서 온 유중광(柳重光) 씨로 본이 전주인 문화 유씨였다. 금강이란 성을 요메이(用明) 천황으로부터 하사받아 금강중광(金剛重光)으로 불리었다.

서기 593년에 일본 최초의 가람, 사천왕사가 세워진 다음, 성덕태자의 명으로 금강중광과 그의 자손들은 39대 요시다카 콩고(金剛利隆)현 사장에 이르기까지 1400년이 넘게 사천왕사 옆에 살면서 사천왕사를 돌보고 있다. 2차 대전 때 사천왕사가 대부분 파괴 되었지만 금당, 5층 탑 성령원 등 중요한 건물들을 금강조에서 다시 복원하였다.

금강조 회사의 최고 장인들인 미야 다이코(宮大工)중 가토(加藤), 도이(土居), 가우치(木內), 하타야마(火田山), 이와사키(岩岐), 마쓰모도 들은 그선조들이 1400년 전에 금강씨처럼 백제에서 건너온 기술자들이라고 한다.

1400년의 역사를 지닌 회사도 장하지만 1400년을 대를 이어 가면서 똑같은 일을 함께 해온 이들 역시 대단한 사람들이다.
매년 1월 2일에 금강조 사장과 직원들은 성덕태자 상을 모시고 차례를 지내는 것으로 새해를 시작한다. 시무식은 사천왕사 금당에서 시행하는데 이 행사를 전나시키(手始儀式)라 한다. 한국말로 하면 “첫 손도끼 의례”가 된다.

금강 사장이 예전 백제의 관복과 관모를 쓰고 나타난다. 이 행사에는 사천왕사 대표로 스님 세 사람도 참석한다. 의식은 고려척(1척이35cm)으로 길이를 재고 먹통과 먹줄로 가늠을 하면서 끌로 나무 껍질을 벗기는 등 공사장에서 하는 일을 흉내낸 다음 부처님에게 시주한 술을 참석자들이 모두 나눠 마시는 것으로 의식을 끝낸다.

맨 마지막에 축문을 읽는데 그 내용이 “먼 옛날 팔이(八耳) 왕자께서 우리를 바다 건너 백제국으로부터 부르시어 우리에게 일을 주시고 봉록을 주시어 세세천 년 사천왕사를 지키고 가업을 잇게 하여 주셨으니 매년 정월 열 하루 날을 기해 그 은혜를 갚고자 하나이다.”

팔이(八耳) 왕자는 성덕 태자를 말한다. 귀가 여덟개 라는 말이 아니고 성덕 태자가 남의 말을 잘 들어 준다는 얘기다. 금강조와 사천왕사 5중탑에 얽힌 가슴 아픈 일화가 있다. 제 37대 금강치일은 39대 금강이융 현사장의 장인이다. 금강치일 사장은 할복자살했다. 회사가 망했기 때문이다.

그 때는 중일 전쟁중이었기 때문에 절 짓는 일이 일절 없었다. 그래서 회사가 망할 지경이 되었다. 금강치일은 소복을 입고 아내와 두 딸을 데리고 사천왕사 안에 있는 조상묘 앞에 가서 술을 따르고 이렇게 말 했다고 한다. “지금까지 36대 1300년간 조상님들이 회사를 잘 이끌어 오셨으나 제 때에 와서 망했습니다. 가업을 지키지 못했으므로 조상님 앞에 죽음으로써 참회 하겠습니다.” 라고 말한 후에 부인과 두 딸이 지켜보는 가운데 할복자살 해버렸다.

만일 한국 같았으면 아버지가 할복한다면 그대로 보고만 있을 것인가. 틀림 없이 달려들어 칼을 빼앗고 울부짖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일본인과 한국인은 다르다. 자신의 잘못을 참회 하려고 죽음을 결행할 경우 아무도 말리지 못하는 것이 일본인의 성정이다.

초상을 치른 후 금강치일의 부인 금강요시에는 소복을 입고 사천왕사를 찾았다. 그녀는 사천왕사 주지에게 지난 1300년간 금강조가 사천왕사를 위해 일해 왔으니 일감을 달라고 애원했다. 애원의 결과로 얻은 일감이 태풍으로 부서진 오중탑을 다시 복원하는 일이었다. 요시에 부인은 소복을 입은 채 11년간 공사를 진두지휘하였다.

오중탑은 1945년 3월 13일 밤에 완공 되었다. 공사장에서 일하는 요시에 여사의 사진이 오사카의 일간 신문에 ”장한 어머니”라는 제목으로 게재 되었다. 신문을 읽은 히로히토 천황이 오사카까지 내려와 요시에 여사를 격려했다고 한다.

사천왕사 오중탑은 금강치일이 목숨을 내놓고 얻어낸 귀중한 문화 유산인 것이다. 금강 이융 사장은 자신의 뿌리에 대해 “나의 조상이 백제에서 왔으니 나는 백제인이고 또한 한국인이다.” 라고 한다. 1995년 고오베 대지진 때 다른 회사가 지은 절은 다 넘어졌지만 금강조가 지은 절은 쓰러지지 않았다고 한다. 1400년 동안이나 기업을 이끌어온 비결을 묻자 그는 기본에 충실하고 보이지 않는 곳에 더 신경을 쓰고 사장은 현장이 어디든 반드시 가서 확인 하는 것이라고 답변하였다.

회사 건물 4층에 사장의 살림집이 있는 이유도 사장은 현장에 살아야 한다는 원칙을 지키기 위해서다. 현재 매상 감소와 자금 유통의 악화로 한 때 경영 위기에 휘말렸으나 경영 지원을 위해 다카마쓰(高松)건설이 설립한 같은 이름의 인수회사 (신콘고구미) 에 사찰과 신사 건설사업 부문을 양도하여 다카마쓰 건설 산하로 들어가 있다.

백제 의상을 입고 치르는 손도끼 의례
백제 의상을 입고 치르는 손도끼 의례
 
1척이 35 센티미터인 고려 척(尺)
1척이 35 센티미터인 고려 척(尺)
 
금강조 사원들이 손도끼 의례를 치른 후 갖는 회식. 이들 중 가토, 도이, 가우치, 하타야마, 이와사키, 마쓰모도는 대목수들로서, 그 조상이 1,400년 전에 금강중광과 함께 백제에서 건너온 기술자들이다.
금강조 사원들이 손도끼 의례를 치른 후 갖는 회식. 이들 중 가토, 도이, 가우치, 하타야마, 이와사키, 마쓰모도는 대목수들로서, 그 조상이 1,400년 전에 금강중광과 함께 백제에서 건너온 기술자들이다.
 
금강치일 사장이 할복자살한 사천왕사 묘지
금강치일 사장이 할복자살한 사천왕사 묘지
 
금강조 회사 건물
금강조 회사 건물
 


김은한
보스톤코리아 컬럼니스트
역사문제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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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은한 칼럼니스트    기사 더보기
의견목록    [의견수 : 1]
 반포 2012.11.10, 21:17:13  
저는 전주류씨 류기송입니다. 백제 때의 류(柳)씨에 대한 기록에 감사드립니다. 그런데 "백제에서 온 유중광(柳重光) 씨로 본이 전주인 문화 유씨였다."는 글이 있는데 문화류씨는 고려초에 창성된 성씨입니다. 따라서 백제 때 문화류씨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전주류씨는 신라 때도 각간을 하신 류기휴라는 분이 고려 때 류방헌묘지명에 나옵니다. 고로 유증광은 본관을 전주라고 해야 맞는 것이 아닌지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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