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일전쟁과 갑오경장 6
보스톤코리아  2011-09-12, 12:40:20 
▶▶지난 32호에 이어서



오도리 공사는 말하기를 “동양의 분화구인 조선이 지금 최대의 난국을 당하고 있음에도 이를 구하여 나라를 바로 세울 인물이 없다.”고 하면서 임오군란(1882년)이후 정계에서 물러나 공덕리의 별장에 칩거하고 있는 국왕의 아버지 흥선대원군을 불러들여 정권을 위임케 하였다.

향년 75세의 흥선대원군은 국왕의 부르심을 받고 같은 날인 7월 23일 경복궁으로 들어가 국왕 전하로부터 내정전반에 대한 주요 사항을 결제하라는 분부를 받는다. 그런데 국왕 전하가 아버지 대원군에게 정권을 내어준 것은 국왕 자신의 뜻이 아니라 일본 공사 오도리씨의 강압에 못 이겨 국정을 위임하기로 한 것이다.

당시의 일본 신문들은 그 사실을 다음과 같이 보도했다. 일본군 일대가 왕궁에 침입하여 조선군을 무장해제 시킨다음 민씨를 축출하고 대원군을 옹립하고 입권 쿠데타를 감행하여 내정 개혁의 약속을 받아냈다. 일본인들의 말대로 내정 개혁의 약속과 정권 위임은 외세에 의한 정치적 쿠데타였다.

그런데 그것이 국왕과 국왕의 아버지 대원군 사이에서 일어난 사건이라 그 누구도 이에 간섭하거나 대항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간교한 일본은 생각하기를 청나라에 의지하여 내정의 개혁을 반대하여 온 왕비 민씨와 그를 둘러싼 사대 보수당의 잔재를 제거하여면 왕비의 적수인 흥선 대원군을 앞세우는 것이 가장 유리한 방법이라고 믿었을것이 분명하다. 그렇지 않아도 철저하게 ‘쇄국양이’를 고집해 온 대원군의 정치력을 오히려 높이 평가하면서 그 분이 그린 나초의 묵화를 최고의 작품으로 호평하던 일본인의 심리가 그것을 잘 입증해주고 있다.

국왕 전하는 “지금의 실정은 전적으로 과인의 실덕의 소치”라고 하시면서 대원군의 진언을 가납하여 정권을 위임한다고 선언하셨다. 그리고 7월 24일 신정(新政)조서, 대원군 정권 위임조서 그리고 민족(閔族) 처형조서 등 3개조의 조서를 내리셨다.
아시다시피 조서의 중점은 대원군의 집권 선언과 정치 세력인 민씨 사대당에 대한 단죄가 그 주요 사항이었다.

정권을 다시 장악하게 된 흥선 대원군은 정적인 민비를 먼저 제거하고 민씨 일족을 대표하는 민영준과 수구 사대당의 영수인 심순택을 추방한 다음 정승판서 등 고관 23명의 관직을 박탈하고 추방했다.
사실 갑오개혁은 여기서부터 잘못되었던 것이다. 내정 개혁을 하려면 먼저 권력의 중심인 민비를 대우하여 독립의 중요성과 내정 개혁의 시급함을 잘 이해시킨 다음 왕비의 협력을 얻도록 했어야 할 것인데 오도리 일본 공사는 무모하게도 왕비의 절천지 원수인 대원군을 끌어들여 정권을 탈취케하여 반대 세력을 숙청하는 ‘반혁명적인 정치극’을 벌이게 했다.

조선이 내정개혁을 주도하겠다고 나선 주한 일본공사 오도리 게이스게(1833-1911)라는 자는 과연 어떤 인물이었는가? 그는 일찍이 화란인에게 의술을 배웠으며, 서양의 군사학을 공부하여 도구가와 막부 말기에 신병 훈련 대장을 지냈다. 일본의 왕정 복구(1867)시 도바, 후시미 전(鳥羽, 伏見戰)에서 관군과 싸우다가 패배하자 귀순하여 명치 정부에 들어가 공부대서기관(工部大書記官), 공부대학장, 학술원장 등을 역임했고 주청특명전권공사로 청나라에 가있다가 1893년 7월에 주한 일본 공사로 서울에 부임했다. 영국의 저명한 작가이며 여행가로 알려진 비숍 버드(Mrs. Bishop Bird)여사는 오도리 공사를 만나 본 소견을 다음과 같이 전해주고 있다.
“오도리씨는 중간 키의 일본 사람으로 양복을 입은 그 체격은 반듯했으며, 그의 여덟팔자 콧수염은 그의 자랑인 것 같이 보였고 그의 영어 실력이 제법이었다.”고 했다.

백린
(보스톤코리아 컬럼니스트
역사문제 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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