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영의 세상 스케치 - 320회
보스톤코리아  2011-10-24, 12:57:09 
엊그제(10/15/2011)는 보스턴산악회에서 Mt. Canon을 다녀왔다. 이번 산행은 여느 산행 때보다 더욱 마음이 즐거우면서도 쓸쓸함이 오버랩되었다. 산행을 처음 시작한 지 6개월을 맞이하는 동안 늘 곁에서 아버지처럼 산행의 도를 가르쳐주신 어른이 딸네 집에 다니러 오셨다가 한국으로 돌아가신다. 말씀으로는 내년이나 내 후년에 오신다는 약속을 주셨지만, 오늘 이렇게 만나 작별을 해야 하는 마음이 섭섭하기 그지없었다. 가깝게 지내던 산우님들과 함께 우리는 아쉬운 마음을 서로 나누며 오늘의 귀한 산행을 추억으로 남기기로 했다. 언제나 아버지처럼 따뜻하시고 편안한 자리에 계셨던 분이시기에.

어설픈 산행길에서 몸보다 마음이 앞서길 얼마. 혹여 다른 산우님들에게 민폐가 될까 싶어 산을 오르며 내심 조바심을 내며 걸으면 누구보다도 이 어른께서 뒤에서 오시다가 눈치를 채시고 일러주신다. 산을 오르는 처음이 무척 중요한 준비라고 말이다. 마음의 여유를 가지라는 말씀이다. 산은 절대 욕심을 내어서는 안 되는 곳이란다. 어른께서는 산을 오르는 첫발자국부터 절대 기운 빼지 말라는 당부의 말씀을 누차 일러주신다. 누구를 의식하지 말고 자신의 페이스대로 걸으면 저절로 산을 오를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오르며 70%의 기운만 쓰고 내려올 때를 위해 30%는 남겨두라는 당부의 말씀이시다.

어른은 한국에서 30여 년을 산을 오르셨단다. 지금은 칠십의 고희(古稀)를 훌쩍 넘기신 연세에도 뒤에서 보면 어찌나 청년처럼 씩씩해 보이시는 모른다. 지금도 한국에서는 매주 3회 이상을 산에 오르신다는 말씀에 곁에 있던 산우들이 깜짝 놀랐다. 미국에 따님이 살고 있어 다니러 오실 때마다 산행을 하게 되었다시며 한 달에 두 번 있는 산행을 손꼽아 기다리신다고 말이다. 가끔 따님 곁에라도 오고 싶으신 것이 마나님을 3년 전에 지병으로 먼저 보내셨단다. 그래서 그 마음을 조금이나마 달래고 싶어 딸네 집에 오시는 것이란다. 산을 오르내리며 이런저런 얘기들로 서로 정이 많이 들었다.

이번 산행 일정은 내게 무리한 시간이었다. 지난 단풍산행 날에도 교회에서 '야드 세일'이 있었는데 특별 이벤트 산행 일정으로 필요한 물건과 음식을 만들어 도네이션 하고 산행을 다녀왔다. 이번에도 교회 일이 겹치게 되어 산행을 포기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렇게 마음으로 결정하고 있었는데 친하게 지내는 산우님으로부터 전화 한 통화를 받았다. 오래도록 산행을 함께 해오신 어른이 떠나시니 이번 산행은 꼭 함께 하자는 얘기다. 사실 내 마음도 같은 마음이었기에 무슨 다른 방법이 없을까 곰곰이 생각하게 되었다. 그렇게 생각하던 끝에 이번 교회 일에 필요한 것을 집에서 만들어다 드리기로.

아직은 짧은 초보 산행 길에서 어른께서는 너무도 귀중한 선물을 가깝게 지내던 몇 산우님들에게 일러주고 떠나시는 것이다. 등산화를 신고 걸을 때 발을 어떻게 디뎌야하며 오를 때 어떻게 호흡하고 어떻게 쉬어야하는지 등에 대해 여러차례 일러주고 또 일러주셨다. 어른의 말씀처럼 산행에서의 조심성은 초보 산행자나 오랜 경험이 있는 산행자나 마찬가지란다. 그만큼 산을 오르내릴 때 주의를 하는 것은 지나치지 않다는 말씀이다. 자연이 우리에게 얼마나 많은 것을 나눠주고 있는지 자연과 우리가 함께 호흡하는 일이 얼마나 감사한지를 어른은 또 일러주신다. 산을 사랑하는 그 마음으로 말이다.

Mt. Canon의 산행 왕복 거리는 5.8마일이었으며 바위가 많고 가파른 오름길이었다. 또한, 요 며칠 비가 많이 내린 이유로 오르내리는 길이 여간 힘겹지 않았다.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큰일이기에 온몸과 마음을 모으고 한 발 한 발 내디딜 때마다 정신을 차리며 걸었다. 특히 산행에서 하산길이 더욱 어렵다는 것은 익히 들어서 알지만, 산행을 시작하며 더욱 절실하게 몸과 마음으로 느끼는 부분이다. 첫발을 내디디며 산을 오를 때의 마음처럼 산을 다 내려올 때까지의 마음은 늘 조심스럽고 겸허해지는 마음이다. 산행이란 기도처럼 온몸과 마음의 정성을 한곳에 모아야 하는 까닭이다.

이번 산행은 여느 때의 산행과는 사뭇 다른 느낌으로 산을 오르내렸다. 그것은 산을 오르내리는 것처럼 사람을 만나는 인연에 대해 잠시 생각하며 걸었기 때문이다. 산을 오르내리며 서로 마음에 맞는 인연도 이어진다. 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마음은 가을 하늘처럼 맑아서 좋다. 이렇다저렇다 이유를 달지 않아도 그 사람의 마음과 내 마음이 서로 통하는 느낌이 좋다. 산행을 시작하며 반년이라는 길지 않은 시간 동안 이 어른을 만난 인연에 감사하는 마음이다. 짧은 만남이었지만 긴 여운으로 오래도록 남아 있을 어른을 생각하며 한국에 돌아가셔서도 늘 강녕하시길 간절히 기도하면서.

시인 신영은 월간[문학21]로 등단, 한국[전통문화/전통춤]알림이 역할 등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skybosto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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