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스카 백제 문화를 찾아서 : 16. 아스카의 꽃 법륭사(法隆寺) 4
보스톤코리아  2011-11-21, 14:32:32 
일제 36년 동안 일본 정부는 한국의 문화가 일본에 비해 열악하다는 것을 줄곧 강조하여 왔다. 하지만 법륭사에 있는 백제 관음상 하나만으로도 문화의 우열을 가늠하는 지렛대가 어느 쪽으로 기운다는 것을 한눈에 알 수 있다.

일본이 세계에 자랑하고 있는 대표적인 미술품이 교토 광륭사에 있는 국보 1호인 미륵보살 반가 사유상과 법륭사에 있는 백제 관음상, 또 구세 관음상이다. 반가사유상은 신라 왕실에서 일본에 보낸 것이고 두개의 관음상은 백제 위덕왕이 일본에 보냈다고 기록되어 있다.

백제 관음상은 7세기 초에 백제 27대 위덕왕이 일왕에게 보낸 불상이다. 기록에는 허공장 보살(虛空藏菩薩 )이라고 하는데 일본에서는 구다라 관음 이라고 부르고 있다. 구다라는 ‘큰나라’라는 말로, 일본에서는 백제를 지칭하는 말이다. ­­­

녹나무로 만들었는데, 이 녹나무는 좀약을 만드는 방충제의 원료가 되는 목재로 벌레가 먹거나 쉽사리 썩지 않는다. 1300년 전에 백제 사람들이 만든 녹나무 불상이 수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으며 법륭사에 살아 있는 것이다. 220cm 의 팔등신 몸매에 알 듯 모를 듯한 신비한 미소를 머금고 있다. 오른손을 가볍게 펼쳐 앞으로 내밀고, 왼손으로는 호리병을 살짝 쥐고 있다.

백제 관음상에 대해서는 수많은 찬사에 수많은 책이 출판 되었다. 그 중에 몇가지만 소개하면 일본사람들이 나라(奈良)에 오는 이유는 오직 이 불상을 보기 위해서라고 한다. 프랑스의 대문호 앙드레 말로는 “일본이 침몰해도 이것만은 남기고 싶다.” 라는 찬사를 보내고 있다.

오카베 이즈코 씨는 “불상으로 회상하다.” 라는 글에서 백제 구다라 관음에 대한 글을 남기고 있다. 삼한의 하나인 백제는 일본에 혁명적인 문화를 전달한 스승의 나라다. 불상은 원래부터 다른 미술, 공예, 학문, 기예 등에 미친 영향이 크다. 아직도 각지에 ‘쿠다라’라고 하는 지명이나 명칭이 남아 있는 것을 보아도 우수한 도래인이 많았을 터이다. 그 백제 사람들의 작품이라는 이 향기 높은 불상을 우러러보면 조각하는 사람의 마음에 오고 갔을 동경이 어디에 있었을까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미모는 아니지만 단아한 면모는 그야말로 동양적인 얼굴을 하고 있으나 하반신의 쭉 뻗은 깨끗하고 아름다운 선은 어느 나라의 것일까? 섬세한 선에 받쳐진 미묘한 손의 표정과 벗겨진 색채는 석양을 받아 빛이 넘치고 천의(天衣)와 옷 문양의 흐름은 자기만의 리듬을 갖고 있다. 무엇보다도 나는 무릎부터 밑으로 뜻밖의 긴다리에서 보이는 신비한 아름다움에 불상을 만든 이의 이 세상에 없는 존재에 대한 사모 (思慕)를 흠뻑 느낀다.”
필자의 무딘 감각으로는 감히 소개하기가 어려워 김달수 선생님의 저서에서 이즈코 씨의 평론을 발췌하였다. 그 우아함을 어찌 말로 할 수 있겠는가?

영국의 대영 박물관과 도쿄 국립 박물관은 백제 관음상의 모조품을 만들어 전시하고 있을 정도로 백제 관음에 대한 인기가 높다.
일제 강점기 (1910-1945) 때에 중국 미술을 전공하고 호류지 미술 고문으로 있던 세이치 미즈노 교수가 백제 관음을 조각한 녹나무(樟)가 한반도에서 자라지 않기 때문에 이 조각상이 일본에서 만들어 졌다고 주장하자 수많은 일본 학자들이 동조하고 나섰다. 역시 일본 사람들은 일본 사람일수밖에 없다.

917년에 후지와라 게네스케가 저술한 성덕 태자 전력(傳曆)에 구세관음상과 백제 관음상이 백제 왕실에서 왜 왕실로 보내준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또 한국에는 녹나무가 많이 자라고 있다. 명치 유신 때 견외 사절단과 함께 세계를 여행하고 미구 회람기를 집필한 도쿄 대학의 사학자 구메 구니다케 교수는 삼나무, 전나무, 녹나무, 피나무의 종자를 신라로부터 일본에 가져다 심었다고 반론하였다. 백제관음상의 재료인 녹나무의 원산지는 한반도였다는 말이다.

미술 사학자 마치다 코오이치 교수는 백제 관음상의 대좌(台座) 밑에 허공장 대륜이라는 먹글씨가 있어서 백제 관음상이 백제에서 온 것이라고 하였다. Jon corvell 교수는 “백제 관음상의 제작 기법이 백제식이다. 백제에서 오랜 세월에 걸쳐 터득한 기법인데 일본이 단시일에 이런 기술을 습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일본에서 이런 작품을 만들어 본 적도 없고 백제 기술자들이 더 이상 일본에 존재하지 않을 때 이런 장식품, 작품은 더 이상 만들지 못하지 않았는가.”라고 반론했다. 우리는 조상에 대한 경외심을 새롭게 해야 할 것이다.

김은한
보스톤코리아 컬럼니스트
역사문제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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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견목록    [의견수 : 1]
Inkyoung
2011.11.25, 06:29:15
재밌게 잘읽고있습니다!녹나무를 이제야 알았어요^^
감사합니다!^^
IP : 122.xxx.12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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