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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카 백제 문화를 찾아서 : 18. 신라 국사 황룡사, 한반도 도래인이 건축한 일본 국사 동대사
보스톤코리아  2011-12-05, 13:53:47   
황룡사
고려 때의 중 일연이 쓴 삼국유사에는 황룡사 9층 탑에 대한 찬사가 실려 있다. “귀신의 힘으로 한듯이 제경(帝京)을 누르니 휘황한 채색으로 처마가 움직이네. 여기에 올라 어찌 9한 (九韓)의 항복만을 보랴. 건곤(乾坤)이 특별하고 편안한 것 처음 깨달았네.”

9층탑은 64개의 기둥을 세우고 올린 목조탑으로 높이가 자그마치 80.16m 나 되었다고 한다. 현재 서울에 있는 30층 아파트와 맞먹는 고층탑으로 지금까지 있었던 전세계 목탑 중 제일 높은 탑이었다. 황룡사 9층탑을 세우게된 내력이 있다. 신라 27대 선덕여왕이 즉위하자, 여자가 임금이 된 것을 없신여긴 주위 여러나라들이 신라를 침입 하는 것이 많았다. 특히 당나라 태종은 여왕의 등극을 극력 반대하였다. 마침 당나라에서 불법을 공부하고 돌아온 자장 법사가 진언하기를 황룡사에 9층탑을 세워 신라의 위엄을 주위에 보이면 9한(九韓)의 침입을 막고 이들을 진압할 수 있다고 하였다.

선덕여왕이 그 말을 따라 백제의 공장 아비지(阿非知)를 청하여 인간 역사에 유례가 없는 대단한 목탑을 건축하였다. 9층탑은 각 층마다 물리쳐야 할 나라들이 정해져 있었다.
1층은 왜국, 2층은 중화(中華), 3층은 오월(吳越), 4층은 탐라, 5층은 응유(백제), 6층은 말갈, 7층은 거란, 8층은 여진, 9층은 예맥 이었다. 이로부터 황룡사는 삼국통일을 하겠다는 신라인들의 의지를 나타내는 호국사찰의 역할을 하게 되었다. 그 뜻이 받아들여져 신라는 23년 후에 3국을 통일하게 되었다. 이웃나라 백제 역시 사비성의 정림사와 익산의 미륵사를 호국 사찰로 건축했지만 신라에게는 미치지 못했다.

동대사
3국 통일 후 경덕왕 (751) 때 신라는 불국(佛國)을 향한 국민들의 염원을 그리는 또 다른 목적의 호국 사찰, 불국사를 짓고 있었다.당시의 일본도 신라의 황룡사, 불국사에 필적하는 호국사찰을 건축하고 싶은 욕망이 있었다. 이때 일본은 성무(聖武) 천황 치세로 일찍이 신라 의상대사의 제자 심상(審祥) 스님을 초대하여 화엄경 강설을 듣고는 이에 심취하여 화엄종 호국 사찰을 세운 것이 동대사였다. 동대사의 원래 이름은 대화엄사(大華嚴寺) 였다. 동대사라는 이름은 당시 나라에 있었던 황궁 헤이 죠우교의 동쪽에 있는 큰 절 국분사(國分寺)이라고 해서 부쳐진 이름으로 지금까지 대화엄사, 동대사 두개의 이름을 함께 쓰고 있다.

금당에 모신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은 화엄사상의 유행과 함께 나타난 불교 부처님 중의 하나로 화엄경에 의하면 석가가 법신불로 나타난 것이 비로자나불이라고 한다. 경주의 불국사 비로전에도 비로자나불이 모셔져 있는데 진리의 세계를 두루 통솔한다는 부처님이다. “비로”는 최고라는 뜻이다. 금강산의 정상이 비로봉이고 소백산도 정상이 비로봉인 것은 최고로 높은 봉우리라는 뜻이다.

말 그대로 동대사의 비로자나불은 엄청난 크기로 이름난 불상이다. 높이가 정확하게 16m 19cm, 얼굴길이만 5m, 손바닥 길이는 3m 10cm로 손바닥 위에만 사람 16명이 올라갈 수 있다고 한다. 동대사 요록에 기록되기를 이 불상 주조에 구리쇠 73만 9천 5백 60근, 연금 1만 436냥, 수은 5만 8천 620냥을 들였다고 한다.
서기 749년에 이 불상이 만들어지고 100여 년 후인 서기 855년에 지진과 화재로 불상의 머리가 떨어져 머리 부분을 제자리로 복원하였다.

불상의 대좌와 옷 주름은 조립 당시의 것이지만 나머지는 긴 세월을 지내면서 수리하고 보완된 것이다. 현재 세계에서 이 불상과 비슷한 크기의 불상은 중국 운강(雲岡)석굴, 용문석굴의 불상이 있다.
불상을 모신 대불전은 원래의 대불전이 불에 타버려 에도 시대에 화엄종 코어케이(公慶) 스님이 완성한 것으로 전체 높이가 47.5m로 16층 규모의 건물 높이에 해당되는 세계 최대의 목조 건물이다. 원래 대불전은 지금보다 1.5배가 되는 건물이었다고 한다.

물론 유네스코 지정 문화재로 되어있다. 그러면 그 누가 이렇게 엄청난 대작을 만들었을까? 동대사 어느 곳에도 고대 한국 사람들이 건물이나 비로자나불을 만들었다는 글귀는 일절 찾아 볼 수 없다.
동대사는 100% 한반도 사람들의 기술과 노력으로 만들어진 절이다. 동대사 건축의 총 책임자는 고구려 사람 고려 복신(福信) 이라고 동경제국 대학의 저명한 쿠메 쿠니다케 교수가 밝힌 바 있다. 비로자나불을 주조한 사람은 백제 도래인 국중마려(國中痲呂)였다.

그는 백제가 망할 때 일본으로 망명한 덕솔 국골부(國骨富)의 손자였다. 엄청난 크기의 대 불전을 건축한 책임자는 신라도래인 저명부 백세(猪名部百世)였다. 이렇게 큰 건축 공사를 벌이면 의례 따라오는 것이 돈, 물자, 인력 세 가지가 꼭 필요하기 마련이다.
위에 말한 세 가지가 모두 부족하게 되자 성무천황은 당시의 생불(生佛) 같은 행기(行基)스님에게 도움을 요청하게 되었다.

행기 스님의 노력으로 동대사 창건에 동원한 연인원이 260만 명 이었다고 한다. 당시에 일본의 총 인구는 500만명이었다. 재목을 시주한 사람이 5만1천590명, 금전을 시주한 사람이 37만 2천 75명, 기술인력이 51만 4천 162명 이었다고 한다. 행기 스님은 전 편에 소개한 대로 왕인박사의 후손인 백제계 도래인이다.
초대 동대사 주지를 맡은 양변 스님은 백제계 도래인으로 오카데라의 의연 스님 제자였다. 동대사 건축을 성무 천황이 발원한 것은 신라승 심상스님의 영향이 절대적이었다. 비로자나불을 만들어 놓고 금으로 도금을 하여야 하는데 금을 구할 수가 없었다. 백제왕 경복이 900냥의 금을 시주해서 끝내버렸다.

한반도 3국인들이 있었기 때문에 일본의 국사, 동대사 건립이 가능했던 것이다. 지금 나라시의 인구가 30만 명인데 일년에 동대사를 다녀가는 관광객이 1400만 명이나 된다. 그 중에 꽤 많은 한국 관광객들이 있는데 몇 명이나 동대사가 우리 선조들이 만든 작품이라는 것을 알고 있을까? 대불전 오른쪽에 있는 계단을 오르면 행기 스님을 모신 행기당(行基堂)과 동대사 초대 주지였고 일본 화엄종의 개조(開祖) 양변 스님을 모신 개산당(開山堂)이 있다.

경내에 있는 삼월당(三月堂)은 신라 고승 심상대덕이 3년동안 화엄경을 강설했던 곳이고 그 옆에 카라쿠니 (辛國) 신사가 있는데 예전에는 카라쿠니(韓國) 신사라고 불렸던 신사로 한국신을 제신으로 모시고 있는 신사다. 한자로 辛國과 韓國은 모두 카라쿠니로 똑같이 발음을 한다. 일본 사람들은 한국(韓國)이 들어간 이름을 신국(辛國)으로 고쳐 부르고 있다. 어찌 되었든 일본의 국사(國寺) 경내에 한국신을 모신 신사가 있다는 것이 무엇인가를 시사하고 있는 것이다.

김은한
보스톤코리아 컬럼니스트
역사문제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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