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영의 세상 스케치 - 328회
보스톤코리아  2011-12-20, 12:16:30 
여행은 언제나처럼 설렘과 두려움이 교차한다.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사람들과의 만남이 가슴을 콩닥거리게 하지만, 내심 걱정이 일렁거리는 것은 여행이 주는 알 수 없는 짜릿함이다. 그렇게 서로 만나 얘기를 나누다 보면 어느샌가 마음이 열리고 모르는 사이 따뜻한 가슴속 얘기들이 오가게 된다. 여행이라는 공통분모가 미리 있어서일까. 여행하는 동안에는 웬만하면 서로 이해하고 간섭하지 않는 것이 알게 모르게 정해진 법칙이지 않나 싶다. 서로의 얘기를 들려주는 만큼만 듣고 더 이상 알려 하지 않고 묻지 않으면 서로에게 좋은 친구가 된다. 며칠 지내다 보면 서로에게 더 들려주고 싶어지는 얘기가 가끔 있다.

삶에서 느끼는 일이지만 단순함이 복잡함보다 더 길게 가고 오래간다는 것을 깨닫게 된 이유이다. 때로는 일상생활에서 가깝다는 표현을 지나치게 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지천명을 지나 이순이 가까워지는 나이에 있는 이들도 가깝다는 표현을 위해 이름을 부르기도 하고 얘, 쟤 하며 부르기도 하는 모습은 과히 편안해 보이지 않는다. 두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는 어떤지 모르겠으나, 곁에서 바라보고 듣는 다른 이에게는 평범해 보이는 모습은 아니다. 가까운 사이일수록 서로 존중해줄 수 있는 마음이 오랜 친구로 남는 비결이지 않을까 싶다. 서로를 천천히 알아가고 조금씩 들려주는 사이 차차 정이 드는 친구로.

처음 만난 이가 너무 가까이 다가오면 멈칫 발걸음이 멈춰지고 무엇인지 불안해지는 때가 있다. 때로는 여행길에서도 마찬가지다. 처음 만난 사람과 하룻밤을 같은 방에서 묵어야 하는 일은 당연한 일이거니와 바쁜 여행 일정에 맞춰 하루 온종일을 함께 움직여야 하는 일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여행을 통해 배운 것이 있다면 서로를 존중해주되 서로의 공통분모가 되는 대화거리가 최고라는 생각이다. 이렇게 인연이 되어 각자 집으로 돌아간 후에도 마음에 맞는 이들은 계속 연락을 하게 되고 오랜 친구가 되기도 한다. 그 인연으로 다음 여행 때에 동행자가 된다면 더없는 기쁨이고 행복이 되는 것이다.

이번 여행은 미서부 캘리포니아의 로스 엔젤레스에서 샌프란시스코까지의 사진 여행(출사)을 다녀왔다. 참으로 감사했던 것은 이번 여행에서도 좋은 친구들을 여럿 만났다. 세상 나이와는 무관한 사진 얘기에는 세상의 나이나 성별이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서로의 꿈을 향한 이야기꽃이 활짝 피어 시간 가는 줄 몰랐다. Los Angeles에서 San Francisco까지 이어진 1번 국도(California State Route 1)는 끝없이 이어진 해안도로이다. 이른 아침 준비하고 바쁜 걸음으로 움직이는 시간은 먹을 때를 챙길 여가 없이 움직여야 한다. 먹는 시간을 줄이기 위해 끼니를 라면으로 때우며 며칠을 보냈다.

이렇듯 여럿이 움직이는 며칠 동안에 그 누구 하나 불평하는 사람이 없다. 그것은 누구의 일일 것도 없이 내 일이기 때문이다. 이어진 해안길을 따라 각자의 카메라에 사진을 담고 또 달리는 차 안에서의 색깔과 모양과 소리가 짙은 예술쟁이들의 무르익은 대화가 마냥 즐겁기만 하다. 몇 날 며칠을 달리며 피곤할 만도 한데 카메라 앞에 서면 모두가 눈이 말똥해지는 것이다. 이번 여행이 내게 준 또 하나의 특별한 선물이었다. 새로운 만남을 통해 서로 나누고 배우는 선후배 간의 정이 어찌 그리도 고맙던지 말이다. 마음의 눈으로 같은 색깔과 모양을 감지할 수 있음에 새록새록 감사함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20여 년이 넘게 살아온 Massachusetts는 내 고향과도 같은 곳이다. 대서양의 물결이 넘실거리고 와잇 마운틴의 말간 기운을 받으며 잘살고 있다. 하지만 이번 미서부 캘리포니아 여행을 통해서 조금은 색다른 느낌을 받았다. 그것은 드넓은 태평양의 물결이 넘실거리는 파도, 로스 엔젤레스와 샌프란시스코까지 이어진 California의 해안길이었다. 해안길을 따라가다 자동차를 세우고 내려다보면 아찔할 만큼 무서운 해안절벽에 부딪히는 파도. 그 넘실거리는 검푸른 파도에서 무어라 표현할 수 없는 에너지를 느꼈다. 멋지고 아름다운 장관이 가슴에 닿아 그 쉼없는 기운이 오래도록 남는다.

Los Angeles 시내를 출발하여 101번 도로와 1번 도로가 이어진 해안도로를 따라 Morro Bay를 지나 Monterey 그리고 San Francisco의 'Golden Gate Bridge'를 만나니 감회가 새로웠다. LA 방문은 한두 번 했었지만, 샌프란시스코의 '금문교'를 눈으로 보기는 처음이었으니 말이다. 여행 중에 Seaside, Monterey에는 아는 지인이 살고 계서서 하룻밤을 묵고 정성스런 대접을 받아 더욱 감사했다. 이번 사진 여행은 내 인생 중반기에 큰 기점을 마련했던 여행이었다. 삶의 여정에서 시간을 아끼고 돈을 아끼고 사람을 아끼고 사랑을 아끼며 사는 아름다운 삶의 철학을 여행에서 또 배우고 돌아왔다.

시인 신영은 월간[문학21]로 등단, 한국[전통문화/전통춤]알림이 역할 등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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