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영의 세상 스케치 - 330회
보스톤코리아  2012-01-11, 11:59:03 
어제도 날씨가 쌀쌀하더니 오늘 이른 아침 강아지 쉬를 위해 내보내는데 날씨가 맵도록 차다. 겨울은 이처럼 매운맛이 나야 겨울 느낌이 들기도 하다. 얼마 전에 소꼬리를 오랜만에 사게 되었다. 곰탕을 끓일까 아니면 찜을 해먹을까 생각을 하는데 겨울 방학으로 집에 온 큰 녀석이 방학 동안 다이어트를 할 계획이니 며칠만 기다렸다 하면 안 되겠느냐는 것이다. 오랜만에 집에 온 아이들을 위해 준비하는 것이니 그렇게 하자고 얘기를 해놓고 그만 깜빡 잊었었다. 어제는 갑자기 생각이 나서 냉동실에 얼려두었던 꼬리를 꺼내어 끓이기 시작했다. 한두 번은 끓이던 물을 내버려야 제 색깔이 우러나게 되는 것이 사골이 아니던가.

우리 집 세 아이가 좋아하는 방법으로 꼬리를 삶다가 고기가 먹기 좋게 물러질 만하면 몇을 꺼내 소금 후추로 간해서 먹고 나머지 것은 오래도록 푹 고아 곰탕으로 먹기로 했다. 겨울 방학이 3주 정도 되었는데 집에 온 아이들에게 특별히 맛난 음식을 해주지 못했다. 학교 기숙사로 돌아가기 전에 엄마가 어떤 음식을 해줄까 물으니 '엄마의 육개장'이 먹고 싶단다. 그래서 어제는 밖에서 볼일을 보고 난 후에 한국 마트에 들러 육개장거리를 주섬주섬 사서 집으로 돌아왔다. 음식도 집에서 자주 하면 쉬운데 잘 하지 않다가 갑자기 준비하려면 이것저것 여간 어렵지 않다. 음식의 맛을 내는 것도 그렇고 마음의 정성도 그렇고.

이렇듯 음식이나 사람이나 오래도록 곰삭아야 제대로인 맛을 볼 수 있다. 다만, 기다리는 시간이 지루해 기다리기 어려운 것뿐이다. 어제는 어릴 적 친구와 차를 한 잔 마시며 아이들 얘기와 사는 얘기를 나누었다. 30여 년을 만나도 싫증 나지 않는 친구다. 서로 바쁘게 사니 얼굴을 마주하기 어렵고 만나지 못해도 안달하거나 보채지 않는 사골국물 같은 친구다. 삶 가운데 이토록 오랜 친구가 곁에 있어 마음이 든든하다. 내 속내를 다 털어놓아도 흉이 되지 않고 마음을 토닥여주는 친구가 곁에 있어 고맙다. 서로 눈빛만 마주보아도 깊은 속을 꿰뚫어볼 줄 아는 친구가 있어 감사하다. 말하지 않아도 눈빛으로 알아차리는 귀한 친구가 있어 고맙다.

삶에서 이런저런 작은 일들을 겪으며 나 자신을 돌아보는 귀한 시간을 만난다. 살면서 복잡한 일에는 웬만하면 섞이고 싶지 않고 피해가고 싶은 마음에 미련없이 훌훌 털어버리기로 했다. 그것도 인생에서 큰 도움도 되지 않는 작은 일에서 볶닥거리는 수선스런 일들에서는 더욱이 그렇다. 그런 작은 일로 삶의 소중한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하는 것은 아깝다는 생각에 며칠 마음에서 고민하다 정리를 했다. 삶에서 때로는 생각지도 않았던 일에 황당한 일을 당할 때가 있다. 그 어떤 해명이나 이유를 말할 틈도 없이 구차한 변명 같아 입 다물고 싶어지는 일을 한두 번 겪게 된다. 어쩌면 그렇게 흘러가는 것이 인생이 아니겠는가.

어제 저녁부터 끓이는 꼬리곰탕 덕분으로 곰삭은 친구 몇을 떠올렸다. 언제나 무덤덤하게 말없이 서 있는 친구가 있다는 것이 이렇게 든든하고 힘이 되는 아침이다. 세상에는 이렇게 나와 너무도 다른 것이 늘 함께 공존한다는 것이 감사한 아침이다. 그래서 어쩌면 더욱 새롭고 신기한 세상 살만한 세상이지 않던가 말이다. 서로 다른 모습을 그냥 보아주기만 하면 되는 것을 뭐 그리 아까운 시간과 영양가 없는 에너지를 낭비할까. 나와 비슷한 색깔과 모양과 소리를 내는 친구들이 있어 그저 고마운 날이다. 오늘 아침에도 나 아닌 다른 것에서 배움의 하루를 맞이하길 소망하며 그저 묵묵히 무소의 뿔처럼 내 길을 걸어가는 것이다.

새해를 맞으며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한 해를 시작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지난해 묵은 먼지를 떨어내며 묵은 때를 새해 아침에는 씻어 내버렸다. 삶은 언제나처럼 나 자신의 중심을 잃지 말고 바로 걸어갈 수 있어야 한다. 그 어떤 일에 그 누구에 의해서 내 삶이 흔들릴 수는 없는 것이다. 다만, 그것들로부터 들을 수 있는 마음의 귀와 볼 수 있는 마음의 눈을 가지고 묵묵히 내 길을 가는 것이다. 늘 배우며 산다. 나와 다른 모든 것에서 매일 배우며 산다. 그래서 삶의 오늘이 또 기다려지는가 싶다. 우리 집 세 아이를 보면서도 배우고 곁의 가까운 친구들로부터 배우고 나이 어린 아이들의 대화를 통해 세상을 배우기도 한다.

삶의 가치를 어디에 두는가에 따라 인생은 많이 달라지는 것이다. 이처럼 음식을 만들 때나 담을 때도 어떤 그릇을 선택하는가에 따라 음식 맛의 차이는 크다. 더욱이 꼬리곰탕을 만들며 오래도록 끓어야 하는 사골은 그 그릇을 잘 골라야겠다는 생각이다. 삶에서도 오래도록 끓여 구수한 사골국물 같은 사람들이 곁에 있어 묵묵히 걸어갈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친구들이 곁에 있어 오늘도 감사한 아침을 맞는다. 인생의 긴 여정 중에 이런저런 사람들 속에서 시시때때마다 들썩거리지 않고 묵묵히 내 길을 걸어가길 소망한다. 오래도록 끓여도 들썩거리지 않는 견고한 그릇의 사람 푹 우러난 사골국물 같은 깊은 맛의 사람이 이제는 편안하고 좋다.

시인 신영은 월간[문학21]로 등단, 한국[전통문화/전통춤]알림이 역할 등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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