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스카 백제 문화를 찾아서 : 23. 기타노 텐만구(北野天滿宮 )
보스톤코리아  2012-01-11, 12:11:52 
기타노텐만구는 학문의 신(神)으로 크게 존경 받고 있는 신라계 도래인 스가와라노 미치자네(管原道眞845-903)를 모시는 신전이다. 그는 헤이안(平安) 시대 초기의 출중한 시인 이며 문장가, 철학자로 당대 최고의 학자였다. 그의 아버지 스가와라노 고레요시(812-880)역시 뛰어난 학자로 정부의 고관이었다. 어머니는 백제계 도래인 오토모(大伴) 가문의 딸이었다.

마치자네는 17세 때 과거에 급제했고 22세 때 벼슬 길에 들어섰다. 29세 때에는 문장 박사가 되고 조정의 고관으로 요직을 거치다가 40세 때 민부경(내무장관), 54세 때에 우대신(右大臣) 으로 파격적인 승진을 하였다. 그러나 호사다마라고 그의 출세를 못마땅해 하던 당시의 실권자 후지와라노 도키하라( 勝原時平, 871-909) 좌대신의 모함을 받게 된다.

내용인 즉슨 당시 우다왕이 제 1 왕자인 다이고 왕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자신은 상황(上皇 )이 되어 섭정을 하고 있었다. 도키하라는 미치자네가 그동안 은혜를 입어 왔던 우다 상황 을 폐위 시키려는 음모를 꾸미고 있다고 모함을 한 것이다. 모함이 먹혀 들어 미치자네는 규슈의 다자이후 정청 으로 좌천 되고 그의 가족들도 교토에서 추방 당하게 되었다. 실의에 빠진 미치자네는 2년 후인 903년에 다자이후에서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그의 나이 59세였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가 세상을 뜨자 그를 모함했던 사람들이 모두 이름 모를 이유로 죽어가는 것이었다. 그를 모함한 도키하라 좌대신은 38세의 젊은 나이에 요절하고, 도키하라의 사위이자 다이고 천황의 아들 타이시 태자도 급사해 버렸다. 연이어 교토에는 질병과 천재 지변이 끊이지 않게 되자, 사람들은 미치자네의 원혼이 앙갚음한 것이라고 수근거렸다.

그러던 어느 날, 아야코 라는 무녀가 기타노(北野 )에 그의 쉴곳을 마련해 준다면 재앙이 그칠 것 이라는 신탁을 받았다고 주장 하였다. 원령의 보복을 가장 많이 받았던 후지와라 가문이 남보다 앞장서서 기타노에 그를 모시는 신사를 짓고 공양하자 모든 이변이 거짓말 처럼 살아 졌다고 한다. 이 신사가 바로 기타노 텐만구 신사로 일본 텐만구 신사의 총본산 이다. 교토 기타노 텐만궁은 규슈 후쿠오카의 다자이후 텐만궁(太宰府天滿宮)과 야마구치현의 호후텐만궁(防府天滿宮)과 함께 3 대 천신 신사로 알려져 있다.

규슈의 다자이후 텐만궁은 그의 시신을 교토로 옮기려고 했지만 우마차를 몰던 소가 꿈쩍도 하지 않아서 할수 없이 그 자리에 시신을 장사 지내고 다자이후 텐만궁을 세웠다고 한다. 매년 7월 24일과 25일 양일에 오오사카에서 그의 원혼을 달래는 텐진( 天神) 마쓰리가 열리는데 지금은 학업 성취를 기원하고, 전염병을 예방하며 취업을 기원 하는 축제로 개념을 확장하고 있다. 축제일 에는 관서 지방의 주민들이 모두 쏟아져 나오는 대단한 축제로 도쿄의 간다 마쓰리(神田祭), 교토의 기온 마쓰리와 함께 일본 3대 축제가 되었다.

매년 1-2월의 입시철이 되면 각 지역의 텐만궁에는 수험생들과 학부모들이 모여들어 합격을 기원하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는데, 교육열하면 세계 제일이라는 한국의 학부모까지 등장하고 있다.

스가와라노 미치자네 가문의 내력이 일본서기 신대(神代), 제8단 1서(書)4에 기록되어 있다. 일본의 개국신 천조대신 의 남동생 스사노오 노미코노(천일창 왕자) 는 하늘 나라에서 신라의 소시머리(牛頭:우두)에 내려와 살다가 동해를 건너 일본의 이즈모(지금의 시마네현)로 옮겨 왔다고 적혀 있고 그의 후손들은 하지(土師) 씨로 불려 왔다고 기록 되어 있다.

또 일본 황실 족보인 신찬 성씨록 에는 고닌(光仁) 천황 때 미치자네의 증조부 하지 호루히토(土師古仁) 가 왕명에 의해 하지에서 스가와라노로 개명하였다. 그래서 스가와라노 미치자네는 신라에 살던 천일창 왕자의 후손이 되는 것이다. 명치유신 때 동경 제국 대학의 저명한 사학자 구메 구니다케 교수는 천일창 왕자가 살던 우두산(牛頭山)은 강원도 춘천 이고 천일창은 신라 사람이라고 주장 했는데 우두산이 경상북도 고령을 지칭한다고 주장하는 학자들도 있다.

구니다케 교수는 부여의 영고(迎鼓), 고구려의 동맹( 東盟), 예맥의 무천(舞天), 진한의 소도(蘇塗) 와 같은 한반도의 천신 숭배사상이 일본에 수입 되어 신사(神士)가 되었다고 주장 하다 괘씸죄에 걸려 동경 대학에서 쫓겨난 교수였다. 일본 신사에서 모시는 제신(祭神)의 60% 이상이 한반도와 관련된 신들로 이는 구니다케 교수의 주장을 뒷밧침해 주는 사실이다.

일본 최고의 신사 텐만구에서 모시는 제신 역시 신라 도래인의 후손 스가와라노 미치자네 인 것이다. 기타노 텐만궁을 가려면 교토역에서 1번 기타노 텐만궁 행 버스를 타면 된다. 텐만궁 입구에는 높다랗게 돌로 만든 도리이가 세워져 있고 양 옆에는 고마이누(高麗犬)라고 불리는 두 마리의 개가 입구를 지키고 있는데 일본의 모든 신사 입구에는 항상 고마이누가 신사를 지키고 있다. 고마이누 는 고구려를 의미하는 고마와 개를 지칭하는 이누의 합성어다.

입구 바른쪽에 있는 개는 입을 벌리고 있는 수놈이고 왼쪽은 입을 다물고 있는 암놈이다. 일본 고서에 적혀 있기로는 고구려에서 데려 온 개인데 헤이안조(平安朝) 이후부터 신사의 정문을 지키는 파수꾼이 되어 액(厄)을 방지하는 역활을 하고 있다고 한다.

텐만궁에 이르는 진입로 양쪽에는 각양 각색 의 소를 조각해 놓고 있는데 이것은 스가와라노 미치자네의 조상인 우두천황(牛頭天皇), 천일창을 상징한다고 한다.
상급학교 진학을 기원하는 학생들이 사방에 많이 보이는데 이것은 미치자네가 일본의 학신(學神)으로 추앙 받고 있기 때문이다. 매달 25일 신사 경내에서 먹거리 장이 서는데 무녀 아야코가 텐만궁을 세우라는 신탁을 받은 날이 25일이었기 때문 이라고 한다.

김은한
보스톤코리아 컬럼니스트
역사문제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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