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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카 백제 문화를 찾아서 : 25. 광륭사 미륵보살반가사유상
보스톤코리아  2012-01-23, 12:07:06   
일본이 세계에 자랑하는 아스카 시대의 불상이 3개가 있다. 2 개는 이미 소개한 바 있는 법륭사 몽전에 안치된 구세관음상과, 역시 법륭사에 있는 백제관음상이다. 3번째 불상은 일본 국보 1호인 교토 광륭사의 목조 미륵보살반가사유상이다. 반가라는 말은 반가부좌라는자세의 준말로 왼쪽다리를 내리고 바른쪽 발을 왼쪽 넙적다리에 올려 놓은 자세를 말한다. 사유상은 생각하고 고뇌하는 불상이라는 뜻이다. 이 불상의 유래가 스이코 천황 11년 11월의 일본서기에 기록되어 있다.

성덕태자가 여러 대부에게 “나는 존귀한 불상을 가졌다.누가 이 불상을 모시고 공경할 것인가?”라고 물었다. 그때, 재무장관격인 진조하승(秦造河勝 )이 나아가“ 신이 예배하겠습니다.”라고 대답하였다. 이 불상은 신라진평왕이 스이코왕에게 보내준 불상이었다. 진하승은 불상을 받 아 지금의 교토 우즈마사(太秦) 땅에 봉강사(蜂岡寺 )를 지어 불상을 안치하였다. 이 불상이 바로 미륵 보살반가사유상이다.

당시의 봉강사는 서기 818년에 화재로 소진되어 지금의 광륭사가 이 불상을 계속 모셔오고 있다. 교토역에서 광륭사를 가려면 73번 버스로 20분쯤 가서 광륭사 서문 앞에 내리거나 전철로는 게이후크선을 타고 우즈마사(太秦 )역에서 내리면 된다. 우즈마사는 고대 한국어로 “족장”이라는 뜻이다. 바로 불상을 받아 모신 진하승(秦河勝 )을 지칭하는 말이다.

진씨(秦氏 )는 일본말로 하타 씨라고 하는데 원래 이들은 신라계 도래인으로 닌토쿠 천황 때부터 왕가의 신임을 받아 오다가 우즈마사에 정착해서 양잠, 직물, 양조, 농업등 당시 일본의 첨단산업을 일구기 시작한 가문으로 일본에서 제일가는 부를 이룩하였다. 8세기 때 간무천황이 나가오카에서 교토로 천도하게 된 것은 전적으로 하타가문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미륵보살반가사유상은 광륭사 영보전에 안치 되어 있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미술을 알든, 모르든간에 이 불상을 접하는 순간에는 몰아의 경지에 이르는 부처의 세계를 느낀다고 한다. 독일의 실존주의 철학자 칼 야스퍼스가 이 불상에 대해 남긴 글이 있다.

“나는 지금까지 수많은 신상들을 보아 왔습니다. 고대 그리스의 신상, 로마시대의 뛰어난 조각상과 기독교적 사랑을 표현한 조각상들을 보아 왔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감정과 인간의 자취가 남아있고 진실로 인간 실존의 깊은 곳까지 도달하는 절대자의 모습을 표현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이 미륵상에는 인간실존의 깊은 이념이 표현되어 있습니다. 인간 존재의 가장 정화되고 원만하며 가장 영원한 모습을 보여 준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야스퍼스가 이 불상이 한반도에서 만들어진 것이라는 것을 알았더라면 어떤 칭찬이 한반도의 장인들에게 보내졌을 지 궁금하다. 나는 다만 우리 조상들이 심오한 정신 세계 속에서 발휘되었던 예술적 기량에 박수를 보낼 뿐이다. 1949년에 담징이 그린 법륭사 금당벽화가 화재로 소실되었고, 1950년에는 교토의 금각사도 불에 타자, 당황한 일본 문화재 위원회는 서둘러서 광륭사의 반가사유상을 국보 1호로 선정하고 보호하게 되었다.

그러나 1980년대 초에 반가상에 매혹된 한 대학생이 불상에 너무 가까이 접근했다가 불상의 오른쪽 새끼손가락을 부러뜨리는 불상사가 발생하였다. 불상의 손가락이 부러진 것은 잘못 되었지만 덕분에 정밀검사가 이루어진 끝에 불상을 만든 재료가 한국 경상도 봉화지역에서만 자라는 적송(赤松)으로 밝혀지게 되었다. 일본의 목재불상은 거의 소나무가 아니고, 히노끼나무로 만들어졌다. 반가사유상의 실체는 석가모니가 성도( 成道)하기 전 태자시절에 인생의 무상을 느끼면서 중생구제라는 과업을 두고 고뇌했던 모습에서 유래한 것이다.

그래서 중국에서는 반가사유상을 태자사유상으로 부른다. 다른 이름으로는 용화수사유상( 龍華樹思惟像 )이라는 이름으로도 부르는데 이것은 석가불의 제자로 미래에 성불하리라는 언약을 받고 도솔천에 올라가있는 미륵불이 석가모니가 입멸 후 56억 7천만년 후에 세상에 나타나 모든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용화수 나무 아래서 설법을 한다고 하는 미륵불의 하생( 下生)을 상징하는 의미를 부여하는 명칭이다.

우리나라에서는 6세기말부터 고구려, 백제, 신라에서 반가사유상이 만들어졌는데 현재 한국에는 모두 38개나 되는 반가사유상이 있다. 거의 모두가 금동불상으로 그중에 국보 83호 금동반가사유상은 광륭사의 사유상과 아주 닮은 모양이다. 국보 78호 금동반가사유상은 머리에 특이한 모양의 보관을 쓰고 있고 국보 118호는 북한에 있는 반가사유상이다. 광륭사에는국보 1호반가사유상 말고도 또하나의 국보미륵 보살반가사유상이 있다.

일명상투미륵상, 또는 “우는미륵보살반가사유상”으로 부르는데 상투를 틀고 있으며 언뜻 보기에 우는 모습을 띄는 불상이다. 일본서기에 기록되기를 스이코 천황 24년 (616) 7월에 신라가 나말죽세사(奈末竹世士) 를 통해 불상을 보냈다는 기록이 있고, 스이코 31년 7월에도 신라가대사 나말지세리(奈末智洗爾 )를 보내어 불상 1 구 및 금탑과 사리를 보내었는데 불상은 갈야( 葛野)의 진사( 秦寺 )에 모셨다는 기록이 있다. 우는 미륵상은 신라에서 이때 보내준 불상중의 하나라고 믿고 있다.

광륭사 주위에는 진하승 씨의 후손 진도리(秦都里)가 서기 701년에 양조의 조신(祖神)을 모신 마쓰오( 松尾) 신사를 세웠는데 일본 전국에 있는 1000여개 마쓰오 신사의 총본사다.
서기 711년에도 진하승의 후손 진이여구( 秦伊呂具)가 교토의 후카쿠사 터전에 농업신을 모신 이나리대사(伏具稱荷大寺)를 세웠다. 지금 일본에서 이나리신(稱荷神)을 제사지내는 4만여개 이나리신사의 총본산이다. 이나리의 “나리”라는 말도 한반도 호서 지방에서 벼를 “나락”이라고 부르는데서 시작된 말이다. 이나리신사에서는 두부를 기름에 튀긴 유부초밥을 만들어 먹었기 때문에 지금도 유부초밥을 이나리스시라고 부른다.

김은한
보스톤코리아 컬럼니스트
역사문제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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