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스카 백제 문화를 찾아서 : 28. 백제왕을 제신(祭神)으로 모신 히라노 신사(平野神社)
보스톤코리아  2012-02-20, 12:26:33 
한일 고대사의 실상을 가장 확실하게 보여주는 문화유적을 꼽으라면 교토에 있는 히라노 신사를 제껴 놓을 수가 없다. 백제 성왕(聖王)을 제신으로 모신 히라노 신사의 역사를 추적하면 일본 천황가는 한반도 도래인이라는 사실을 입증할 수 있는 것이다.

교토시 북구에(北區)에 있는 히라노 신사를 가려면 교토역전 버스 터미널에서 50번이나 205번 버스를 타고 기누카사 코우마(衣笠校前) 정류장에서 내리면 100여 미터 떨어진 곳에 한문으로 평야신사(平野神社)라고 쓴 표지가 보인다. 표지판 상단에는 관폐 대사라고 써서 이 신사가 국가에서 관리하는 신사임을 알리고 있다.

신전 바로 앞에 있는 도리이에는 한문으로 평야 황대신(平野皇大神) 편액이 부착되어 있는데 일본 천황가를 의미하는 황(皇)이라는 글자와 제신을 대신(大神)으로 극존칭으로 사용한 것이 일반 신사와는 다른 점이었다. 일본에서 개국신 천조대신 이외에 대신의 칭호를 붙이는 신은 히라노 신사의 대신이 있을 뿐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교토의 역사 안내서나 관광, 여행 안내서에는 히라노 신사에 관한 소개가 되어 있지 않거나 소개를 해도 서너 줄에 그치고 마는 것이 보통이다. 의식적으로 히라노 신사가 알려지는 것을 감추려는 의도가 보인다. 그 이유는 히라노 신사가 백제의 성왕, 온조왕, 비류왕과 근초고왕을 제신으로 모시고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일본 황실에서 관계하고, 국가에서 관리하는 신사라는 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 왜 그랬을까? 일본 황실은 백제 왕족의 피를 이어 받았기 때문에 히라노 신사에 자신들의 조상신을 모셔 놓고 있는 것이다.
근년에 발행된 히라노 신사 안내문에는 제신들이 백제 역대왕들이라는 내용은 일절 없고 이곳에서 모시는 4명의 제신들을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다.

첫번째 신이 이마키(今木)신으로 염직, 수예의 수호신이다. 두번째 신이 구도신(久度)신으로 부뚜막 부엌의 수호신이며 세번째가 후루아키(古開) 신으로 불의 수호신이다.

네번째 신은 백제 무령왕의 후손으로 코우닌(光仁 천황의 부인이며 간무 천황의 생모인 타가노노 니이가사 황태후(和新笠 또는 高野新笠)를 히메(比賣) 신으로 모시고 있다.

히라노 신사를 세운 간무 천황이 자신의 어머니인 히메신을 맨마지막 네번째 신으로 모신 이유는 앞에 있는 세 신의 신분과 위상이 헤메신보다 높기 때문에 맨 마지막으로 밀린 것이다. 만약에 현재 히라노 신사의 안내문에 적힌 것처럼 첫번째 신이 옷에 물감을 드리는 신이고 두번째 신이 부뚜막 신이라면 응당 히메신이 첫번째 신으로 올라섰을 것이다.

또 물감 드리는 신을 대신(大神)으로 추앙했을리도 없을 것이다. 간무천황(간무천황 781-806 재위)이 나라에서 헤이안(교토)으로 천도할 때 나라 야마토(大和)의 다카이키(高市) 타무라후궁(田村後宮)에 모셔져 있던 금목대신(今木大神)을 교토로 옮겨 모신 신사가 히라노 신사였다. 에도 시대인 1598년과 1604년에 재건되었고 서기 981년 엔유 천황이 참배 제사드린 이후에 역대 천황들이 이곳에 행차한 것만 20여차례가 된다.

아키히토 현 일왕의 부왕인 히로히토 천황도 이곳에 와서 제사드리고 기념 식수를 했었다. 근래 명치 천황 4년에 국가가 재정과 운영을 맞는 관폐 대사로 지정 되었고, 매년 열리는 히라노 마쓰리는 황태자가 참석 해서 봉폐 의식을 주관하는 규정이 있는 등으로 미루어 이 신사가 물감 신이나 부엌 신을 모시는 곳이 아니라는 것을 대번에 알 수 있다.

수십년간 일본 왕가에 대한 연구를 해온 홍윤기 교수는 야마토 왕가의 으뜸되는 이마끼 조상신이 백제 성왕이라고 주장하고 있는데 많은 일본의 학자들도 비슷한 주장을 하고 있다. 에도 후기의 국학자 한노부토모(半信友 1775-1846)씨는 이마끼 신은 백제 성명왕(성왕) 이라고 주장했으며, 교토 대학의 사학자 나이토 고난(1866-1934) 교수는 이마끼신은 외국에서 건너온 신이고, 구도신은 성명왕의 선조인 구태왕(仇台王, 온조왕을 말함)이며 후루아끼(古開)신은 온조왕의 형 비류왕이고, 아끼(開)신은 초고왕(肖古王)이라고 지적하였다.

고대 사학자 나카가와 토노요시씨도 나이토 고난 교수와 같은 의견을 피력하고 있다. 간무 천황이 히라노 신사에 모신 제신들은 모두 반도 부여(백제)의 시조나 중흥 시조가 된다. 다만 넷째 신 히메신은 왕이 아니지만 그녀는 무령왕의 후손이기 때문에 히라노 신사의 제신들은 모두 백제의 왕이거나 왕족이 되는 것이다.

교토 산업대학의 이노우에 미쓰오(1940~) 교수는 이마끼신의 유래에 대해 아래와 같이 설명하고 있다.
히라노 신사에 모시고 있는 제신들은 백제 도래인들의 신이다. 한반도에서 지금 오신 신이라는 뜻에서 아마키신(今木神)이라고 부르면서 제사를 지내는 것이다.

이것은 한반도 도래인들이 집단으로 거주했던 아스카 지방의 땅 이름이 이마키군(今來郡)으로 불렸듯이 이마키는 도래인을 가리키는 용어라고 풀이하였다. 여기서 우리는 두가지 중요한 사실을 알아야 한다. 히라노 신사의 이름인 히라(平)는 간무천황 직계 후손들의 성씨라는 것과 고대 일본 왕실에서 왕실 가문을 표기할 때는 늘 들야(野) 자를 써오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히라노(平野)는 간무 천황의 후손들인 일본 왕족들을 지칭하는 말이고 히라노 신사는 그들의 조상을 모신 씨사(氏社)가 되는 것이다. 그 히라노 신사에 역대 백제왕들이 제신으로 있는 것은 그들이 바로 일본 왕가의 조상이기 때문이다.

영친왕비 고 이방자(李方子) 여사는 생전에 늘 말하기를 일본 왕실에서도 숭늉을 마신다고 하면서 “천황께서도 숭늉을 마신다 마다요. 그분도 조선 사람이 아닙니까.”라고 말하였다. 여기서 말하는 그분은 히로히토 천황이다.

매년 4월 2일에는 히라노 마쓰리가 열리는데, 황실의 칙사가 참여하여 의식과 제사를 주관한다. 황태자를 비롯해서 친왕등이며 대신들이 참여하며 성대한 제사를 지낸다. 교토의 역사 안내서가 히라노 신사에 관한 소개를 은폐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 역사 평론가 스기 시노부(彬信夫)씨는 일본 학자들의 잘못을 지적하고 있다.

일본 문화와 한국 문화가 똑같은 조상에 의하여 이루어진 부분이 많았다는 사실을 일본인들은 솔직하게 받아들여 일본 문화의 실체가 무엇이었던가를 알아보는 여유를 가질 필요가 있다.


김은한
보스톤코리아 컬럼니스트
역사문제연구소 연구위원

“아스카 백제 문화를 찾아서” 연재를 끝내며
그동안 애독해 주신 독자 여러분께 감사 드립니다. 지면을 할애해 주신 장명술 편집장님, 매번 사진을 꾸밈새 있게 올려 주신 양성대 디자이너님, 그리고 무엇보다 어려운 난필을 편집, 교정해 주신 김현천 기자님께 거듭 감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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